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고마워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줘서.




작년엔가 봉하마을 한켠에 마련된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서, 내게는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화두가 생겼다.



최근에 알랭 드 보통의 신간 발표와 한국 방문 때문에 그 화두를 다시 꺼내어 생각할 계기가 생겼다. 난 알랭 드 보통을 정말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정말 약오르고 질투가 나는 사람이다. 24살때 첫 베스트셀러를 썼다는 건 둘째 치고, 그는 늘 이런식이었다. 내가 공간 관련 프로젝트에 집중하느라 공간과 관련한 온갖 고민들을 하고 있을 때 '행복의 건축'이라는 책이 출간 되었다. 그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좀 복잡 오묘한 심정이었는데, '이토록 쓰고 싶은 종류의 책을 이만큼이나 이미 공부하고 자료를 모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약오른 감정 하나와 '알랭 드 보통과 같은 사람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 한 자락을 공유하고 있었구나.' 싶은 약간의 우쭐한 감정 하나가 가장 도드라 졌다. 내가 직장과 직업,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창 고민을 하던 시기에 나온 '일의 기쁨과 슬픔' 이라는 책의 서문에 나온 그의 문제제기를 읽곤 소름이 돋았고 이번 신간인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제목을 듣는 순간 '역시'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꽤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밖으로 꺼내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는 생각과 고민들 중 많은 부분은, 사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하고 있는 고민일 것이란 생각. 예전에 레시피오브 돈키호테라는 리서처가이드를 쓸 때도 언급한적 있지만, 사람들이 어떤 고민이 있을 때 '그 고민의 답을 얻는 것' 만큼이나 '그 고민이 자기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외롭지 않게 되니까.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 김태호 피디, 알랭 드 보통과 김진혁 피디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내게 영감과 위로를 주는 많은 글들과 콘텐츠들. 제각기 표현의 방식도 전문성도 다르지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들이 무엇인지, 그들이 요즘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를 '매력적'으로 드러내 주는 그들이 너무너무 좋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과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어서. 무엇보다 외롭지 않게 해주어서. 그래서 난 요즘 그런 사람들에게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주어서 고마워요'라고.



꽤나 자주, 80년대의 대학문화나 19세기 초의 유럽의 학계를 직접 겪지 못했다는 사실이 약올라 죽을 것 같았다. 난 질투도 욕심도 많은 아이니까. 하지만 얼마전 부터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절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시대와 비교해서가 더 좋고 나쁨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우리의 관계들이 이 시절과 시대속에 그리고 이 시절과 시대의 조건 위에 고스란히 있기 때문에. 이 시대성 위에서 80년대나 19세기 초와는 질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특히나 형태면에서 너무도 다른 '예술'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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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멋진 생각들이 이미 수백 수천년 전에 누군가들에 의해 먼저 생각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선 좀 의기소침해 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곰곰히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왜 그 수많은 생각과 기록들 중에서 그 문제, 그 고민, 그 질문에 똑같이 포커싱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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