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친구에게 메일을 한통 받았다.
[crossorbit's letter] +1. 내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라는 제목의 편지.

'문득 친구(들)에게' 보내진 편지
친구들과의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제안하며 시작한 이 편지는,
편지가 출발점이 되어 친구들의 작은 소통의 장, 더 나아가 네트워크의 장이 되길 꿈꾸며 앞으로도 종종 편지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요즘'을 살고있는 '나'의 고민과 생각을 꺼내어 이야기 하고, 나누고
이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하자는것일까?
어찌되었건. 시작이란건 정말이지 설레고 멋진것. 용기가 필요한일.

아래는 그 친구에게 내가 보낸 답장.
그러고 보니 올해는 '우리 세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한해.



와우!

일단, 첫번째 메일을 발송을 축하하며,
너에게 무한한 존경과 박수갈채를!

난 무엇보다 너의 메일이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 진진해.

몇달전엔가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 ‘난 지금 ‘사회적’으로 외로운것 같아요’ 라고 말한적이 있어.
유독 몇개의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때, 386세대나 90년대 초반 학번들앞에서는 활발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나의 친구들, 내 또래들에게는 누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말을 꺼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 일을 벌여 보고 싶은데, 나와 비슷 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일을 벌이고 싶은 친구를 찾기도,
소심한 나는 무작정 아무에게나 문을 두드려 보기도 힘들고 두렵다고.
(그치만 386이나 90초반 학번들이랑 같이 하기엔 그들이 너무 억지스럽고 촌스럽다고! ㅋㅋㅋ)

넌 나만큼 소심하지 않을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일을 보내기 까지 용기가 필요했을거라는 짐작을 해.
한편으로 이런 시도들이 나를 ‘사회적’으로 덜 외롭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해 ㅋㅋ


**
3-3. 1년 전 즈음, 학교에 홍세화씨 강연을 소개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습니다. 함께 걷던 친구는 그것을 보고 "이제 홍세화에게 열광할 때는 지났지"라고 말했고, 그 말에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을 되새겼습니다. 이미 예전에 들었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읽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을 대학생 초반에 읽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끌어 주는 선배 없이 각자 익혀오느라 시간이 더디게 걸린 것 같다." 그 말에 저는 상당히 공감했지요. 유시민씨의 진정한 모교라는 ‘지하대학’도 없었고, 필독서를 추천해주는 선배도 없었으니까요. 그 때는 그저, 룰루랄라 신난다 마시자 a-yo 가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니 편지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 그리고 공감했던 부분.

하지만 나는 긍정적인 편이야.
최소한 우리세대는 사회의식이나 이념에 관한한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 ㅋㅋ

한편으로,
다양성이나 자유라는 허울좋은 가치들 아래에서 컨텐츠에 열광하는 우리 세대가
구조를  읽고,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엔, 힘이 약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동시에 있어.
사회나 가치에 대해 생각을 나누고 교류할 수 있는 계기나 기회가 없어
이런이야기를 할 때면 아직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드는 것이 참 못나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오히려 나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을 경계해
그것이 문제라고 규정하고, 흘러간 우리의 20대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하면
그 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거든
부정적 동기는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지속성이 약하다잖아.

88만원 세대, 20대 보수화, 개념없는 대학생 처럼 우리 세대를 낙인(?)찍다시피한 언어들은
우리세대에게 비판이나 위협소구의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각성하기를 요구 했지만,
오히려 그런것들이 나를 ‘주눅’들게 하거나, ‘모른다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라면, 쿨하게 관심없는척 하겠어요’라는 태도를 갖게 했었지.
적어도 내겐 그랬어. (급기야 88만원세대라는 말이 나온 이후로는 맘속에 실체가 없는 386에 대한 미움을 키워나가고 있었지 ㅋㅋ)
물론 그 언어들을 처음 이야기 한 사람들은 사회구조나 기성세대를 비판을 더 강하게 어필 했지만,
그 언어들이 확산되면서 우리세대를 ‘낙인’찍은 기능으로 더 많이 활용되었지. 재미있고 무서운 언어의 힘이랄까.ㅋㅋ (유시민 아저씨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듯 )

고민의 지점을 달리하여, 내가 주욱 관심있는것은 그러면 우리세대의 강점은 대체 무엇인가? 야.
과연 어떤 칭찬이 우리를 춤추게 하며 그것이 사회에 의미있는 행동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
너의 프로젝트에서도 이런것이 발견되거나 이야기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며칠전에 내가 전면전과 진지전에 대해 이야기 했었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보적 가치의 중요성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나, 각자가 잘 하는 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거야.
작고 작은 일들이 엮이면 커다란 운동이 되지.
웃기고 재미있게, 소소하고 유쾌하게, 내 또래가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어 할만하게.
가난뱅이의 역습처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01143115)
그리고, 너의 크로스올빗 레터 프로젝트 처럼!

사람들은 20대의 보수화를 우려했지만, 몇몇 지표들을 보면,
어린 세대로 갈수록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대.
기대를 걸어볼만한 일이지 않아?

(아무리 상징적 의미로 썼다고 하더라도)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촌스럽잖아 ㅋㅋㅋ
지금은 한나라당도 당비로 아이폰을 공동구매하는 시대라구! ㅋㅋㅋ
 
난 질긴놈 보다는 즐긴놈이 이긴다고 믿고있어! ㅋㅋㅋ



[함께 보면 좋은 글]


[김혜리가 만난 사람] <무한도전> 김태호 PD


갑자기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때문입니다. 뭐, 사실 이 책, 개인적으로는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라 ...


by 안쿵쿵 | 2009/12/22 01:04

내가 정말 '좋아하는', '좋아서 하는 밴드'를 담은, '좋아서 만든 영화'의 '좋아서 쓰는 감상문'...






#
'안쿵 올해 몇살이지?'
'스물일곱이요'
'헐- 이제 안쿵도 어른이구나'

올해 들어서 몇번째 똑같은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
평생동안 사춘기처럼 질풍노도의 시절을 자주 맞닥뜨리게 될거라는 예상은
스무살 즈음부터 나에겐 그냥 당연한 진실같은거였다.
그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통제불가능한 것에 대한 화와 두려움,
벌거벗은채 까발려 지는 듯한 수치심,
잘못된 자기애에서 비롯된 솔직하기 힘듬과 외로움
어쩌면 이렇게 불행한 일이 삶의 전 영역에서 펼쳐지는 걸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과연 상처를 입은 마음이 회복이 될까 불안하기도 하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확인해야했던 것은
삶의 진중함, 그것에 대한 필요나 당위
인간에 대한 배려, '관계'의 무거움.

그리고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읽어서 아는 것과
삶을 통해 처절하게 깨닫는 경험을 하는것은
명백히 다르다는 것.

편하게 살고 싶어하던 나의 비양심적 게으름의 수렁에
나도모르게 침몰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편한것을 기대했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불편한 마음이었다.

다원예술 연구 프로젝트의 마지막 식사모임.
나보다 8년, 많게는 15년을 더 많이 산 그녀들의 대화에서
내 불편한 마음의 중심에 '관계'라는 화두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안쿵쿵을 볼때, 원만한 인간관계의 소유자라는 겉모습을 흔히들 보지만
어린시절부터 '관계'는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내 치부를 발견하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누군가의 삶에 깊게 감정이입을 하여 집착이나 욕망을 키워버릴까 늘 불안했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어쩌면 연인에게도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나를 싫어하게 될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그것을 끝끝내 마음속 깊이 인정하지 못하고 항상 의심을 했다.

삶은 언제나 관계들로 얽혀 있고
어떤 관계가 나빠졌을때 삶에서 중요한 관계는 회복하려 노력을 하는 것이
교과서에 나올법 한 공식 같은 것인데
왜 어린 나는, 스물일곱의 게으른 나는
개선 대신에 잘라버리는 선택을 해왔던걸까.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래도 내 주위엔 '관계'의 진중함을 익히 알고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하지만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의지로 이루어질수가 없어서
내가 지금처럼 무반응의 상태를 지속하면 상대방도 지치거나 포기하겠지.
고마운마음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조급해지는 마음이 함께 있다.



&

그러고 싶진 않은데 요즘 글을쓰면 한없이 추상적이고, 어렵고, 우울한 기운이 그득하다.
그래서 며칠째 일기장을 폈다 접었다 한다.
나는 지금이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 시절일거라고 믿는다.
아마도 점장이의 삐뚤빼뚤한 글에서 처럼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겨울잠에서 깨어날 그때가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삶의 개념들이 명료하고 구체적이며 쉽게 정리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최근 몇몇 사람과 몇몇의 글귀가 나한테 권했던것 처럼  
내 자신을 조금더 자주 만나야 할 것 같다.


$

사실은 요즘 의외의 자리에서 의외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기록해놓고 싶었는데
일기쓰느라 다 까먹었다 ㅎㅎㅎㅎㅎ 생각나는 것만.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니가 하고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폭력적이라는 것에 공감해.
어린시절에는 모든것을 다 버려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것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모든것을 다 버리면 오히려 내가 폐인이 되어 아무런 시작도 못하게 될것 같더라고"

"사실 사람들의 각각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아. 성공시대 같은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이 항상 100%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고 질문해 보게되. 사실 인생을 살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던, 그렇지 않은일을 하던 전체 과정의 95%는 거의 동일하거든. 사실은 5%만 다른것인데,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면 100%가 달라지는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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