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서적 보살핌이 결핌된 아이에게 '좋은엄마'의 환상이 생기고, 성장하면서 그 환상은 어딘가에 부자 부모가 있을거라는 식의 현실 부정으로 변형된다고 한다. 사춘기가 되면 좋은 보호자가 나타나줄 거라는 환상을 담은 '키다리 아저씨'같은 하이틴 소설에 매혹된다. 그런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현실의 삶을 수용하지 못한 채 어딘가 다른곳에 다른 삶이 있을거라는 환상을 품게된다. '생은 다른 곳에'를 꿈꾸며 이상주의자나 예술가나 몽상가가 될지도 모른다.

'뻔뻔하게'를 더 깉이 이해하고 난 후 내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생의 서투름의 근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세상인식의 문제였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틀이 잘못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오류가 잦았을 것이다. 세상이 내맘 같지 않다고 서운해 할 때 바로 '내 맘'이 잘못된 환상위에 서 있었던 것임을 알게되었다.

_ 김형경, 사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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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산문집은 밝고 따뜻한 느낌이라면
김형경의 에세이는 따끔따끔 아프고 훅 하고 뜨겁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살것, 제대로 난 길, 안쿵쿵 리듬타는 아이.
'지금 이자리', '지금 이순간'을 항상 100%로 느끼기를 기대하고 희망하고 이야기 해왔는데
언젠가 부터 그러고 있지 못한 나 자신이 답답했었다.

글을 읽다가,
요즘 내가 느끼는 불만과 좌절이 어쩌면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세상인식 때문인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후련한 맘이었다.

얼마전에 회사 경영진에게 이런말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이회사가 내겐 내 생에 첫 회사라 비교대상이 없는 것이 힘들다고.
결핍된 아이가 어딘가에는 좋은 부모가 있을거라고 환상을 가지는 것처럼
나는 조금만 힘들거나 잘못되어간다 생각하면 어딘가 이상적인 시스템이 존재할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곤 했었다.

'지금 이 곳', '지금 이 시간'
안쿵쿵 답게 무한 적응력을 발휘해야할텐데.. ^^

어쩌면 안쿵쿵의 적응력은
'지금 이곳'의 삶을 적극 수용하는 상태, 현재를 살아가는 상태에서 비롯된것이 아니었을까.
삶의 힘듬이 쌓이고 쌓여서 체한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것은 '적응력'이라는 능력을 기르려 애쓰는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마음부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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