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 제목을 붙이라면 나는 기꺼이 ‘가족의 발견’이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다. 아마 가족이랑 10년씩이나 떨어져 살았던 나이기에 내겐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태어난 막딩이랑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떨어지지 않고 같이 보낸게 처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주일간의 가족여행은 나에겐 무척이나 오랜만이고 새로운 그런 경험이었다.


 나는 ‘발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즐겨 쓴다. 기억력은 우주최강으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래서) 내가 매일 매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는 좋다. 매일 매일이 새롭고 신선하기 때문이다. 일주일간의 발견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1. 타일랜드에서는 편식쟁이 막둥이 보다는 엄마가 더 편식쟁이라는 것
: 편식은 처음이라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 처음이라는 두려움 보다 더 큰 것은 불확실한 기억일테지


2. 막둥이의 대충 영어가 의외로 타일랜드에서는 잘 통한다는 것. ( 나와 안해삼의 전자사전식 영어회화보다 더 낫더라.)


: 원래 콩글리시는 영어권이 아닌 나라 사람들에게 훨씬 잘 통하지만, 콩글리시와 타잉글리시가 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태국어를 배운적 없지만, 태국인들이 말하는 구조, 맥락을 만드는 문화가 비슷한 것 같다 느꼈다. 지난번에 전주에서 만난 태국여인이 ‘똑짜이’ (직역하면, 심장이 쿵 떨어졌다. 놀랐다는 태국식 표현임) 라는 표현을 알려 줬을 때 정말 똑짜이 했었는데..


3. 온리 한국어로로 이탈리아 사람들과 3분이상 대화할 수 있는 엄마 : 그래 눈빛으로 다 통해 - ㅋㅋ


4. 말하자면 ‘통장에 돈이 떨어질 때 까지 가보는 세계일주’를 하고있는 안해삼의 여행자정신

: 알고보니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튼튼한 두 다리와 체크카드 뿐이었다는 것. 바로 다음 여행지인 미얀마에 대한 정보는 바로 어제 읽은 책에 나온 세 개의 도시 이름이 ‘전부’ 였다는 것. 정신줄을 게스트하우스에 놓고 다니는 것 같더니, 심지어 챙겨간 여행책도 엄마편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내주는 센스. 전자사전식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는 라오스에서 태국으로 넘어오자 마자 전자사전도 부셔먹었다.(ㅋㅋ)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수록 이 녀석 어디서든 살아남겠구나. 싶더라는 것. 나 정말 빠이로 따라가고 싶었다. 겨울에 어디서 또 만날까?


5. 나의 우주최강 식탐은 아마도 가풍인 것 같아요. : 먹는 시간만 되면 순식간에 화목해 지는 우리가족





 여행을 떠나기 전날 만났던 미소천사 상담가 남정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은 직접 자신의 잘못을 지적 받을 때 보다,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가장 확실하게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녀는 심지어 한두번 만난 소개팅 남을 보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말과 함께 내게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것(아직 어리니까 연애를 길게 하지 말고 자주하라며 ㅋㅋ)과 상담에 관심이 있다면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들어보라며 조언을 했었다.


그녀의 조언 때문이었을까. 일주일간 가족과 붙어 있어야 하는 일은 끊임없이 나를 발견해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정말 많이 닮아 있는 우리가족. 아빠에게서, 엄마에게서, 해삼에게서, 건우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알아주길 원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뾰루퉁 하곤 하는 성격은 아빠를 꼭 빼닮았고, 컴퓨터만 키면 귀가 들리지 않는 듯한 해삼에게 계속 짜증을 내다가 나도 평소에 그랬나 싶어 덜컥하기도 했다. 그러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서로 짜증을 내다가, 금새 샐샐거리며 경찰서에 가보는 경험을 해서 좋다고 웃어제끼는 해삼을 보면서 나랑 정말 닮았구나 싶었다. 모두가 유머러스한걸 즐기는 성격이라 즐거웠고, 왠만하면 이해하고 덮어두는 무던한 성향들이라 답답하면서도 편했다. 근데 궁금해 지기시작하면 끝없는 질문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안건우는 누구를 닮은거임?


우리의 모습에, 각자의 모습에, 옳거나 그른것이 있는게 아니다. 좋은것과 나쁜것도, 부족하거나 과한것도 없다. 그냥 그것이 아빠의, 엄마의, 해삼의, 건우의, 나의 모습이고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서로 너무너무 잘 맞는 것이 있고 잘 맞지 않아 화가 나는 지점도 많지만 각자의 우주는 제각각 빛을 발휘하며 부딫히고 깨지며 우리가족이라는 아우라를 만들어 낸다. 그 우주들과 그 우주들이 만드는 아우라는 충분히 사랑하고도 남을 빛을 낸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가진 개인이고, 혼자 뚝 떨어져도 잘만 지낼 것 같지만 우리는 작거나 큰 연결망 속에 있다. 서로를 배려하며 살고 있지만, 아무리 가족이라도 나를 백퍼센트 배려할수는 없다는 것과 내가 가족을 백퍼센트 배려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섯이다가도 혼자가 되고, 혼자이다가 다섯이란 생각에 든든해진다. 두렵다가도 금새 따뜻해진다. 조금은 놀랍고 고마운 사실!


초등학교 사회수업 첫 시간 사회화에 대해 배울 때 어린아이가 가장 먼저 사회화를 경험하는 곳이 가족이라고 배웠던가. 스물일곱. 새삼 어린시절에 여러번 배웠던 그 내용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스물일곱이나 되어 가족안에서 또 한번 사회화 되고 있는 내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을 더디게 배우고 있는 나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수많은 것들이 그때 내가 깨닫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기억을 떠올리며 복잡한 생각들을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초등 교육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름휴가를 보내며, 세상을 더디게 배우는 느낌에 더 이상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내 우주의 매력이니까. 그러니까, 마이뺀라이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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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뺀라이캅은 다 괜찮아! 라는 태국말. 태국인의 기본적인 정서, 국민성을 단번에 드러내는 문장이라고 한다. 정말.. 내 고향은 타일랜드가 맞을꺼야.ㅋㅋ 내게 목표가 하나 생겼다. 2년후엔 꼭 치앙마이에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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