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르모에 도착하고부터 나는 이번 여행이 재미있어졌다. 이 도시가 왜 이렇게 좋은가를 생각하다가, 나는 늘 다양한 사람, 문화, 취향과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어떤 조화를 이루는 장 혹은 장소에 흥미를 느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질적이라 여겨질법한 것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장. 저마다 자기다움을 잃지않지만, 동시에 주변과의 어울림을 고려하는 여유와 미적감각이 있는.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색할 것도 없는 그런 공간 혹은 그런 분위기, 그런 사람들. 통치나 지배, 목표와 계획의 문법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없는, 우연적 사건과 만남 속에서 계속 변화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변화중인, 팔레르모는 그런 느낌의 도시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에 대한 감탄사를 양념처럼 뿌려가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맥락없는 수다를 쉴새없이 떨었다. 무언가 나와 이질적인 것, 당시의 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법한 것들과 부딪힘이 없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부딪힘들 속에서 알게모르게 생겨버린 상처 혹은 어디서 주워들은 어쭙잖은 지식같은 것들에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움츠러들거나 주저하는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주 까먹곤 하는 것은, 내가 움츠러들어있든 그렇지않든 이전에 상상도 하지못한 새로운 것과의 부딪힘을 내 스스로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억해야한다. 부딪힘과 흔들림의 과정 끝에 결국 우리는 자기다움을 되찾아왔다는 것을. 그것은 어제의 나와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쉽게 조언하거나 요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변덕스럽고 수다스러운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주는 나의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을!

#미켈란젤로이펙트 #우정과환대의공동체안에서용기있는개인이탄생한다 #간만에아나키즘이소환된밤 #하필팔레르모를떠나도착한도시가 #아나키스트의성지 #볼로냐 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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