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몇달전에 공사판 견학 갔을때에는

사실 뭐 별로 기대하지 않았엇는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경방타임스퀘어

아.. 이런 간지가 영등포에!! 오 -

 

사진은 벙커파티, 복서'츄'님의 작품


사실 복합상업시설 사례조사 하다보면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의 흔적을 여기 저기서 엿볼 수 있지만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시크하게 쿨한 고급스러움은 좋아

 

경방 박물관을 북카페로 만든 반전 훌륭하고

어설픈 벙커파티였지만, 런칭 이벤트 전략으로는

사실 좀 약오르게 똑똑한 기획이었음.

 

경방타임스퀘어 때문에

영등포의 상인들은 시위를 하고

롯데백화점은 의기소침해 있다는데

 

음 과연

어딘지 모르게 알듯한 촌스러움을 가진

영등포의 번화가가

경방타임스퀘어 오픈에 영향을 입어 변할까?

아니면 따로놀까

두고 지켜볼 일이다.

 

좀 뜬금없지만, 요즘은 계속

자본과 보수, 그쪽의 경제학자나 마케팅 전문가들이

진보보다 더 치열하게 진보적 사고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바로 이점이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촌스러웠던 이유였기도 한듯 하다.)

자본이라는 너무 명확한 동기에서 치열하게 정리된 설득의 방법론,

사람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개입하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어 나가는 방식,

뭐 이러한 것들을  안쿵쿵식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계속 밀리고 밀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삐까번쩍 타임스퀘어를 보며

이 거대한 생명체가 주변과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지 상상하며

또 그러한 생각을 했다.


**

윗 글은 타임스퀘어 오픈 다음주 (아마도 9월 말)

런칭 기념 벙커 파티에 다녀와서 남긴 글.


며칠전에 문래동 관련한 포럼에 갔다가,

타임스퀘어의 성공에 영등포 일대 재개발 흐름이 가속화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 링크는, 타임스퀘어 효과에 대한 파이낸셜 뉴스 기사

http://www.fnnews.com/view?ra=Sent0701m_View&corp=fnnews&arcid=090922222402&cDateYear=2009&cDateMonth=09&cDateDay=23



'대중적임'
요즘 새로운 화두

대중 [, mass]

지위·계급·직업·학력·재산 등의 사회적 속성을 초월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합체.

일반적으로 군중·공중()과 구별되며, 이질성 특질로 한다.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적 개념으로서도 매우 다의적()이며, 이론상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규정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이를 크게 나누면, ① 사회학상의, 특히 대중사회론의 입장에서 쓰이는 대중의 개념, ② 파시즘의 입장에서 쓰이는 대중의 개념, ③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에서 쓰이는 대중의 개념 등이 있다.

⑴ 사회학상, 사회집단론의 범주에서 보면 대중은 군중·공중 등과 더불어 무조직집단(:비조직집단)의 하나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갖가지 사회집단에 분속()되어 있는 동시에, 무조직집단인 ‘대중’의 일원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대중이 거대한 ‘매스(mass)’로서 사회의 모든 면에 나타나고, 사회에서 대중의 역할과 힘이 재인식됨에 따라, 대중화된 인간의 능력과 이성의 쇠퇴 등이 문제화되기에 이르렀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조직적인 결합 없이 ‘공중’의 한 사람이 된다. 19세기 말에 G.르봉이 ‘군집’의 개념을 비합리적 심벌로 파악한 데 비해 G.타르드는 ‘공중’에 대해서 이지적() 심벌을 부여하고, 이를 데모크라시의 기초로 보았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의 산업기술과 통신 ·교통기관의 급속한 발달, 모든 사회조직의 거대화와 관료제화 등으로 이른바 ‘대중사회상황’이 출현하였다. K.만하임에 의하면, 산업적 대중사회에서의 기능적 합리화의 진전으로 사람들은 기계의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바뀌어 가고, 한때 자주적·이성적 심벌로 여겼던 ‘공중’은 수동적·정서적·비합리적 대중으로 변질해 간다. 대중 데모크라시는 민주주의를 확대하였지만, 그 반면에 이와 같은 대중화 상황이 진행하는 곳에 데모크라시의 위기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견해가 대중사회론의 전형인데, 여기서 파악한 대중은 동질화()·평준화된 반면에 정서화()·비합리화된 것으로, 지배자의 ‘심벌 조작’에 의해 쉽게 움직이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중화상황의 심화에 의한 위기라는 문제의식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여 데모크라시를 방위하느냐 하는 견지에서 나온 것이다.

⑵ 파시즘 사상은 원래 불평등주의를 기초로 하였다. 사회의 기본적 관계는 언제나 지배와 복종에 있으며, 엘리트와 대중의 구별은 본질적인 것이다. 가치의 창조자는 항상 소수의 엘리트이며, 대중, 즉 다수자는 그들에게 종속되어야 할 운명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 경우 대중은 모래와 같은 무성격()·무규정()의 것으로, 선천적으로 자발성이 없고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히틀러의 ‘지도자원리’는 이러한 견해에 입각한 것이었다.

⑶ 대중사회론이나 파시즘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에서 대중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인민대중·생산적 대중처럼 역사의 담당자·역사의 추진력으로 파악된다.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사회는 소수의 지배계급과 다수의 피지배계급인 인민대중·생산적 대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대립하는 기본적 계급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농민 ·소()생산자 등과 같은 여러 중간계층이 있는데, 대중이란 프롤레타리아적 근로대중과 비프롤레타리아적 근로대중을 포함한 ‘일하는 사람들의 가장 넓은 층’, ‘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레닌)’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대중은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를 중심으로 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사회변혁의 담당자가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대중이라는 개념은 여러 각도에서 파악되고 있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광범한 대중이 프롤레타리아화라는 방향으로 동질화·평준화되어 가는 대중화현상 자체 속에서, 그리고 그 마이너스적 면과 함께 보다 높은 방향으로 향상되는 새로운 요인을 인식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중의 개념을 파악하려고 한다.



자료조사 중 

[전면전 vs 진지전] 

그람시는
국가와 대중사이를 중재하는 제도적 네트워크를 시민사회라고 불렀다. 
이 네트워크 덕분에 자본주의 사회는 '직접적인 경제적 요소들(공황, 경기침체 등)의 재앙적 공습에 저항할 수 있다. 
이 네트워크들은 국가에 대한 공격을 막는 강력한 방어벽에 돼 주고, 
심지어 국가자체가 잠시 붕괴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부르주아지가 재 주직하고 재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기의 혁명적 투쟁은 '진지전'의 형태
즉 이러한 네트워크와 (그리고 아마도 그 네트워크 내에서) 영향력(헤게모니)를 다투는  투쟁형태로 나타나고
전면전(기동전)은 단지 전술적 중요성만을 가지게 된다. (자세한 설명은  Reformism참조)

http://ko.wikipedia.org/wiki/안토니오_그람시


[해야하는 일 vs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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