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참을수 없는 연애의 무거움

기록해 두고 싶은 스물아홉 가을의 이야기들을 하나 둘 떠올리다가, 최근 몇년간 이맘때만 되면 크고 작은 연애사건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뒤에도 쓰겠지만, 유일하게 풀리지 않는 숙제. 연애! 근데 이맘때만 되면 연애사건이 생기는건 우연일까 아님 내 호르몬 변화가 만들어 내는 일인 걸까. 이런것도 일종의 패턴인가? 뭐 어쨋든 연애가 유난히 절실해진 스물아홉의 가을. 기록해 두고싶은 이야기들.  


지난 28여년의 나의 인생을 요즘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인생그래프의 형태로 내가 직접 그려본다면 어떻게 될까? 스물여섯과 스물일곱 그 어디쯤을 경계로 형태와 속성이 전혀 다른 두개의 그래프가 그려질 것 같다. 그 시점 이전의 그래프는 아마도 생긴것 부터가 변덕스러울 것이다. 삶의 만족에 대한 최고점과 최저점을 하루에도 몇번씩 갱신하며 불안정한 모습일것이 틀림없다. 그러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그 어딘가에서 그래프가 한번 바닥을 치겠지. 그 후론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며 지금 나이인 29세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파동을 가진, 삶의 만족도 점수가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그래프가 그려지지 않을까. 


그런데 유일하게 그 그래프 모양과 일치하지 않는 삶의 영역이 하나있다.
그것은 바로 연애. 유일하게 풀리지 않는 숙제 연애연애연애!


앞에서 자기탐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난 자기탐구의 가장 극적인 방법은 연애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호감을 느끼거나 부담을 느끼거나, 어쩌다가 만나게 되고, 상대를 이해를 해보려고 한참을 노력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이따금 이전의 연애를 떠올리며 기억을 재구성하는데 까지 자기탐구를 멈출수가 없다. 내가 연애를 하지도 않으면서 늘 연애 예찬을 한다거나, 이따금 연애에 조바심을 내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연애를 통해야만 할 수 있는 자기탐구의 시간을 다른 일들로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난 왠지모르게 약오르는 기분이 든다.


요 며칠 참을수 없이 무겁고 둔하기만 한 나의 연애능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호감가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감정 표현을 못하고,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자꾸만 도망가려고 할까. 어린 시절 내게 호감을 보이던 남자아이들과 더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난 왜 그자리에서 딱 잘라 선을 긋고야 말았던 걸까. 연애가 시작되려는 기미가 보일 때 왜 나는 나의 (그다지 신통치도 않은) 이성을 총동원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들을 만들어 내는 걸까.

2011년 10월 21일 쓰다만 일기. 


* * * 


쓰다만 일기를 이어서 다시 쓴다. 
직접 연애가 절실해 졌다고 표현한 저 시점에 내 '참을 수 없는 연애의 무거움'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건
매일 매일 보고싶고 생각이 나는, 조금 더 알고싶은데 쉽게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이 생겨서였다. 

이 일기가 쓰다만 일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사람과 매일 통화하고, 매일 손잡고 걷고, 매일 조금씩 더 좋아지는 마음을 고백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주도 안되어,
내 일상은 꽤 많이 변했고, 조금 바빠지기도 했고, 그러는 새 이 일기는 논점을 잃어버렸다. 

이 일기를 쓸 때만 해도, '논리도 근거도 없는' 그러나 '나름 이성적인' 큰 걱정들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조리 사소해지는 그런 걱정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실실 웃음이 난다.  

이 쓰다만 일기를 다시 꺼내 쓰기로 마음 먹은건 이 일기에서 '자기탐구'라는 표현을 발견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난 강도 높은 자기탐구를 해야만 했다. 

예를 들면,
30여년 동안 가까운 곳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각자의 삶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는 것.
특히 어떤 지점에서 유난히 다른 삶의 기준들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건지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것.

또 이따금 쉽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나의 감정을 곰곰히 파고 들어가다보면
어린시절 혹은 이전 연애에서의 상처들을 마주해야 하기도 했다. 

처음엔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연애를 하니 뭔가 어른 스러운 연애를 하는 것만같은 착각에 빠져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역시나 연애란 건 나의 유치함 끝은 어디까지인가를 탐험하는 여행쪽에 가깝다. (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 여행이 나쁘지 않은건,
이 여행을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 라는 것.
(와 같은 오글거리는 표현을 쓰게 된 것도 일종의 나의 삶의 변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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