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장앞에 서서 지금 나한테 필요한 책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는 불안(알랭드보통), 바다의기별(김훈), 나는너를응원할것이다(공지영)를 끝까지 다 읽어야 겠다 생각했는데 책장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김형경 에세이 사람풍경이 자꾸 나좀 봐주세요 하는 거였다.
(어쨋든 대체로 위로나 위안이 필요했던건가부다)  

몇개의 관심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분노' 파트의 텍스트를 읽으며 이 책이 왜그리도 애타게 내 눈에 띄려 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이 그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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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또 한가지 속성에는 '자기애적 분노'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태생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고 선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기이미지가 침해당했을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화가나고, 타인이 자신의 성취에 대해 비판하면 분노하고, 타인의 사소한 지적에 대해서도 저항감을 느끼는 것이 자기애적 분노다.

자기애적 사랑처럼, 자기애적 분노에도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없다. 상대방은 그 사람을 모욕하거나 그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마음이 없었음에도 자기애적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분노밖에 볼줄 모른다. 눈이나쁘거나 잠시 딴생각에 팔려 친구를 못보고 지나치게 되면 그친구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전화메시지에 응답이 없거나 전화가 연결되지 않을때에도 상대방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사업상의 거절에 대해서도 마치 자기 존재 전체를 거절당한듯한 분노를 느낀다. 심지어 상대가 주겠다고 약속한 바 없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근거없이 기대했다가 그것이 오지않는다고 분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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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의 <화>에는 신경증적 분노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 아기때 엄마에게 표출하지 못한 분노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그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속 분노를 내면으로 억눌러 감춘다. 그렇게 억압된 분노는 어떤식으로든 간접적으로 표출되면서 그사람의 삶을 공격한다.

자기일을 미루거나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기, 사람들을 피해 혼자있기, 타인과 세상을 의심하기,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속에 앉아있기, 높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많이 하기, 습관적으로 불평불만 늘어놓기,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야기하기, 타인의 말에 말꼬리 달기... 이런것이 분노가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의존성, 자기희생, 속임수, 자기파괴적 행동도 억압된 분노와 관계가 있다. 무엇보다 분노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표출되어 친밀한 관계를 그르치고 생을 퇴행시키는 원인이 된다. 분노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내면화 될 때에는 자살로 나타난다.

심리학자인 게일 로즐리나와 마크 워든이 함께 쓴 <차라리 화를 내십시오>라는 책에는 이런구절이 있다.
"혹시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려깊고, 헌신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감성적인 그런사람이 있는가? 충직하고 성실하며 항상 믿을 수 있는 그런사람말이다. 남을 위할 줄 알고 모든것을 이해하며 이웃과 무엇이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
이대목을 읽고 나는 많이 놀랐다. 그 모습은 정신분석을 받기 전까지 내가 그렇게 살고자 꿈꾸면서 실천하던 이상으로서의 인간형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는 그런 순교자와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내면에 분노가 억압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이들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긋한 삶을 산다고 했다.

분노는 사랑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감정이다. 평소에 어떤 부당한일 앞에서도 그다지 화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한다. 사랑이 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듯 사랑의 뒷면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사람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 분석치료가 역점을 두는 대목도 바로 분노를 다루는 법이다. 분노가 자신의 감정의 일부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분노의 근원을 직면하고, 분노를 자신의 의식으로 통합시켜 체험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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