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2006년 학부졸업식, 그리고 2019년 박사학위수여식날의 리마인드샷. 저 쪼꼬미가 성인이 되는 세월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다. #잘키워놓은막둥이 #열남친부럽지않진않아 #그래도오늘또1스윗적립하신막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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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한 강의에서 날 소개하며, 연구주제는 늘 다양성 이슈의 언저리에 있으면서 정작 내가 선택한 소속집단은 놀라울 만치 다양하지 못한 아이러니를 농담삼아 이야기한적있는데, 학교를 떠나며 그 시간을 헤아려보고 새삼 놀랐다. 학부졸업할때 나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같은 학교로 돌아가서 석사, 박사과정을 무려 8년이나 더 다녔다. (오늘 울 엄마가 이에 대해, 유치원 학사모를 못써서 이렇게 학사모 쓸일을 계속 만드는게 아닌가 하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셨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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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신없이 졸업식을 끝내고 학교를 나오는 순간에 했던 생각이 다음주에 학교에 들러 다음학기 주차권을 갱신해야하는 일을 상기하는 것일 정도로 학교를 떠난다는건 나한테 그다지 감상적으로 와닿는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강의나 연구미팅 등으로 종종 학교에 들르게 될테고 학위수여 이전과 이후의 일상적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과의 마지막 인사도 여느때처럼 잘가 곧 또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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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별 관련성이 없어보이는 이 사진 두 장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려고 몇글자를 끄적이다가, 아 내가 정말 이 곳을 떠나는구나. 그것이 상징적이든, 실제적이든 정말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요 며칠 내가 문득 문득 불안했던 것 또한 오랜시간 공들여 구축한 안정적인 환대의 공간을 재구축하는 것과, 그 곳의 안전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와 공간을 탐색하고 개척하고싶다는 이중적인 욕구 혹은 과제들이 불쑥불쑥 수면위로 올라왔기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또 맥락없는 글을 길게 또 쓰고 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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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에 도착하고부터 나는 이번 여행이 재미있어졌다. 이 도시가 왜 이렇게 좋은가를 생각하다가, 나는 늘 다양한 사람, 문화, 취향과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어떤 조화를 이루는 장 혹은 장소에 흥미를 느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질적이라 여겨질법한 것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장. 저마다 자기다움을 잃지않지만, 동시에 주변과의 어울림을 고려하는 여유와 미적감각이 있는.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색할 것도 없는 그런 공간 혹은 그런 분위기, 그런 사람들. 통치나 지배, 목표와 계획의 문법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없는, 우연적 사건과 만남 속에서 계속 변화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변화중인, 팔레르모는 그런 느낌의 도시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에 대한 감탄사를 양념처럼 뿌려가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맥락없는 수다를 쉴새없이 떨었다. 무언가 나와 이질적인 것, 당시의 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법한 것들과 부딪힘이 없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부딪힘들 속에서 알게모르게 생겨버린 상처 혹은 어디서 주워들은 어쭙잖은 지식같은 것들에 또 다른 새로운 것들에 움츠러들거나 주저하는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주 까먹곤 하는 것은, 내가 움츠러들어있든 그렇지않든 이전에 상상도 하지못한 새로운 것과의 부딪힘을 내 스스로 막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억해야한다. 부딪힘과 흔들림의 과정 끝에 결국 우리는 자기다움을 되찾아왔다는 것을. 그것은 어제의 나와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내가 되는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쉽게 조언하거나 요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변덕스럽고 수다스러운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주는 나의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을!

#미켈란젤로이펙트 #우정과환대의공동체안에서용기있는개인이탄생한다 #간만에아나키즘이소환된밤 #하필팔레르모를떠나도착한도시가 #아나키스트의성지 #볼로냐 라니 ㅋㅋㅋ

드디어 논문이 나왔습니다. 아직 좀 얼떨떨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고요. 

참 유난을 떨며 논문을 썼는데, 그동안 지지하고 응원하고 배려해주신 가족, 친구, 동료들, 그리고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교수님들 모두 정말 많이 고맙습니다. :) 

우스개소리로 박사논문을 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실로 논문을 쓰는 동안 제가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 안에서 가능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또한 무언가를 구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엔 역량이나 실력의 우열이 있지않다는 사실을 집약적으로 알게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함께 첨부한 사진은 제 논문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자료분석을 하다가 희열감이 거의 최고조에 달해있던 어느날에 쓴 문장인데, 한 심사위원께서 심리학 논문에서 보기 힘든 표현이라고 코멘트를 남기시기도 했죠 ㅋㅋ. 제겐 꽤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을 한문장, 한문장에 담았는데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저를 만나 함께 수다를 떨어주세요. 맞아요. 맞습니다. 이건 데이트신청이예요. :)

사실 지난 몇년간 스스로 심각성을 느낄정도의 범불안장애를 두번 정도 앓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느끼는 불안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러한 깨달음이 저를 불안에서 구해냈죠! 석사과정 때 행복, 삶의 의미, 좋은 삶과 같은 주제로 연구를 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분노, 불안, 무기력과 같은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게된 것도,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와 일상적 삶의 경험이 개인의 마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모두 저에겐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박사논문을 마무리하던 즈음엔 학위논문을 의미하는 ‘thesis’의 어원이 ‘position’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자료를 모으고 근거와 주장을 엮어 명료한 언어로 만들어내는 연습을 거듭하는 과정은, 제가 어떠한 입장과 시각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박사과정동안 저는 자주 안달이 나곤 했거든요. 질적연구의 방법과 결과를 생소해 하는 심리학자들에게는 왜  우리의 삶과 문화를 우리의 언어를 통해 직접 들여다 봐야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잘 설득하고 싶었고, 심리학이 사회적 문제를 개인화한다고 쉽게 단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심리학적 접근이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 그들을 잘 설득해내기엔 어딘가 많이 부족했고, 그래서 늘 안달이 났죠. 이번 논문을 다 마무리 하고 인쇄를 넘기던 시점에, 결국 이 논문에도 그 간의 고민과 안달복달의 과정이 켜켜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둘 모두에게, 아주 작지만 제가 전할수 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생긴 것에 기쁩니다. 

끝이기도 하고 시작이기도 한 이 시점에서 불안보다 기대나 희망 같은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 저는 좀 생소하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이 안달이 나고, 더 많이 부족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제 무지와 부족함에 대해 덜 방어하고, 제 입장과 시각에서 보이는 사람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일에 덜 주저하고 싶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을것 같다는 마음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 박사학위보다 더 큰 성취인 것 같기도, 박사학위의 자격인것 같기도 합니다. 

저 일단 좀 쉬고 돌아와서, 고마운 분들을 찾아뵐게요! 데이트신청 거절하시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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