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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쿵 올해 몇살이지?'
'스물일곱이요'
'헐- 이제 안쿵도 어른이구나'

올해 들어서 몇번째 똑같은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
평생동안 사춘기처럼 질풍노도의 시절을 자주 맞닥뜨리게 될거라는 예상은
스무살 즈음부터 나에겐 그냥 당연한 진실같은거였다.
그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통제불가능한 것에 대한 화와 두려움,
벌거벗은채 까발려 지는 듯한 수치심,
잘못된 자기애에서 비롯된 솔직하기 힘듬과 외로움
어쩌면 이렇게 불행한 일이 삶의 전 영역에서 펼쳐지는 걸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과연 상처를 입은 마음이 회복이 될까 불안하기도 하다.

스물여섯에서 스물일곱으로 넘어가는 동안
내가 끊임없이 확인해야했던 것은
삶의 진중함, 그것에 대한 필요나 당위
인간에 대한 배려, '관계'의 무거움.

그리고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읽어서 아는 것과
삶을 통해 처절하게 깨닫는 경험을 하는것은
명백히 다르다는 것.

편하게 살고 싶어하던 나의 비양심적 게으름의 수렁에
나도모르게 침몰되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편한것을 기대했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불편한 마음이었다.

다원예술 연구 프로젝트의 마지막 식사모임.
나보다 8년, 많게는 15년을 더 많이 산 그녀들의 대화에서
내 불편한 마음의 중심에 '관계'라는 화두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안쿵쿵을 볼때, 원만한 인간관계의 소유자라는 겉모습을 흔히들 보지만
어린시절부터 '관계'는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내 치부를 발견하는 것이 두려웠고
내가 누군가의 삶에 깊게 감정이입을 하여 집착이나 욕망을 키워버릴까 늘 불안했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어쩌면 연인에게도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나를 싫어하게 될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있지만, 그것을 끝끝내 마음속 깊이 인정하지 못하고 항상 의심을 했다.

삶은 언제나 관계들로 얽혀 있고
어떤 관계가 나빠졌을때 삶에서 중요한 관계는 회복하려 노력을 하는 것이
교과서에 나올법 한 공식 같은 것인데
왜 어린 나는, 스물일곱의 게으른 나는
개선 대신에 잘라버리는 선택을 해왔던걸까.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래도 내 주위엔 '관계'의 진중함을 익히 알고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하지만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의지로 이루어질수가 없어서
내가 지금처럼 무반응의 상태를 지속하면 상대방도 지치거나 포기하겠지.
고마운마음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조급해지는 마음이 함께 있다.



&

그러고 싶진 않은데 요즘 글을쓰면 한없이 추상적이고, 어렵고, 우울한 기운이 그득하다.
그래서 며칠째 일기장을 폈다 접었다 한다.
나는 지금이 지독한 성장통을 겪는 시절일거라고 믿는다.
아마도 점장이의 삐뚤빼뚤한 글에서 처럼
'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겨울잠에서 깨어날 그때가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추상적이고, 어려운 삶의 개념들이 명료하고 구체적이며 쉽게 정리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최근 몇몇 사람과 몇몇의 글귀가 나한테 권했던것 처럼  
내 자신을 조금더 자주 만나야 할 것 같다.


$

사실은 요즘 의외의 자리에서 의외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을 기록해놓고 싶었는데
일기쓰느라 다 까먹었다 ㅎㅎㅎㅎㅎ 생각나는 것만.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니가 하고싶은 대로 해!라는 말이 폭력적이라는 것에 공감해.
어린시절에는 모든것을 다 버려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것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모든것을 다 버리면 오히려 내가 폐인이 되어 아무런 시작도 못하게 될것 같더라고"

"사실 사람들의 각각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아. 성공시대 같은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이 항상 100%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고 질문해 보게되. 사실 인생을 살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던, 그렇지 않은일을 하던 전체 과정의 95%는 거의 동일하거든. 사실은 5%만 다른것인데,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면 100%가 달라지는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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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왜?

불안?
질투?

혹은 잘못된 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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