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비비다이나미끄 붕붕이가 빨간구두를 신었습니다
한밤중 퇴근길에 집으로 가려면 삼각지에서 우회전 하여 이태원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이틀째 붕붕이가 나를 광화문으로 끌고 왔습니다.
아놔 빨간타이어에 구멍을 내야하는지... 안그래도 요즘 피곤한데 ;;;

글세요.
왜인진 모르겠어요.
대학교 1학년때 운동권 학생회가 동영상 보여주면
구린내 난다고 도망가던 나인데 ㅋㅋ

뭐 그닥 제가 정실장님 처럼 정의실현파는 아닌거 같고,
관찰자의 본능 같은거 아닌가 싶습니다.
시위에 참여한다기 보다 모니터링 한다는 표현이 더 맞는거 같습니다.
(오늘 진영이 '쿵도 나가서 축제성 분석해야하는거 아냐?' 라고 말하던게 생각나네요 ㅋㅋ)

오늘은 좀 많이 훈훈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명박은 물러가라'란 말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들은것 같아요.

새벽 1시, 오늘의 시위를 접어야 할 시간.
할아버지가 청소년에게, 양복입은 아저씨가 대학생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 내일 또 만나요' 라고요.

아주 잠깐 시위현장에 머무르면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예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절모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는 올해 72세라고 하시네요.
지난주 토요일 시위에 나왔다가 눈앞에서 우리 자식들이 제압당하는 걸 보고
오늘 또 나오셨답니다.
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청년들을 지켜보며,
아.. 우리 자식들이 저렇게들 하는데 경찰들 정말 너무하네.. 하시며
걱정어린 눈빛을 보이시더군요. 그러더니
나와 함께 서있던 양복맨들을 향해 한마디 하십니다.

"우리 늙은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여기 젊은이들.. 자네들이 수고좀 해줘"
 
양복맨들은 걱정입니다. 날씨가 쌀쌀한데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시면 어쩌나..
오늘 저녁부터 나오셨다는데 다리아프시면 어쩌나..
돗자리 재질로 된 방석을 급구하여 할아버지께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괜찮으시답니다. 이것쯤이야.. 하시며

할아버지는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이 너무 고맙다 하십니다.
그것을 듣던 양복맨 1은 '처음에 나와준 우리 여중생 들이 고맙지요'
옆에있던 양복맨 2는 '지금 열심히 싸워주는 대학생들이 고맙지요' 하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빨간모자 할아버지의 등장은 그중에서도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나에겐 그분도 할아버지인데,  중절모 할아버지께 나이를 여쭙더니
대뜸 "아이고 아버님" 하며 손을 덥썩 잡습니다.
그리고는 몇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는 정치 토론의 장이 되었습니다.
빨간모자 할아버지는 술을 드셨는지, 혀가 꼬부러진 목소리로 이야기 하셨지만
모두들 그 이야기에 대해 때론 공감하고 때론 반박합니다.
60, 70대 할아버지와, 30,40대 양복맨 그리고 옵저버 처럼 서서 경청하는 20대의 내가 함께 있습니다.


촛불시위? 내가 이것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쿵이 항상 그래왔듯이 시위현장에 있어도 회색분자같은 성향은 버릴수 없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 막 공감을 하다가도, 문득 시위를 통해 내가 얻으려는게 뭐지? 하는
기초적인 질문에 부딫히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의 촛불시위는 뚜렷하고도 현실적인 목표가 없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왠지,
나의 비비다이나믹 붕붕이는 정말 빨간구두를 신은것 처럼
자주 나를 이곳에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심하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안가지던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문화기획자로서는, 온오프라인의 무차별 참여형 문화기획에 KO당한 기분을 설명하고 싶었고.
조금더 나는 적극적으로 이 축제를 즐기고 공부하고 싶어요.

정말 이렇게 철저한 개인적인 이유때문에라도.
비비다이나믹 붕붕이가 신은 빨간 구두를 억지로 벗기고 싶진 않네요.


* 지금 24시간 탐앤탐스에서 맥북켜놓고 된장녀 놀이 하고있습니다.
이밤중에도 사람이 많네요. 이따 새벽 5시 부터 신호등 시위 할거랍니다.
아놔 전 할일이 많아 참여를 못할듯 ^^
유료주차장 직원 출근하기 전에 붕붕이 빼야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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