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에서.


태풍덴무가 지나가는 동안 하루에도 몇번씩 비님이 찾아왔다가 사라졌지만 제천에 방문한 토요일은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일년만에 청풍호반의 새까만 밤을 마주하고 있자니 지난 여름들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여름밤의 호수, 물빛과 빛, 매미와 바람과 전자악기의 소리. 영화제때마다 호반에 마련되는 이 무대에 아래에 앉아있으면 괜히 감수성가득한 소녀이고픈 마음이다. 


영화제가 2회가 되던해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제천을 방문했으니 벌써 5년째. 청풍호반에서의 다섯번(혹은 그이상의) '원 썸머 나잇' 다섯해동안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새까만 여름밤의 감수성 가득한 소녀이고팠던 나. 그래서인지 여기에 앉아 있으면 지나간 여름들의 아프고, 설레고, 흥미진진했던 기억과 그 감정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새삼 아련한 기분이든다. 이십대의 다섯번의 여름을 공유하고 있는 이 호수 어딘가에 내 청춘의 기억들이 숨바꼭질 하듯 숨겨져 있는 느낌이었달까.('청춘'같은말은 낯간지러워서 평생 쓸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호반에 앉아있는 내내 '청춘'이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제천시장이 바뀐 후에 영화제 폐지를 언급하는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수십건은 봤고 그 때마다 6회까지 잘 이어온 이 영화제를 그리 쉽게 없애진 못할거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그날밤엔 진짜 그렇게 되면 너무 슬플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제천에 대한 기억. 


처음 제천에서 영화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땐 제천이 어디쯤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서울에서 굉장히 멀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는데 잘만 가면 두어시간이면 갈수있고 기차까지 있다고 했다. 2회때 처음으로 영화제에 방문했다. 큰 기억은 없고 자원봉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이 굉장히 친절했던 기억과 이 작고 작은 도시에서 국제영화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3회 영화제때 나는 생초보 운전자였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직접 운전을 했는데, 맙소사. 시내에서 청풍호반을 넘어가는 굽이굽이 펼쳐진 그 길을 하루에도 몇번씩 운전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얼굴이 새하얘 졌던 기억이 있다.  그치만 그 이후로  베스트드라이버가 되었다는 후문이. 


운전을 하게 되면서 제천영화제에 오는 재미가 한껏 더해졌다. 어떤 해는 제천 시내에서 적어도 한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하는 조그만 마을의 진흙축제를 보러 가다가 제천 구석 구석 작고 예쁜 마을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한번은 멋진 경치를 보며 계속 드라이브를 하다 단양으로 넘어갔다 오기도 하고, 또 한번은 길을 잘못 들었다가, 알프스 같은 풍경을 가진 어떤 길 위에서 함께 갔던 동생과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어떤 해는 제천 맛집 투어를 했다. 그것도, 서울에서 조차 자주 못보는 친구들을 죄다 제천으로 불러서. 올해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금수산 자락의 한 계곡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이제 굳이 제천에 갈일이 없어도 남제천 IC에서 잠깐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곤드레나물밥을 먹곤 다시 가던길을 가기도 한다. 


나는 영화마니아는 아니어서 영화프로그램의 리스트가 크게 중요하진 않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보다 매년 이곳에 온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간혹 선택한 영화가 감명깊었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진에 포함되어 있을 땐 그 재미가 두배, 세배, 다섯배, 열배가 되곤 했다. 약간은 중년의 느낌이 나는 이 작은 동네에 젊은 기운이 그득해 지는것, 일년에 한번씩 고요하고 새까만 호반위에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나뭇잎 부딫히는 소리를 함께 느끼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것. 그런것들이 매년 8월이면 제천으로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들었다. 



제천영화제여, 꿋꿋이 살아남아 다오! 


새로 부임한 시장님의 제천영화제 존폐논의에 대한 발언은 사실 갑작스럽고 황당했다.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이렇게 잘 해나가고 있는 영화제를 굳이 왜?! 라는 생각과 함께, 왜 다른 곳도 아닌 제천시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는 물음표. 


다른 것은 몰라도 영화제가 지역에 기여하는 측면 즉 지역 자원 활용과 홍보, 지역 인지도증진 효과와 같은 기준에서 보자면 제천영화제는 지난 6년간 그 어느 영화제보다 큰 성과를 내오던 행사였다고 생각한다.[각주:1] 그도 그럴것이 제천이라는 도시는 작은 날개짓 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수 있을 만큼 젊은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낮은 지역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음악영화', '휴양영화제'라는 영화제의 코드와 컨셉은 거짓말 처럼 제천과 어울렸다. 요즘 말로 씽크로율 100%라 할만큼.


부산에 사는 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처음에 부산에서 영화제를 한다고 할때, 대부분의 부산 시민은 무관심 했다고 봐. 나도 그랬고. 근데 어느날 서울에 사는 친구가 전화와서 얘, 나 부산영화제 보러가는데 넌 안가니? 라고 하는거야. 황당했지. 그친구는 부산사람이면 누구나 가야하는 것 처럼 이야기를 했거든. 근데 전화를 끊고 보니 우쭐 한거야. 가까이 있어 좋은지 몰랐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알아준다는 느낌이 들때 드는 그런 으쓱함. 나도 그 때부턴 영화제 기간에 꼭 한번씩은 들러보려고 하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잘만든 행사 하나가 어떻게 지역 외부와 내부를 연결시키는지' 또 '어떻게 그런 것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이 되는지', '지역의 일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어찌나 사소하고 우연한 순간에 만들어 지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부산영화제가 그러한 단계까지 가는데 10년이 넘게 걸리는 것을 보면, 어떤 영화제 혹은 행사가 태어나서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며 성장하고 스스로 이름을 알릴때 까지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느꼈다. 


지난 토요일 내 동생이 제천에 사는 친구에게 '뭐야 원썸머나잇 티켓 매진 되었잖아. 우리 가족 이거 보려고 대구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를 어째' 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문자를 보냈을때,

'우리엄마한테 물어보니까, 며칠전 부터 그거 표 구하기 힘들었대 ^^' 라고 답신을 보내온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도 으쓱 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 살았다던 나의 지인이 그러했던 것 처럼. 


하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것들을 기다리기엔 확신이 없고 조급한 것일까.


이십대때 부터 매년 팔월이면 휴가를 내고 제천에서 휴가를 보내는 나와 나의 친구들이 한방 약초에 관심을 가지는 나이가 되어서까지 제천을 찾아오는 꿈을 꾸는 것은 너무도 낭만적인 나의 바램일 뿐인걸까?! 



*

이 글을 쓰면서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이렇게 사라져버릴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제는 이제껏 잘 자라왔으니까.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싹이 좋은 놈이니까.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고 있으니까. 








  1. 영화제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영화제라는 것이 복합적 성격과 다양한 기능을 띤 종합적 이벤트라는 점, 지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는 영화제 자체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과 평가의 주체, 평가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그 기준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각 영화제가 지향하는 바, 다루는 내용과 평가의 목적에 따라 평가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으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수만명의 시민들이 밤새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던 세종로 네거리에서 예비군들이 폭우로 생긴 물웅덩이에 뛰어들고 있다.
ⓒ 권우성
한미 쇠고기 협상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세종로네거리에서 경찰과 밤새워 격렬하게 대치했던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서울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한미 쇠고기 협상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과 밤새워 격렬하게 대치했던 시민들이 날이 밝아오자 노래를 부르며 대동놀이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촛불축제는 진화합니다.
어제(6월 22일)는 집회 분위기가 평소보다 격렬하니 재미있었는데
결국 아침 열시까지 시민들이 위 사진처럼 놀았네요.
 
 
어제 국민들이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많았습니다.
 
#.대규모 참여 프로그램
토성 쌓기
인간 모래주머니 컨테이너벨트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국민 줄다리기
(일명 이순신 장군 석방운동입니다)
*
음 아침에는
국민 촛불기차놀이와
물장구놀이를 했네요.
 
#. 공연프로그램
시민녀와 경찰녀의 랩배틀
( 시민참여형 프리스타일 ㅋㅋ)
 
 
#. 전시프로그램
시간이 갈수록 시민참여형 공공미술이 늘어납니다.
온라인 게시판을 아스팔트 도로로 바꾸어 놓으니
사람들의 표현 방식도 다양해 지는군요!
[Where am I¿] 제 76 호 - 비비다이나믹, 안쿵쿵의 송크란 sonGkra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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