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영에게 멀티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영풍문고 화제의 신간 코너에 우리책이 진열되었다고.

프롤로그에 적혀있는 말마따나, 내가 한것은 신나게 여행을 다니며 장을 '본' 것이 다인데 내 글 몇토막, 노몽이 사진 몇장, 구석구석 나의 아바타스러운 사진들(ㅋㅋ)이 이렇게 예쁜 책에 담겨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지난달, 문전성시 평가 때문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고 영동고속도로의 동쪽 끝 톨게이트 부터 서해안 고속도로의 마지막 톨게이트까지 동해 번쩍 서해번쩍 하며 내내 고민했던 것은 시장을 활성화 하는데 과연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하는 질문[각주:1]이었다.  

사람들이 시장을 조금은 재미있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을 터치해주는 일이 문화의 역할이 아닐까 싶었다. 더이상 '서민경제의 보고' 라던가 '훈훈한 정과 후한 인심' 같은 80년대 냄새가 나는 브랜드 이미지가 아니라 2010년을 사는 내가, 우리엄마가, 나의 막둥이 동생이 '혹'할만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것. 

그 역할을 하려면, 시범시장으로 선정 된 각 시장에서 좋은 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업들을 엮어내어 잘 포장하고 이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함께 이루어 져야만 하겠구나 싶었다. 사업이 잘 될 만한 시장을 선정해 한 곳 한곳 문화를 투입하고 정성들여 활성화 시키는 것을 진지를 구축하고 사례를 만드는 진지전에 비유하자면, 곳곳의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숨겨진 정보들을 모으고 엮어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선전하는 심리전도 필요하달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 왔다. 어쩌면 너무 낭만적이고, 어쩌면 너무 불특정 다수이고, 어쩌면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책은 우리가 전통시장을 어떻게 즐겼는지에 대한 조그맣고 사소한 팁을 던져주는, 시장에 대한 인식개선, 곧 '일상 여가나 문화적 장소'로 시장을 다시 보게하는 우리의 작은 시도니까.

우리가 해외여행에 가면 그 곳의 시장을 꼭 들르는 것 처럼 우리나라 시장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는 진영, 
시장에 갈 때 마다 시장의 일상적 광경을 내게 익숙한 문화콘텐츠들에 대입시켜 보는 버릇이 생겼었던 나, 
어떤 시장에서도 백화점 명품관에 버금가는 디스플레이를 발견해냈던 아름.
각자의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우리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결코 진지해지는 법이 없었고, 억지스럽게 목적이나 목표 따위의 말을 드러내 놓고 써 본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뜻은 통했다는 느낌은 이런 것일테지. 

뭐 어쨌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책이 드디어 발간되었다!

B형여자 다섯명을 다루기도, 18개월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책을 준비하기도,
수도없이 많은 의견들에 귀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중심을 잃지 않기도.. 그 무엇하나 쉽지 않았을 이 프로젝트.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면서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어준 진영에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감사를!

여러분 책을 사서 읽읍시다! ㅋㅋ
국순당 백세주 마을에서 생막걸리 1병을 교환할 수 있는 쿠폰도 들어있답니다! 

한국의 시장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기분좋은 QX (시드페이퍼,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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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전성시 사업 3년차, 이제는 10개가 넘는 시범시장에서 그간 해왔던 실험과 시도들은 그 고민을 풀어내는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공연이나 축제, 체험 이벤트 처럼 문화가 고객과의 접점에서 시장을 홍보하고 마케팅 하는 직접적인 도구로 쓰일때는,소비자나 주민의 반응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주민대상의 몇몇 교육프로그램이나 해설사 같은 프로그램들은 문화가 시장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는 문전성시 사업의 브랜드 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못골시장은 상인공동체활동을 통한 활성화에 전략을 집중을 했더니 경제적으로도 효과가 있더라를 보여주는 예다. 상인들이 신바람이 나니 시장에 대한 애착도 커졌고, 그러다 보니 더 좋은 물건을 가져놔야 겠다는 상인들 스스로의 움직임이 보였고, 그 신바람과 애정이 소비자들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오는 손님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본문으로]

* 가는날이 장날 두번째 책인 '시장은 카페다'에 실은 글.
일곱개의 발견을 싣고 싶었는데,
그것을 실으려고 앞에 주저리 주저리 쓴 글만 담겨서 아쉬운 마음에 포스팅!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하 문전성시)이 막 시작되던 무렵, 우연히 일본의 한 엔터테인먼트 파크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꽤 유명한 한 전자게임 회사가 만든 게임 테마파크였는데, 그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이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은 최신식의 전자 기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있는 내내 영화에서나 봐 왔던 1900년대 초의 일본 시장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꼭 시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 디자인이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게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몇 개의 놀이기구에는 그것을 안내하고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몇 명의 스탭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흡사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베테랑 장사꾼같았다. 약장수처럼, 때로는 흥정을 하듯 그곳에 온 방문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침체된 전통시장에 예술을 덧입히거나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접목함으로서 시장을 활성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동안, 어느 한곳에서는 옛날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현혹하던 기술을 최신식 놀이공간의 운영에 접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시장에 예술을 덧입히지 않아도 시장이 꽤나 문화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버려진 공장, 사람이 다니지 않는 지하보도, 사라질 위기에 놓인 철재상가 등에서 문화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루어 졌을 때 ‘신선하다’라고 반응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과 문화가 접목된다는 소식을 접하곤 ‘그럴듯하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시장을 문화적이라 느끼는 것은 아마 아주 오랜 옛날 시장이라는 공간이 놀이꾼들과 예술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가 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 먼저냐 같은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즐거운 일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만한 프로그램들이 따라오거나 생겨나기 마련. 태국 치앙마이의 선데이 마켓은 그 사실을 어느 시장보다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태국 제 2의 수도라 불리우는 치앙마이에는 매주 일요일 마다 큰 장이 선다. 매 끼니 외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아직 농경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태국은 시장이 여전히 많이 발달한 편인데, 치앙마이의 선데이마켓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이 시장을 둘러보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커다란 축제의 한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추어 밴드, 어린이 공연단, 불상 (태국은 불교국가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불상이 등장한다)등을 시장 곳곳에서 마주친다. 누가 시키지도, 무대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데도, 그들은 사람들이 쉽게 모이고 주목할 만한 공간을 용케 찾아내어 그 곳에 그들만의 무대를 만든다. 두 줄지어 행진하던 한 연주단은 사람이 너무 많은 골목에 들어서자 재빨리 일렬종대로 줄을 바꾸어 서는 유연한 진행 실력도 보여준다. 치앙마이 인근지역은 수공예로 유명하기도 한데, 시장 구석구석에서 귀엽고 재미있는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게 중에는 일류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마추어 디자이너의 판매대도 있다. 중간 중간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푸드코트는 물론이고, 입·출구 근처에는 야외 마사지숍도 등장한다. 이곳의 발마사지는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인데, 긴 시간 쇼핑에 지친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비스 프로그램이라 느껴진다.

 1900년대 이전 아니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시장들도 이렇게 역동적이고 문화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쉬운 마음이 밀려온다. 아마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또한, 이 같은 아쉬움에서 우리의 전통시장이 가졌던 고유의 ‘멋 과 흥’을 살려 보자고 시작되었던 것일테지.
 
 하지만 너무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전통시장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 혹은 현대의 시장의 모습,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 이끌어내어 발전시킬 만한 ‘문화적인’ 요소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꽃이 되어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전성시 사업이 기존의 시장(들)에서 어떠한 ‘문화적 요소’와 이야기, 강점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완전히 새롭거나 현대적인 것을 발명해 내거나 덧붙이려 고민하는데 시간을 다 써버리기 전에.

  또한 그것이야 말로 시장의 상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 그리고 문전성시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난 2년간의 문전성시 사업에서 상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프로그램은 상인들이 품고 있고 있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어 준 못골 시장의 못골라디오 스타(책자발간), 다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봐 준 주문진 시장의 달력이나 수유시장의 매거진과 같은 것이었다. 상인들에게 그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을 물을 때면, 그들은 예술가나 문화기획자들이 시장에 와서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시장을 바라봐 주는 것이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어지는 페이지에, 우리 동네에 서는 화요장에서 부터 5시간 넘게 길을 헤매며 찾아간 벌교시장 까지, 그간 시장을 놀러 다니며 얻은 몇 가지 재미있는 발견을 정리해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이라고 부르는 그곳에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간 ‘새로운 트렌드’라고 여기는 것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무엇이 좋아 시장에 머물렀는가? 시장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발견했는가? 앞으로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나 하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얼마나 수많은 발견들이 멋진 문화기획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된다. 내가 가보았던 ‘시장’이라는 곳은 잠깐의 방문만으로는 도저히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곳이고 그래서 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기도 했다. 시장과 문화가 만나는 문전성시 사업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의 활성화 만큼이나 ‘전통시장을 통한’ 참여 문화 기획자들의 감수성과 창의력 확장을 목표로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안쿵쿵의 발견!

- 1. 생활창작마켓, 할머니들의 오일장
- 2. 시장에서 발견한 천만상상 오아시스
- 3. 어른들의 놀이터
- 4. 오픈 쿡
- 5. 리듬을 타고, 연극을 보듯 
- 6. 엄마, 체험학습은 시장에 가서해요.
- 7. ‘맞춤형’ 시장


  요즘은 참 ‘맞춤형’ 서비스를 자주 볼 수 있다. 어제 받아본 학원 전단지엔 ‘맞춤형’과외지도가 있더니, 오늘은 한 친구가 ‘맞춤형’ 재무컨설팅 서비스를 받아보는 것이 어떤가 하고 물었다. 방금 네이버 검색창에 ‘맞춤형’이라고 써넣어 봤더니 맞춤형 복지, 맞춤형 교육, 맞춤형 정보 등등 많기도 많다.

  그런데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보면 시장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그런 맞춤형 서비스가 존재 해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단골가게가 생기고 몇 번의 왕래가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정육점에 가서는 ‘늘 하던 대로 반근만 썰어주세요’ 라 말하면 된다. 굳이 ‘쇠고기 뒷다리 부위 삼백그람을 갈지 말고 곱게 다져주세요’라고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건어물 상을 지나치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거기 아줌마, 그 집 아저씨가 좋아하는 굵은 멸치 들어왔어. 요즘 좋은 멸치가 나오는 시기니까 한번 보고가!’하며 우리를 부른다. 생선가게 아저씨는 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오징어에 칼집을 내는 것이 좋을지 묻는다.

마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말하자면, 나의 취향과 기호를 기억하는 품목별 컨설턴트가 존재한다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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