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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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 시로 달랜 법정
대전지법 판사, ‘12만원 생계형 절도’ 30대 여성 위로해줘


한겨레 송경화 기자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뿌리 깊으면야/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중략)/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준엄한 심판의 자리인 형사법정에서 부드러운 시어가 흘러나왔다. 법대 위의 판사가 건네는 위로의 시구에 피고인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지영(가명·30)씨는 대전의 한 주택에 들어가 안방에서 500원짜리 동전 2개, 부엌에서 3000원 상당의 상품권 1장, 현금 12만4000원을 훔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김씨는 이미 절도죄로 여러 차례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 이전에 저지른 절도로 1년 실형을 살고 출소하던 날, 가족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아예 연고가 없는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사글셋방을 구하고 식당에서 잡일을 했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살며 아이를 낳았지만 형편이 안 돼 곧 보육원에 보냈다. 병이 났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김씨는 또다시 무언가에 홀린 듯 낯선 집으로 들어갔다. 동전과 지폐를 훔쳤고, 다시 구속됐다.

지난 5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자리에서, 판사는 김씨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시 한 편을 먼저 읽어줬다. 판사는 김씨에게 40시간의 심리치료강의 수강과 40시간의 보육원 사회봉사를 덧붙였다. 판사와 피고인이기 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느낀 연민의 정을 시로 표현한 이 법정의 풍경은, 당사자인 판사가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에 그 재판의 소회를 밝히며 외부에 알려졌다.

김씨 사건을 다룬 대전지법 형사6단독 김진선 판사는 “김씨의 인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로서, 그가 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상처 받은 영혼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를 읊어줬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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