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감정에 솔직해 진다는 것, 그래서 행복할까?
어쩔수 없다는 것, 변명일까 책임회피일까 정말 어쩔수 없는것일까

요즘은 이런 유아적인 질문에 자주 부딫힌다.
질문이 참 유아적이다 생각하면서도
글쓰기의 주제를 맨위에 써놓고
한 단어도 내려 쓰지 못하고 있는 내가
참 답답하다.  

돌아버릴것만 같다.
당연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강박
내 주변의 모든 상황을 확산적으로 분석하려는 궤변욕구
simple is best인것인데
나는 대박상품을 만들어낼 마케터가 되긴 글렀다. 아씨.

웹 2.0시대에 도래하면서 마케팅도 변화의 시대를 맞는다.
고전적인 마케팅이 '우리가 진수성찬을 차렸습니다. 그러니 여기와서 맛보실래요?'였다면
웹 2.0시대엔 여기 빈그릇이 있으니 알아서 요리해 드세요. 라는 것
한마디로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도,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도 통제력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있다는것.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 마케팅을 해오던 마케터들은
자신들의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하고,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한단다.

내가 살고있는 일상의 삶도 웹2.0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공연무대위에서 연기하듯 '어떠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의외로 성공률이 높지 않다.
사람들은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환경에 대해서 어떤 단편적인 것을 보고
'안쿵쿵은 어떤 사람이야.' 혹은 '오늘은 안쿵쿵 기분이 어떠어떠 하구나..' 라고 단정하곤 한다.
그러한 타인의 반응과 말들이 다시 나의 무언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떤 누군가는 그것이야 말로 타인에게 보여지는 내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때때로 그것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아닐때가 많다.  

(아 근데 나 무슨 글을 영어 번역하듯 쓰니 ㅋㅋ)

돌이켜 생각해보면,
타인의 생각에 대해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부터가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통제력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항상 두렵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고
또 그것이 항상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것에 힘들어 하느라 가끔은 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던 것도 같아
새삼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럽기도 하다.

웹2.0시대에 기획자는 플랫폼을 만들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들을 상상할수 없는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집단 지성의 힘이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 또한 계획은 짤 수 있지만
그 속의 사건들과 사소한 감정들을 다 예상할수는 없는 것인데
뭘 그리 사소한 것들에 상처받고 힘들어 했을까.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는 거라 말은 잘 하면서
조금만 힘들거나, 조금만 어색하거나, 조금만 싫은 것들이 나타나면
왜그렇게 못마땅해 안달이었을까.

왜 그렇게 모두들 서로를 통제하지 못해 안달일까.

나의 모습이,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스승과 나의 동료와 옛연인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아 또 추상적인 글을 써대면서,
'자신의 감정 표현을 추상적으로 하는 네가 외로워 보여' 라고 했던 친구의 얼굴도 떠오른다.




**
언젠가 부터 생각을 지구끝까지 펼쳐놓고
답을 찾지 않은채 동굴로 숨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에이 이 나쁜 습관 같으니.

***
간만에 굉장히 몰입해 들었던 강의내용을 상기하면서 흠칫 놀랐다.
어쩌면 웹 2.0은 사람사는 세상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한 시도였을까?
3.0은 얼마나 더 사람사는 세상같을까.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중학생이 자살을 했단다.
입시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해삼이는,
학원에 학생이 확 줄었다며 경기침체를 체감한단다.
얼마전에 한 친구를 만난것이 내내 불쾌했는데,
어쩌다 그의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미안해 졌다.
뭘 해도 잘할수 있을것 같은 친구였는데, 그가 겪어야 하는 사회는
그다지 녹록치 않아보였다.

행복한 사회란 어떤걸까.
분명한것은,
경제지수가 높은 사회,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가
반드시 보다더 행복한 사회는 아닐것이라는 거다.

경제지수가 높은 사회와 행복지수가 반대인 사례는 많이 봐왔는데,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도 그렇다고?
음. 글쎄, 행복지수라는 것도 어떤 이데올로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긍정'
광우병과 촛불, 쿠바와 자본주의를 겪으면서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기 긍정'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행복한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도
'자기 긍정'은 중요하다는 나름의 결론이기도 하다.

내가 연구자의 삶을 살지, 기획자의 삶을 살지, 여행자의 삶을 살지, 공무원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 '자기긍정'이라는 것은 내 삶의 지침이자, 연구의 대상이자, 실험의 대상이자, 대화의 소재가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스물여섯의 가을,
온전히 '나'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스물여섯,
4년차 연구원,
독특한 이력서,
어디에 내보이기 애매한 재능,
세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호기심,
커다란 꿈,
손에 잡히지 않는 길

복잡하긴 하지만 온전히 막연하진 않다.
딱히 성장모델을 찾고 싶지도 않다.

가장 나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지금 당장 그 답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머릿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얻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조급해 지는 마음을 도닥이고 있다.

"안쿵쿵,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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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쿵쿵의 이번주 슬로건은

쌩유 달라이라마 입니다. 호호호

좀 뜬금이 없나. ㅋㅋㅋㅋㅋ

뭐가 그리도 불만이었는지

한껏 찌푸린 얼굴로 지난주를 보내다가

헤어나오고있는 모오드라..

쨋든 시기적절하게 다시찾은 달라이라마에게 감사하고 싶달까 ㅋㅋ

이 가을도 열심히 사는 큐엑서 여러분들에게,

사무실 분위기와는 다르게 조용조용한 이 커뮤니티도 달래줄겸,

또,

오늘부터 시작할 쥬스 업그레이드 10주과정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첫수업 을 기념하여!

안쿵에게 힘을 줬던 달라이라마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 개인적으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교육같은것은,

1,2,3,4, 가 즐비한 경영학적인 접근 보다는

이런 철학적 접근으로 진행을 해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도 당연한것 같지만 어떤 영역에서나 발견이 되는,

인류보편적인 어떤것들- 요즘 안쿵의 새로운 화두이기도 하지요-

+ 문득 생각나는 것이,

지난 2월 카네기리더십 코스 막바지에

여러분들께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같은 행복해 지는 자극들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서야.. ㅋㅋㅋㅋㅋㅋ)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中

시각을 바꾸는 능력,

곧 자신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능력은

마음의 유연성에서 나온다.

마음의 유연성은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모든 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해준다.

다시말해 충분히 살아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유연성은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노력,

그리고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처함 구체적인 상황뿐 아니라

전체의 큰 그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큰 세상과 작은 세상을 동시에 보는 능력은

사물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주고,

나아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물론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때

당신은 개인의 시각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차원에서도

이들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유연하고 넓은 시각에 대해 이야기 할때

그것은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개인, 공동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말이다.

이것과 함께 달라이라마는 몇가지 기본적인 사항들을 제시합니다

1. 나는 인간 존재다

2. 나는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3. 다른 인간 존재도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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