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망했어? 너무 평범해서 그랬던거야?'
대뫙이 그렇게 물었다.

흠칫.

한번도 그들에게 '평범하다'는 말을 쓰려고 시도하지 않았었는데,
단번에 그말이 나오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  *  *  *  *

홍대앞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은,
홍대 한 귀퉁이에 아주 째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인간 박개완'이라는 바를 발견하여
너무나도 자유롭고 스스럼 없는
하지만 너무 따뜻하고 설레이는 그런 분위기에
밤이 새는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쏟아내던 밤이었다.

"난 고등학교때 홍대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도 컸었나봐.
티비에 나오는 독립문화, 인디문화가 나에겐 너무 동경의 대상이었었는데,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되어 실제 그들을 만나보고나서는
조금 실망을 했던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대뫙이 물었다.

'왜 실망했어? 너무 평범해서 그랬던거야?'

*  *  *  *  *

그 대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었다.
나는 대뫙의 분석에 어느정도 동의했고,
그 이야기를 오래 끌고 싶은 마음이 서로 없었던것 같다.
신세대 문화, 홍대문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그였기에,
어쩌면 내가 또 비겁한평화주의자모드이고 싶었던지도.

짧은대화, 긴 여운.
은 이럴때도 쓰일수 있는 말인가부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어렸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는
홍대에만 가면 '괴짜'들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사람 한사람이 엄청 특이한 어떤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스물여섯이 되어 다시 그 기억을 꺼내어 보니,
실로 홍대앞에 괴짜들만 있었다면
홍대앞에 인디문화와 젊은예술가들의 네트워크가 꽃피워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스물세살즈음에,
그들을 가까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사람 한사람 면면을 보면 그리 평범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물론 '홍대'라는 어떤 아우라 속에 있어 평범해 보이지 않던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내가 기대했던 괴짜들도 많았던 기억이 있다.

다만, 한 시대에
어떤 집단이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소통하는 것은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아마도 나는 그 겉모습만 보고
그것을 '평범하다'고 규정지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들 속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전에
'실망스럽다'라는 핑계로
거리를 두려 했던 내가 그속에 있다.

그시절 내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것이 진짜 실망이었든, 질투심이었든
나와 맞는 코드가 아니라고 나 스스로 판단했으니까.

또, 언제나 근거없는 '동경'의 대상은
현실의 세계에서'실망'을 수반하게 마련이니까.


단지,

평범한 한 사람, 한사람이 모여
어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평범한 의사소통체계를 통해
또다른 평범한 이들과 교류가 될때
비로소 '어떤 새로운 문화'가 꽃피워 진다는
적어도 지금 나의 문화지론에 비추어 봤을때

스물두살, 스물세살의 나는
얼마나 오만하고 무식했나 싶어
얼굴이 빨개질뿐.


*  *  *






 






안혜정 | 기분좋은트렌드하우스QX 리서치팀장

동물 사랑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
개털에 원색의 염색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새기는 이벤트가 진행되는가 하면 불 속에 뛰어드는 개 퍼포먼스도 등장했다. 서커스단만 봐도 신기한데, 개들이 그러고 있는 걸 보니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한편으로 사람을 위해 개들이 희생하는 건 아닐까 가슴 한쪽이 무거워졌다. 마음속에 든 의문을 하나를 꺼내본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뭘까?’
그 질문에 딱히 정답이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자칭 ‘애완동물 마니아’ 라는 사람들 간에도 애완동물에 애정을 쏟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법. 우수한 혈통의 개를 기르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 애완동물의 외모를 단장하면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 자신과 똑 닮은 애완동물을 찾아 자식처럼 기르는 사람, 많은 비용을 들여 훈련하고 만족하는 사람 등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에 따라, 넓게 보면 나라나 시대적 환경에 따라 애완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애완동물 500만 시대. 애견 행사에 참여할 정도의 적극적인 애완동물 마니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이들이 늘어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2007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실시한 ‘동물 보호에 관한 국민 의사 조사’ 에 따르면 국민의 22.6%가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한다. 그중 77%가 ‘가족이 동물을 좋아해서’ 등 정서적인 이유로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답했다.
애완동물은 장식용이자 지위를 상징하기도 하고, 사람을 도와주기도, 친구나 가족이 되어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열광하는 이유 가운데 정서적 면이 가장 크다. 핵가족화와 노령화는 애완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기르는 데 일조했다.
애완동물의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가정에서 기르는 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전통적으로 애완동물의 일인자 자리를 차지하던 개와 고양이 이외에도 토끼, 고슴도치, 햄스터 등 다양한 동물을 가까이에서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뱀이나 독거미까지도 애완동물의 반열에 올라섰다.
혹자는 동물과 정서적인 유대를 맺는 문화가 동물을 식용이나 도구로 활용하는 문화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16세기 유럽 선교사들과 신대륙 개척자들은 동물과 정서적 유대를 가지는 원주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원주민들은 대가를 지불해도 동물들과 떨어지기를 싫어했으며, 강제로 동물들과 떨어뜨려놓으면 슬퍼했다고 전한다. 개와 고양이가 가장 보편적인 애완동물로 사랑받게 된 것도 정서적인 유대관계를 발전시키기에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은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람의 장난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로 가치를 재인식하자는 움직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노라면, 가끔 그 사람들이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개팔자가 상팔자?
1999년 미국애완동물협회는 재미있는 조사를 진행했다.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애완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물은 것. 전체 4,314만3,849명의 응답자 중 개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66.1%, 개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준다고 응답한 사람이 22.8%에 달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개를 기르는 미국인 중 반 이상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개를 더 사랑한다고 응답했다.
애완동물에게 품는 애정은 보살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욕구, 더 많은 시간을 애완동물과 함께 즐기고 싶은 욕구로 발전하는데, 이는 나날이 고급스러워지는 애견산업 영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의 조사 결과 역시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결과지만,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당연한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애견과 함께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로서는 오랜 시간 집을 비울 때 자신의 애완동물을 어딘가에 맡겨야 하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애완동물 위탁 보호시설은 이미 상용화했다. 최근에는 개와 주인이 함께할 수 있는 펜션, 테마파크 등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애견 테마파크는 애견 호텔뿐 아니라 애견 수영장과 애견 운동장을 마련해놓았다. 별도의 애견 공간을 마련하는 위탁 서비스를 넘어 본격적으로 개를 위한 놀이와 체험 프로그램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건강검진과 미용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다. 애견 스쿨도 인기인데, 주인이 자신의 애견을 좀 더 잘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도록 수의학 상식이나 미용 강좌 등을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시청하는 애견 관련 TV 프로그램이 아닌, 개가 보는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다. 일본의 한 완구회사는 애견이 짖는 소리를 해독해주는 통역기를 내놓았다. 이 통역기는 욕구불만, 경고, 행복, 슬픔, 자기표현, 욕망 이렇게 여섯 가지 감정을 최대 200가지 언어로 통역하는데, 자신의 애완동물과 더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주인들의 전폭적인 관심을 받으며 히트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이쯤 되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은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해야 하는 건 아닐까.

감사와 배려가 있는 애완동물 문화를 기대하며
애완동물을 수단이나 도구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하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애완동물은 사람들에게 인간 외의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관계와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시사점이 있다.
하지만 나날이 다양해지는 애견 관련 이벤트와 고급스러워지는 애견 서비스를 지켜보면서 동물에게 인간세계의 문화와 트렌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일본에서 개발한 통역기라도 구해 동물들의 의견을 물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말했듯이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나 형태는 정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애완동물을 배려하는 마음, 애완동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출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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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교육  ; 메이킹 + 러닝

복합문화공간 ; 엔터테인먼트 + 쇼핑 

주상복합에 카페가 생기다. ; 커뮤니티,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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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분야에서 일한지도 4년

체험교육, 복합문화공간, 카페.. 

그러고 보니 지겹도록 이 단어들을 쓴 듯 하다. 


자료조사를 하다가 문득

이러한 용어 정의들이 얼마나 구시대적인가 하고 

흠칫 했다. 



다음은 홍대에 있는 한 카페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살펴보자. 

 

커피를 마신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

친구를 만난다

배운다 

동호인을 만난다. 

전시를 본다. 

만든다.

전시를 한다. 

산다 

판다



이곳의 업종은 카페다. 수제초콜릿을 파는 카페.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행동을 한다. 


공간의 기능은 복합적인데 

사람에 따라 공간을 사용하는 목적과 용도가 다르다. 

예전에는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하면 코엑스같은 넓은 공간을 떠올렸지만

이곳의 경우는 고작 테이블 세개뿐인 까페. 


트렌드세터들이 많이 찾는 홍대에는

몇년전 부터 카페와 특징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전시나 공연을 보는 것 보다 

홍대에 있는 카페에 가서 차한잔 마시는 것이 

더 문화적인 생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경우 그곳에만 가도 

홍대에서 요즘 어떤 작업들이 이루어 지고 있는지

누가 뜨고 있는지 알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곳엔 상시 전시가 이루어 지고 

어떤곳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만 모여있고,

어떤 곳에 가면 2시간 짜리 커피강의(물론무료)를 

주인에게 들을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게 없어도 그 지역, 그 분위기에서 차한잔 마시는 것 자체가

내겐 문화적인 행동이다. 



가게의 홍보에서 입소문을 무시못하는것이 이러한 곳들의 특징인데,  

나는 새로운 까페를 소개하거나 소개받을때 마다

어떤 재미있는 점들을 발견하게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그곳의 메뉴가 뭐야? 라던가 분위기가 어때? 라는 것을 묻는게 아니라 

그 가게 주인은 뭐하던 사람이야? 를 먼저 궁금해한다는 거였다. 


왜일까?  


주인의 배경 (나이, 직업, 활동분야)에 따라 

그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은 더이상 커피 한잔을 위해 카페를 찾지는 않는것 같다. 

그리고 앉아서 이야기 할 곳을 찾기위해 

쫒기듯 눈에보이는 카페에 들어가는 시대도 아닌듯 하다. 

얼마전 진영이 논문을 쓸때 발견했던 것 처럼 

많은 사람들은 커피가 아니라 먹거리 (예를들면 와플, 샌드위치,초콜릿 등)정보가

카페 선택에서 더 중요한 정보가 되고,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며 

어떤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 지는 시점에 온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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