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조금 들뜬 기분으로 지냈다.  그 엄청난 데이터를 멋진 책으로 정리 해 낸 것을 보는 행운을 얻은 것만해도 좋은 일이었지만 내가 이제껏 해왔고 좋아했던 일들을 정리하는데, 앞으로 해야할 일을 계획하는데 의외로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가장 들뜨게 만들었던 것은 '성인발달'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이었다.

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자가성장'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많이 썼는데, 지나고 보니 의외로 내가 그것에 상당히 공감했고 좋아했었구나 싶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조직 내에서 말로만 강조했던 것 보다, 그것을 타인을 통해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에서 받은 감동 같은 것들이 역으로 나의 성장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느껴지곤 했었다.
 
그것은 예를들면 이런것이었다. 어르신문화학교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 당시 여덟살이었던 나의 막둥이 동생이 커 가는것 보다 무서운 속도와 에너지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것.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지 한참이 지난듯한, 이전의 나는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어떤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그 감정을 나누고, 자신의 욕구들을 드러내기 시작할때. 그들이 이전에 가져보지 못했던 새로운 에너지와 자신감과 행복감을 이야기 할때면 나도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올라와서 목청이 얼얼해지곤 했었다.

 얼마전에 누군가는 내가 굉장히 낭만적인 프로젝트만 경험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이는 발견을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말에도 정말 공감을 했다. 그치만 어찌되었건 내게 중요한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성장방식과 문제 해결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꺼내어 보여질때, 혹은 그 계기를 맞닥드릴때,  자기 스스로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타인을 굉장히 감동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데 있다. 그리고 또하나,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픈 욕구가 있어서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막다른 지점에 서거나 막막할때면 새로운 관심 대상을 찾는다는것. 그중에서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가장 심리적으로 안전한 선택이면서도 의외로 가장 쉽게 접근할수있는 방법론이라는 것.

 학부시절에 심리학과를 졸업하긴 했지만, 어린이발달이 주요 관심분야였던 발달심리학 시간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느날 읽은 심리학 책에서 '성인발달연구'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면서 새로운 맥락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조금씩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이 성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관심있어 하고, 그를 통해 감동받는 삶을 살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어린이나 청소년, 혹은 전통적인 심리학에서 주로 대상으로 삼고 있던 대상들보다는, 나와 비슷하거나 우리 엄마와 아빠 비슷한, 내가 언젠가는 될 수 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대상에 더 가까운 일일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정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민을 시작하던 무렵에 어느날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엄마 퇴직하면 뭐하지?' . 사실 엄마의 퇴직 이후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문득 걱정이 되었다. 아직 퇴임때 까진 12년 정도가 남았지만, 20대 이후로 주욱 사회생활을 해오시던 엄마에게 퇴직 이후는 어떤 삶이 주어질까.  그치만, 이 역시도 사람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는 명제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어느날 등산을 하다가 내려오는길에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상담심리학을 공부해 보는건 어떨까? 요즘 그 책들을 봤는데 재미있게 할 수 있을것 같아'. 얼마동안 내 책들이 엄마방 침대에서 발견되곤 하더니, 혹시 그 영향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엄마가 진짜 일년이나 이년후에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실지, 아니면 그 사이에 또 다른 관심분야가 생겨 다른 계획이 생겨날지는 모를일이다. 그치만 그 역시 그녀가 고민하고 선택하겠지. 나는 옆에서 아주 조금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열심히 그녀의 성장을 관찰해야겠다 생각했다. 

 한편 요즘 우리아빠는 며칠전부터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셨다. 계속 쳐져있으신 모습이 걱정 되었었는데, 요즘은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에너지가 넘치시는것 같다. 그 모습이 꼭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가장 왕성하던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생소하면서도 상당히 반갑기도 하고 좋은 때인것 같다. 아빠 스스로도 말씀하셨듯, 문제해결을 위해 출발한 이 취미생활은, 새로이 도전 할만한것 그리고 이를 위해 탐색해야할 정보들이 생겨나면서 굉장히 다이나믹한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지속성의 문제나 비용의 문제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변화를 맞이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신호라고 느껴진다.

내가 줄곧 관심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성장과 전환의 '계기'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가의 문제다. 우리 엄마가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때, 우리 아빠가 새로운 도전의 계기를 찾으려 혼자서 고군 분투할 때 어디에 가면, 어떤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마련되면 더 쉽고 다양한 선택을 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이를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풀자면, 어떻게 하면 무한 잠재력을 가진 어른들의 성장판을 자극할 수 있을까 하는 것. 우리 막딩이가 먹는 키크는 한약이나, 성장판 자극 운동화같은 아이템들 처럼 어른들을 위한 서비스들은 어떻게 기획되고 유통되어야 하는 지의 문제

사실 내가 경험했던 프로젝트나 가족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을 찾아보거나 경험해보고 싶다.
이 외에도 몇가지 심도있게 다루고 싶은 주제들이 생겼다.

생활문화공동체조사 때, 결국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수의 몇몇 사람들이 다양한 모임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는데, 성인발달과 관련한 교육참여에 있어서도
- 개인 성향과 경제 여건의 차이가 큰 변수일까

왜 평생교육원이나 복지관 등에서 밸리댄스나 동화구연 처럼, 소수의 프로그램들이 확대 재생산 되는가?
- 프로그램 연구 개발의 문제일까, 수요에 따른 문제일까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프로그램 리스트가 주어지거나 이미 인지하고 있는 프로그램일때만
   그에 대한 수요를 느끼는가? (일종의 경험재이기 때문에)

홍보의 기획은 어떠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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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나다. by 안쿵쿵
 








'왜 이곳은 간판이 다 꽃집이었다가 장의사로 바뀐거야?'

벌교 읍내를 거닐다가
누군가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것을 듣고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한 거리에 4개 정도의 큰 가게가 있었는데
그 중 세개는 원래 간판은 꽃집, 지금의 간판은 장의사
그 중 하나는 원래 간판은 꽃집, 지금은 건강원

시골에서 꽃이 가장 많이 필요할때가 장례식때 국화여서 그런가부지
라고 은희언니 말대로 생각을 해도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이것이 고령화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실제로 시골로 갈수록 병원은 없고
개별 장례식장만 덩그러니 덩그러니 있는데
그 느낌과도 비슷했다.

꽃집의 간판을 장의사의 간판으로 바꾸어야 했을때,
꽃집의 간판이 장의사의 간판으로 바뀐것을 보았을때.
주인과 주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날도, 그저 그런 일상적인 어떤 날이었겠지?

흠..



한편으로 이런생각도 들었다.

전라도에서 가장 힘쎈 남자들이 많았다는 벌교
그 힘쎈 남자들이 하나같이 로맨티스트라
이 작은 벌교 읍내에 저렇게 큰 꽃집들이 즐비했던걸까.하고 ㅋㅋ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2008 / 한국)
출연 최원균, 이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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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를 처음 알게 된건 얼마 전 회사 동료가 메신저를 통해 보내준 워낭소리 예고편 때문이었다.

40살 먹은 소(보통 소의 평균수명은 13살이랜다), 40여년을 소와 함께한, 소때문에 살고 소때문에 일한다는 할아버지. 영화도중에 나오는 ‘소가 사람보다 나아’라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소와 할아버지의 우정을 다룬는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예고편이었다. 40살 먹은 소가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릴 때,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예고편을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같이 울어버렸다.

 

설 연휴 전날, 토요일 오후. 역시 명절때의 서울은 한산하구나.. 하며 넓은 광화문 대로를 걸어 씨네큐브로 향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영화관, 평소보다 많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관람객들. 워낭소리가 이렇게 인기가 많은 영화였나? 음. 이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알고 온걸까? 마케팅을 잘한걸까? 역시 예고편이 너무 감동적이었나? .  예술영화관에서나 상영할법한 영화인데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의 기록을 깰 것이라는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보고나서. 수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요즘 한창 고민이 많은 시절이라, 아님 워낙에 생각이 많은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한편의 다큐멘터리였다. 처음에는 예고편에 나오듯 소와 할아버지의 정, 사랑이라는 주제의 선을 이어가려 노력을 하며 보았지만, 그
정선을 이어가는건 그리 쉬운편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예고편을 만드는 해석자의 하나의 해석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와 사람의 관계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할아버지 세대, 그리고 할아버지를 대하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18살에 시집와서 9남매를 낳고, 지금은 소보다 자기가 뒷전이라며 80이 넘은 나이에 투정부리고 삐지는 할머니. 소와 영감때문에 너무 고생이라며 한참을 투정부리다가도 소와 영감에게 온갖 정을 쏟아내는 할머니. 영감이 죽으면 자기가 뭘 하겠냐며 따라 세상을 떠야겠다 이야기 하는 할머니. 떽떽거리는듯 하지만 80이 넘어서도 활짝 웃으며 그나이에 맞는 애교를 부리는.


 


그녀에게, 또 저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같이 산다는것, 평생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사랑일까 오랜 정일까. 아니면 오랜 정듬이 사랑일까. 이제는 그런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어떤 깊은 연결일까.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이는 저들의 관계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이가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면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그런 관계일까. 아니면 우리의 세대는 혹은 내 자신은 죽을때 까지 이해못할 그런 이야기 일까. 우리의 할머니 세대, 우리의 어머니 세대, 그리고 나. 어쩌면 그녀들에게 사랑이란, 그녀들에게 결혼이란 어쩌면 전혀 다른 어떤것일지도 모르잖아.

 

그러한 생각은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이어진다. 소가 업이라는 할아버지. 그의 고집, 그의 행동에서 어떤 ‘장인’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가업을 물려 받는 일본의 작은사업가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그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자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바로 전 감독은 이러한 자막을 올려 보낸다, “자식의 공부를 책임 졌던 그시절 이땅의 소와 아버지들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고  

 

죽어도 좋아의 한장면도 스쳐 지나가고, 실버를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이년전, 스물다섯의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자식들과의 소통이나, 그들의 상실감에 대한 보상. 그러한 것들만이 행복의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시대, 그들의 관계, 그들의 삶이 가지고 있는 수백만 수천만개의 화두 중에 바로 지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에 대한 매력을 다시금 느낀다. 절묘하고 조심스럽게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기. 바라보되, 끼어들지 않기. 재미있을 것 같지만 답답하고 어려울것만 같은일. 아마도 내가 상상하는것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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