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_작가의 말, 『세계의 끝 여자친구』



언젠가 부터, 소설은 잘 안읽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들고 보다가
책 뒷면에 나와있는 작가의 말 (위의 글) 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 멍하게 있는 시간, 잠들기전, 친구와 마주할때
시도때도 없이 저 구절이 떠올라서 몇번이고 마음이 짠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작가가 쓴 중,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매번 작가는 흥미로운 상황을 만들고 그 속에서 요즘의 고민을 이야기 한다.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이해하려 노력하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좋은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이토록 반갑고 고마운 것이로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만 십오 년, 김연수 작가는 여섯 권의 장편소설과 이번에 출간 된 네번째 작품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까지, 소설로만 열 권째 작품집을 ...





내가 정말 '좋아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를 담은, '좋아서 만든 영화'의 '좋아서 쓰는 감상문'


당신에게 '좋아서 하는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지난 여름 제천영화제때 청풍호반 주차장 한편에서 이 다큐를 마주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 이라는 포인트가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두개의 계절을 지나 겨울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나'뿐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일, 그리고
'남들도 좋아하여 멈출수 없는 일' 이라는 포인트가 마음속에 콕 박혔다.


며칠전에 친구랑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이 영화에 대해 평하길, 88만원 세대가 나가야 할길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평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지난 여름의 나의 고민이 떠올랐다.

지난 여름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좋아서 하는 밴드, 그들을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좋아서 만든 다큐,
이들처럼 '좋아서 하는'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사항 같은게 있었다.
그때 한창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로 운동(movement)하기'라는
주제에 혼자서 꽂혀 있을때였었는데, 만약 좋아서 하는 시리즈가 나온다면
정말 파급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꿈을 꾸었던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저 음악이 혹은 그들 세계의 시도와 도전이 '좋아서' 하는 그들이
이러한 희망사항 혹은 기대를 맞닥뜨렸을때, 그들에게 부담감이 겠구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영상속의 그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그런데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며,
그리고 오늘 아침 친구의 메일 한통을 받고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안쿵쿵, 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뭘까? (많지만...ㅋㅋ)
사람들의 삶에서 타인들에게 자극이 될만한 의미를 발견해 내고, 의미를 부여하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힘을 실어 주는 일.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작게 시작해보는 것,
나의 희망사항과 꿈을 표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좋아서 하는일, 하고 싶은것이
만약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된다면, '너'도 좋아하는 일이 된다면
그리고 그 과정이 혹은 그 결과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 된다면.

그런 상상이 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면
일단,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싶은지 '표현'해야 하니까.
(처음엔 '신인가수처럼 실수도 해가며')
좋아서 하는 밴드가, 좋아서 영화를 만든 알만한 사람들의 두 감독이 그러했던 것 처럼!



 +  해피엔드


좋아서 하고 있나요? 좋아서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 영화 <좋아서 만든 영화>는 관객에게 간단하지만,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












지난주 한일공동기획 '취업난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막바지에 내 또래 아이들이 인터뷰하는 장면들이 모자이크처럼 나왔는데 그 장면들을 보다가 눈물을 팡팡 쏟고 말았다.

그 다큐멘터리는 한시간 내내 따뜻한 시각으로 취업난 속에 있는 우리 또래 아이들을 바라보려 애쓰는듯 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씁쓸함과 냉소가 느껴졌고, 다큐멘터리 감독보다 나 스스로 내 또래 아이들에게 씁쓸해 하며 냉소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더 괴로웠다. 게다가 그 느낌이 88만원 세대나 너외롭구나 류의 책을 읽다 덮을때의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기분나쁨과 비슷한 느낌이라 더 감정이 격해졌다.

어찌되었건, 너무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세대가 적응해야할 (취업고시생의 관점) 혹은, 우리세대가 짱돌을 던지며 깨부수어야 할 (88만원세대 마지막에 대안으로 제시된)것, 그 구조, 그 시스템이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거대하고 견고할것이라는  '두려움' 그것이었다.
(며칠전에 썼던 일기에서 이야기 했듯 그 시스템이 아무리 거대해봤자 분명 허술할게 분명한데도(ㅋㅋㅋ)
사실이 어찌되었건 그 두려움의 크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클것같다는 예감)

이번주 들어 부쩍 '시스템과 구조'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 감상문을 쓰다 보니까 자극의 포인트가 보다 명확해 지는 느낌이다.
사실상 큰 흐름을 만드는 것, 큰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사람 한사람이 열심히 하는 것의 문제를 떠나
시스템과 구조에서 어느정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취업이 안되지? 하던 친구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수익이 이모양이지? 하던 동료
다른데 비슷한 느낌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상적인 시스템과 구조가 떡하니 나타나지 않을 테지.

시스템과 구조의 실험이 계속 되는 동안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 인식, 좌절보다는 꿈을 꿀 수 있는 관점의 2%, 
자신감, 에너지, 콘텐츠 보다는 뼈대를 만들어 내는 창의력

이에더해
사실 (정치적, 감성적) 권력과 부는
시대와 역사에 따라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조건들이 달랐다는
길고긴 역사와 우주속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다초점 렌즈형 시각


* 며칠전에 알랭드 보통님하의 불안을 다시 읽고 또 좀 은혜입었음

* 나는 다초점 렌즈형 시각인것이 좋은데, 현실인식이 항상 너무 부족하여 '남들이 보기에' 불안한 삶을 살고 있음.
   그치만 나는 이러한 삶도 좋고,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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