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11시간 지연이라는 초유의 사태속에서 쓴글 ^^



서울광장에서 관광객 놀이 하다.

 

프라자호텔에서밖을 살짝 내다 보니, 서울광장 한켠에 작아서예쁜 무대가 하나 서있다. 호텔 안내문에 보니 5월부터 10월까지 서울시에서 매일밤 여는 작은 음악회라고 한다. 아직 공연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몇몇의 연인이, 몇몇의 가족이, 친구와, 혼자들이 광장 곳곳에 자리잡고있다.

 

낯설다.

 

언젠가부터 텅빈 서울광장의 모습은 내게 굉장히 낯선 광경이 되었다.

차로 꽉 막힌 세종로 넓은 거리도,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평안하게 휴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것도 낯설다. 낯설고,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올해 초여름. 이 공간은 내게 희망의 공간이고, 호기심의 공간이었고, 즐거움의 공간이었다. 수도없이 이어지는 촛불들, 촛불들이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 2008년을 3개월 정도 남겨둔 지금, 촛불은 그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충격과 감동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한없이 여유로운 서울광장을 보고있자니,

위협적이었던 까만색의 전경들도, 후텁찌근한 여름날 이 곳을 가득채우던 땀냄새 조차 그립다.

그리고 정말 낯설다.

 

 

여행의 기술

 

오늘 나는 시청앞 거리를 누비는 커리어 우먼도, 휴일날 아침 쇼핑과 브런치를 즐기러 나온 20대 여성도 아니었다. 슬리퍼를 질질끌며, 가방도 없이 호텔 키 하나만 들고 나온 여행객.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서울광장이 아니라 뉴욕의 센트럴 파크쯤 되는 것처럼 낯설고 새롭다.

 

하긴 이시간의 서울광장을 본적도, 정장을 입고 데이트 하는 20대 회사원 커플놀이를 해본적도 없어서 더 낯선건지도 모르겠다. 내겐 데이트를 하러나온 50대의 커플도, 담요를 한장 깔고 도란 도란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도, 일인용 깔개를 깔고 앉은, 마치 이공간 활용에는 베테랑이겠다 싶은 할아버지도 모든게 새롭다.

 

저들은 이곳에 얼마나 자주 오는걸까, 데이트를 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저들도 나처럼 이 공간이 낯설까.

 

새삼 여행이라는 것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다.

자주가던 공간도, 자주 보는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가고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듯,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내가 자주가는 지역,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속에서 안쿵쿵이 어떤 방향으로 서있냐에 따라, 안쿵쿵이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어쩌면 그속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게 알랭드보통이 여행의기술에서 말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서울에서 관광객 놀이하기.

혜지는 서울사람 맞냐며 핀잔을 줬지만,

서울에서 하는 관광객 놀이, 나쁘지 않다. 자주 하고싶어진다.

(물론, 이렇게 우연한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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