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빛나는

재활용 불가능한 깨달음.

안쿵쿵 2014. 4. 30. 03:45

그제야 나는 그즈음 내가 공들여 지어온 집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반석이라고 믿었던 모든것들이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자각은 그해 6월, 나를 향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밀려들던 우울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우울이 아니라 한시대 전체가 느끼던 거대한 우울이었던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그 우울은 너무나 컸다)로 부터 나를 구해냈다. 나를 구한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 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123p


1.

며칠 전 부터 이 책을 다시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4년전에 쓴 일기에 옮겨 놓은 구절을 발견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좀 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힘들었던 나의 2008년과 2009년 어느날 까지, 조금은 외로웠던 그 시절의 마음이, 누군가의 87년 6월과 누군가의 89년 11월의 마음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등장인물과 스물 예닐곱의 내가 겪은 시대와 사건들은 분명 다른 것이었는데, 어떤 시절에 대해 비슷한 회고와 간증을 하고 있다는게 매우 흥미로웠다. 소설을 한장 한장 읽을 수록 나는 왠지 위로 받는 기분이었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졌다. 



2.

살면서 다시 겪지는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내가 겪고 있는 어떤 감정들, 불편함 같은 것들이 말이라는 형태로 잘 만들어지지 않아 곤란함을 느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실없는 이야기만 나누기 일쑤였다. 죽어간 아이들에 대해서, 남은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정부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금세 다른 것으로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누구를 만나든 약속이나 한 듯 그 대화를 오래 이어가지 않았다. 나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툭하고 나올까 노심초사했고, 잘 정리되지 않은 다른이들의 감정들을 보고 듣는 것은 불편했다.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 궁금하지만 묻고싶지는 않았다. 



3.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갑자기 찾아든 이 시간으로 부터 나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나에겐 지금 겪고있는 이 시간들에 대한 적절한 언어가 필요했다. 어쩌면 몇년전 허벅지를 치며 읽었던 이 이야기에서 나는 그 언어를 발굴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이 구절을 읽다 생각해보니, 2009년에 나를 구해냈던 생각들과 문장들이 2014년의 나를 다시 구해내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내가 2009년의 경험, 그러니까 세차게 밀려들던 사회적 우울에서 나 자신을 구해낸 그 경험에 그간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 했고, 어쩌면 그것이 나의 발목을 잡고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점이 많으니, 막연히 이 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해결도 그 때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정말 간과하고 있었던 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 그 시절 나를 구했던 깨달음은 내 삶의 태도와 방향, 크고작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더이상 나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 (이라는 것을 간만에 만난 동생과의 ‘연애 사건을 통한 자기발견 간증 퍼레이드'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