우리 할매.

지금 일어나고있는 일을 기억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 할매는, 막딩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어버이날 카드를 다섯번이고, 열번이고 되풀이해 읽으셨다. 봉투에 적힌 손주들의 이름을 한자한자 읽으며, 도돌이표가 붙어 있는 노래처럼 계속 반복해 되뇌이며, 연신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비록 일분전에 자신이 카드를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보고 반가워 하고, 짧은 편지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마음과 머리속 깊은 곳에 우리를 아끼고 사랑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 덕분에, 그녀는 작은 카드 하나를 열번이고 백번이고 다시 읽을 때 마다, 열번이고 백번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내가 나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미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자꾸만 사라지는 기억 덕분에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된다는건 정말 귀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할매처럼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면, 내 기억기능이 온전할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하고 화가나는 기억 대신, 즐거운 기억을 내 마음과 머리속에 많이 채워 두어야지. 그리고 우리 할매가 즐거웠던 젊은 시절의 기억과, 사랑했던 지난 날들을 더 많이 떠올릴 수 있도록, 자주 그녀를 만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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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어버이날에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꽃다발. 80대 노인이 되었어도, 볕에 나가면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린다는, 여전히 꽃청춘 여성여성한 할매를 위해, 이쁘고 화려한 브로치를 만들어 달라고 특별 주문한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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