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말로만 수백번 다녀온 그곳을 이제서야 다녀왔다. 

'시대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 故 노무현'

 

사실 그 누구에게도 시대는 비껴가지 않는다.

시대의식이 사회적 이슈의 중심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때가,

그 시대에 맞서는 이와 흘러가는 이들이 있을 뿐 

 

봉하마을 한켠의 추모 전시관을 관람하며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 들뜨는 기분이었다.

박물관에 가면 늘 보던 선사시대, 청동기 어디쯤의 역사와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피부로 겪었던 시절의 기록을 전시관에서 마주하는 기분. 

그 기록은 그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한 시절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마음들을 이 작은 전시관에서 이야기하기엔

우리가 가졌던 희망과 좌절, 슬픔과 함께 찾아온 복잡 오묘한 불안함은 너무도 컸고,

그래서 그 어떤 전시관에 그것을 기록 한다고 해도 

내겐 도저히 성에 찰 수 없는, 너무도 작고 부족한 결과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많은 전시관과 박물관들에서 마주하는, 석기시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오는

수많은 '어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보니 정신없이 아득해 졌다. 

아마 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전시관을 본다면 너무도 작고 부족한 그들의 이야기들에 실망하겠지 분명.

 

그치만 박석과 노오란 포스트 잇과 조문록에 쓰인 조그만 글들.

어린 아이,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글귀들을 한자 한자 읽어내려가자니

자꾸만 눈물이 날것 같았다. 한 시대의 어느 자락을 공유한다는 것. 생각할 수록 멋진일이다.

 


9월 1일은 돌아가신 노짱의 생일이라고 한다.

'야 기분좋다''라고 외치며 고향으로 돌아간 그가

돌아간 고향에서 단 한번의 생일 밖에 못 보냈다는 사실에 괜히 심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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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책 어때?"

"음.. 이책을 읽다가 몇번 짠-했던 순간이 있는데 말이야,
그 순간의 느낌을 비유하자면 이런거야.

왜, 그럴때 있잖아.

'오래전에 헤어진 그 사람이
그 시절의 나를 너무 많이 사랑했었구나.'
하고 어느날 갑자기 깨닫게 될 때.

그래서 갑자기 짠해질때 있잖아.
딱! 그느낌이야. 더도말고, 덜도말고."




누군가와 이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거나, 그 책에 대해서 물어오면
항상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무슨 이런데까지 연애이야길 들먹이냐며 오버한다고 욕도 좀 먹었지만 (ㅋㅋ)
사실, 이 책에 대해 아니 그보다 이 책을 읽은 나의 느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는 만큼 정확하고 공감할 만한 표현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답'이 없다.
앞으로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정리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문제'라는 것이 키워드만 놓고보면 또 그이야기가 그이기인가 싶은데,
찬찬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지식인들과 그의 동지들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던 것들. 현 시점에서 다시한번 문제를 재정의해봅시다.
더 알기 쉽고 공감되게 표현해 봅시다.
우리의 방법론이 실패라면, 새로운 출발점에서 방법론을 찾아봅시다.
우리가 같이, 다른 방식으로 풀어봅시다.'

그리고 관점과 출발점을 달리하자는 주장의 배경에는
지난 날 대통령으로서의 고민, 그가 이루고 실패했던 것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평가,
나라와 국민에 대한 관찰과 통찰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사랑이 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더 힘이있다.

“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는 국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갑니다.” - 노무현

 
많은 유명한 사람들은 죽기전에 그가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과 답을 정리하지만
그의 마지막 책은 그 깨달음과 답이 고민과 질문의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내 기준에서 보면 정말 노짱 다운 일.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촌스럽지 않았던 정치인.



2009년 11월 27일 ... 1부 '진보의 미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육필 원고다. 대통령은 생전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한 권의 책을 엮고 싶어 했지만, ...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시대를 살며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노짱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 또한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때 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었는데,
언젠가 부터 노짱이라고 대답을 한다.
이런말 하면 좀 부끄럽기도 한데,
사실 대통령 선거때 선거권 조차 없었던
정치와 대통령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가
그의 팬이 된 것은 그의 퇴임 무렵 나온 참여정부 정책백서를 보고나서부터였다.
내가 사는 세상에, 정치에, 근-현대사에, 사람들의 행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무렵 부터였다.

그를 더 빨리 알지 못해서,
그가 너무 빨리 대통령을 해버려서,
그가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려서,

슬프긴 해도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가 던진 고민과 질문이면 충분하다.
그 다음은 그것을 같이 고민하고 풀어나갈 사람들의 몫이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지만
그 강물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만큼의 속도로 흐르기에.






+ 아래는 얼마전에 읽고서 엄청 공감했던 에고잉님의 글!

by (egoing) | 2009/11/28 09:26

그들은 노무현을 살해함으로써 증오와 무관심 속에 나를 감금시킨 것이다. 난 비릿한 감옥 속에서 전에 없던 평화를 찾았고, 정기적으로 감옥을 설계한 자들에게 최상급의 욕설을 퍼부으면 되는 것이었다. 스타마케팅이란 이렇게 초라한 것이다. ...




1. 자존심

중고등학교시절 윤리책에서 강요하는 애국심에 동감하지도 않았고,
한일전 축구경기때 너무 뜨거워 다가가기 힘든 어떤 감정에 동요하고 싶지 않아했지만
언젠가 비전 발표를 할때, 자기비판을 하는 대한민국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위한 일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내 나름의 애국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그말을 하게 된지 나도 의아했지만, 이민이나 유학이 성공의 기준인양 이야기 하는 앞 발표자들이
촌스럽다 여겨졌거나, 갑자기 화가나서 다혈질 적인 내가 그런말을 했던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작년이맘때 광우병파동으로 부터 그 이후로 주욱,
나는 애국심처럼 간지러운 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했는데,
그때 내가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한 기제로 가장 많이 이용(?)을 했던것이
'촛불'과 '노짱' 그리고 그것을 키워드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노짱이 하늘나라로 간 다음날 새벽에 찾은 시청앞
텅빈 거리, 새까맣게 줄서있는 닭장차와 전경들
촛불은 찾아 볼수 없고,
저 닭장차 너머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수가 없다.

그래도 작년 이맘때엔
그곳에서 희망을 보았는데,
전경그득한 그 거리를 마주하는 순간
자존심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망연자실'
그느낌이 뭔지 알것 같았고,
닭장차 너머 옹기종기 모여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의 얼굴에도
그 느낌이 그득했다.

어제아침부터 계속 지울수가 없는 느낌은,
나는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내 자존심의 일부를 잃어버린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자꾸만 슬픔 보다 분함이나 억울한 감정이 앞섰나부다.


2. 이상과 좌절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이상주의자일수록 우울증이나 병적 게으름에 빠질 경향이 강하다는 구절을 보고 고개를 끄덕했다.

최근에 풀집 이윤호 대표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났는데,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뜻있는 친구들 끼리 전혀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발견했던 것은, 그렇게 뜻있게 모인 이들 또한
보수적인 교육을 받아왔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발견하고 인정하기까지가 어려웠다는것

이상을 이야기 하는 이들에게 '현실'은 변화하거나 개혁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많은 경우에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요즘들어, 전자와 후자사이엔 일종의 선후나,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있고,
그 사이에는 뼈아픈 '좌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하나, 느끼는 것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비판의 대상이나 좌절감의 모체가 되었던것 아닌가 하는것이다.

그리고, 나름 평안한(아니 어쩌면 고요한) 시대를 살았던 나와 나의 또래들은
변화나 개혁의 논리나 당위보다는
비판과 좌절의 말들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저런연유들로 386들이 야속했었는데
요즘 '좌절'이 나의 화두가 되면서 386들이 안쓰러워 졌다.

비슷하지만 또 조금은 다른 이유로 근 몇달간의 노짱이 안쓰러웠었다.

그리고 착잡한 이 주말이
우리에게 또 한번의 좌절인거 아닌가 싶어
두렵고 착잡하다.



3. 무엇을 해야할까.

나는 사실 정치에는 별 관심도 없었던 88만원세대인데다
~~이즘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정치방향이 옳은길이라 주장하는 모든정당도 딱히 맘에 내키지도 않을뿐더러
언제나 정치적인 것에 대한 해석은 나 중심적이고
촛불집회같은 건 한밤중에 혼자 슬쩍 나가서 옵저버처럼 관찰하는 소심함까지 갖추었는데

이렇게 자존심 상하고, 좌절감이 몰려들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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