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가수에 빠진 십대 소녀같은 고백이긴 하지만)
김연수님의 문장을 읽을 때면, 늘 연애편지를 읽는 느낌이다. 
그리고 (과한 의미부여인지, 자의적 해석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말도 안되게 엄청난 위로를 받게된다. 

그러니까, 오늘이 그런날이다. 말도안되게 엄청난, 의외의 위로를 받은. 
읽고 또 읽어도 좋은 김연수님의 자전소설 '뉴욕제과점' 
다섯번도 더 읽은 이 단편소설이 오늘따라 가슴속에 툭 하고 와닿았다. 


... 동봉한 편지에 아버지는 "나는 너를 믿는다. 네 소신껏 희망을 갖고 밀고 나가거라. 어짜피 인생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냐" 라고 써놓은 뒤,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했다.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니겠냐'라고 쓴 뒤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중간에 '느'자를 삽입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가 생긴뒤에야 나는 그게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알게 됐다. ...

... 내게 보낸 편지에서 "어짜피 인생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아버지는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편지를 쓸 때쯤이면 그 차이를 알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왜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지, 왜 세상의 모든 불빛은 결국 풀풀풀 반짝이면서 멀어지는지, 왜 모든것은 기억 속에서만 영원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다음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 정도의 짧은 시간만 흐르고 나면 나도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 

... 어느 날인가 나는 문득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는 괴로운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늘 누군가 내가 알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내가 알던 거리가 바뀔 것이고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안에 간직한 불빛들을 하나둘 꺼내보는 일이 잦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사탕을 넣어둔 유리항아리 뚜껑을 자꾸만 열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빤히 보이는 그 불빛들이 그리워 자꾸만 과거 속으로 내달았다. 추억 속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그 불빛들의 중심에는 뉴욕제과점이 늘 존재한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는 동안, 뉴욕제과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뉴욕제과점이 내게 만들어준 추억으로 나는 살아가는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에서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이세상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내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됐다. 그 즈음 내게는 아이가 생겼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그 아이가 나 없는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
 
- 김연수, 뉴욕제과점 중에서.




반짝 반짝 빛나던, 고요함을 간직한채 여전히 빛나고 있는 그 시간들이 새삼 소중해 졌다. 
이문세 아저씨의 노랫말을 조금 응용하자면,
그 빛들은 빛나는 대로 내버려 두는게 조금은 어른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이상 반짝이지 않지만, 그 빛은 내안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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