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인물의 검증이 난무하는 때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는 말이나 글에 노출될때 이따금씩 불편함을 느낀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 때 불편하지만, 때로는 내가 싫어 하는 사람을 평가할 조차 불편하다. 최근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많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불편함은 대체로 인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일종의일관성 근거할 커졌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사람의 선택 A 선택 B, 그사람의 C 행동 D 일관되지 않다고 평가할 있다. 때로 것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일 혹은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의일관성 없음 굉장히 비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누군가를 비난할 일관성 없음만큼 쉽게 찾아지는 비난거리도 없다.  


그렇다면 일관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타인의일관성 대한 평가는 나의 지식 혹은 세계관 안에서, 사안과 관련성이 높거나, 사람들에게 자주 사용되거나 용인되어 왔던 논리 구조를 근거로 이루어 진다. 그런데 나는 종종 일관되지 않다고 비난받는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입장에서 과연 일관되지 않은 것일까를 생각한다. 사람의 여러 선택과 행동은 나의 지식 어떤 관점에서 일관되지 않음을 보였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혹은 발견되지 않은 어떤 관점에서 (심지어 행위자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어떤 차원에서) 굉장히 일관되는 행동일 있다. 어떤 기준에서일관된것이 아니더라도 선택 A 선택 B 사람의 내에서는 같은 맥으로 연결되는 맥락일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100%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때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언어와 개념으로 구성되는 이성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계획에 근거하기 보다, 언어와 개념으로 분명하게 설명되기 힘든 어떤 감정이나 충동의 세계에서 벌어진다. 설명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언어와 개념을 빌려 써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와 개념이 우리의 마음이 작동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유사한 개념, 익숙한 논리와 언어를 이용하여 행동의 동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과정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추론하는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추론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른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 불일치가 있는 상황을 불편해 한다. 가령, 오랜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인데, 클럽에서 술마시고 노는것이 너무 즐겁고 함께 노는 친구들과의 우정이 너무 소중해서 이따금 힘들어 했다. 교리를 따르는 것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모두 그녀에게는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불편했고,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 하려고 노력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나는 합리화든 새로운 발견이든, 자신에 대해 한단계 나아간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삶의 다양한 맥락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타인에 대해서 평가할 때는, 그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볼 시간도, 여력도, 무엇보다 사람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의 이유를 추론할 , 그리고 때로 그들의 비일관성을 평가할 다른 많은 맥락으로 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나아가 그들을 고정되어 있는 존재로, 앞으로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것이 가능하지 않은것 처럼 예측한다. 그래야만 추론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때때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지점이었다. 일분 일초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를, 고정되어 있는, 성장하지 않는 존재로 상정하는 것은 언제나 불편하다. 


그래서 언젠가 부터 누군가의 일관성에 대해서, 누군가의 모순에 대해서 평가하는 일이, 어쩌면 

나의 세계는, 나의 지식은 여기까지다.’ 혹은 관점만이 옳다.’ 생각을 드러내는 바보같은 행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글을 쓰고 있나.


그저 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는, 내가 닿지 못하는, 결코 닿을 없는 영역과 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따금 상기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쓴다. 나의 삶에 타인이 결코 닿지 못하는, 조차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하듯이. 



#쓰고보니귀인오류를이렇게장황하게설명했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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