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베플릭. 질적연구 방법론 1장~3장

1장에서는 질적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된 사회적, 학문 역사적 맥락을 짚고 질적 연구의 기본적인 특징을 기술한다. 급속한 사회변화, 다양해진 생활세계 등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을 요구하게 된다. 심리학 연구의 일상생활 관련성 결여의 비판, 현실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 양적연구의 한계에 대한 자각은 질적연구가 가진 문제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질적연구가 다음의 네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가진다고 보았다. 1) 연구대상의 복잡성에 적절히 개방되어 있는, 연구대상에 적합한 연구 방법의 사용, 2) 연구 대상자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 3) 해석의 일부로서, 연구자 자신의 의견 반영, 4) 고정된 이론적, 방법론적 개념에 기초하지 않은 접근 방법의 다양성이 그것이다.

2장에서는 질적 연구의 세 가지 접근 방법에 대해서 다룬다. 첫 번째 이론적 전제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인데 이 입장에서는 개인이 어떤 현상에 대해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 일상생활 방법론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행위와 그 산물에 관심이 있는데 이를 통해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를 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구조주의적, 정신분석적 접근인데 이 입장은 심리 사회적 무의식 과정에 관심이 있다. 행위나 의미를 생성하는 심층구조를 재구성함으로서 이해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Flick은 접근방법의 삼각화를 제안한다. 이는 각기 다른 이론적 입장은 하나의 현상에 접근하는 다른 길이며, 접근방법에 따라 밝힐 수 있는 측면에 다르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므로 접근방법을 서로 조합하거나 보완하여 사용하자는 제안이다.

한편 다양한 이론들 간에는 이러한 차이점 뿐 아니라 공통점도 존재한다. 인식론적 원칙으로서, 내부로부터 현상이나 사건을 ‘이해’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 질적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비교 혹은 일반화 이전에 개별 사례를 일관성을 가지고 재구성 하는 것, 연구의 기초로서 다양한 수준의 현실 구축, 실증적 자료로서 텍스트화 등의 그것이다.

 3장에서는 질적연구의 실증적 자료로서 기본이 되는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연구를 위해 재구성된 텍스트는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 텍스트와 현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가 질문의 출발점이다. 저자는 이해를 인식론적 원칙으로 하는 질적 연구에서, 표현, 연구, 텍스트 등에서 현실이 비춰진다는 사고 방식은 잘못되었으며, 이것이 리쾨리가 말하는 ‘여러 단계의 미메시스적 순환’이라는 사고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고정된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산출하는 행위다. 질적 연구과정에서 텍스트가 작성 될 때 텍스트 안의 현실 구축에는 연구대상자에 관한 텍스트의 저자 뿐 아니라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도 관계하고 있으며 이 모든 구성의 폭을 아울러 고찰할 필요가 있다.




안쿵쿵's comments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유익했던 부분은 같은 질적 연구라 하더라도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다양한 수준이 있고, 각기 다른 수준에 따라 밝혀낼 수 있는 현상의 측면들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점이었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연구 사례들을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각각의 연구 접근방법의 결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이 되는지 잘 감이 오질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이 접근법들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연구 사례들을 본다면, 배경지식 없이 읽었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지점들을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아직까지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방법론을 학습하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질적 연구방법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기술방식이나 명확한 분류법을 가지는 방법론이기 보다는, 관점이나 접근법을 다루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계로 대표되는 양적방법론의 경우 해석의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의 분석 틀이 몇 개로 한정되어 있고, 통계 결과 분석단계에서는 어떤 연구자든 일치된 결과를 쓴다. 하지만 질적 연구에서는 분류틀 자체가 재구성, 재정의 될 수 있고, 여러 연구자가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같은 관점으로 접근을 하더라도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이전에는 양적방법론에 비해 질적방법론이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질적 연구의 몇 가지 이론적 입장들을 읽다 보니, 양적방법론에 비해 질적방법론의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제와 철학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방법론을 발전시키고 정리하는 방식도 다른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저자가 표현, 연구, 텍스트 등에서 현실이 비춰진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점. 그렇기 때문에 연구대상자로부터의 1차 텍스트로부터 마지막 연구의 결과 텍스트가 독자들에 의해 일상으로 환원될 때까지의 여러 단계의 스펙트럼을 고찰할 필요성에서 미메시스의 과정을 제안한 것 모두 일리가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러한 과정을 엄밀하게 거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회과학자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언어화된 현실 아닌가? 다시 말해 질적 연구의 1차 자료가 텍스트란 것은 현실을 보기 위해서 언어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건데, 과연 그 언어라는 도구는 현실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도구인가? 사회과학, 그리고 많은 질적 연구방법들은 언어가 가진 한계를 암묵적으로 전제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양한 맥락과 텍스트를 고찰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들이 있는 것일까?

 


폭염의 7월.

우기의 열대지방처럼 적운이 이쁘게 디스플래이 된 파아란 하늘을 넋놓고 보는 일이 잦아졌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아 하늘이 정말 외국같아'라고 중얼거리다가, 방금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말을 내뱉은건가 싶어 얼굴이 빨개졌다. (한국 같은 하늘은 어떤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것과 동시에, 이전의 나는 외국에 나가서야 하늘을 보는 사치 혹은 여유를 누렸구나 하는 후회 혹은 부끄러운 기분도 약간 들었다.) 


가끔 일이나 여행 목적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드라이브 하다보면, 의외로 그런 바보같은 말을 자주하게 된다. '아 여기 정말 외국같아'랄지 '어머 여기가 한국이라니' 같은. 가까이에 있는 것일 수록 그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가 힘들기 때문에 의외로 가까이에 있는 좋은 풍경들을 놓치기가 십상. 환상이 쉬이 생기지 않는 여행지를 공을 들여 리서치라도 한번 해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바보같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바보같아 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환상'이 더해지거나 '비교 가능한 정보'를 동반하는 이방인의 시각을 가지면 무언가에 대해 더 열심히,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때로 이방인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적당히 아름답고, 적당히 책임감 가지고, 조금은 가벼울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하지만 이방인의 시각을 가지고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 나름의 '기능'과 '매력'이 있다. 


이방인의 시각, 이방인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보는것.

최근에 이방인처럼 사는 것, 이방인의 시각을 가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했다.  



20%정도는 원주민, 80%정도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대구에서 살기.


중고등학교시절의 나를 돌이켜 보면, 나의 목표는 오로지 대구를 떠나는 것이었다. 대구가 특별히 싫거나 가족의 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 어떤 근거도 이유도 없이 대구는 나의 무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이나 '나의 가족', '친구들'이 아닌 '대구'라는 지역을 떠올리면 이렇다 할 감정, 귀가 솔깃해 지고 금방이라도 군침이 돌 만한 이야깃거리가 내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구'라는 지역은 나의 엄마나 아빠처럼 태어나자마자 이미 주어진 것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까지 학습하거나 경험하는 지역의 범위는 우리 엄마나 아빠의 행동반경, 그들의 정보량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이 지역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애써 어떤 정보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맛집에 가려면 엄마 아빠를 따라 가거나,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보는 것이면 되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유독 대구에서만 길을 자주 잃는다. 게다가 아직도 대구의 지도를 펼쳐보면 어딘가 모르게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많기만 하다. '네비게이션쿵'이라고 까지 불리며 친구들에게 전국방방곡곡의 맛집 정보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해주고 있는 나의 입장으로 본다면 내 고향 '대구'는 '네비게이션쿵'의 아킬레스건, 알수없는 오류로 인해 작동이 불가한 지역쯤이 되겠다.   


그랬던 내가, 요즘 대구를 중, 고등학교 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다. 10여년의 타향살이 후 돌아오니 내가 '이방인의 시각'비슷한 것을 가지게 된 것 같다. 10년 전,'곧 떠날' 혹은 '떠나야만 하는' 대구에서 살았었던 내가 스물 여덟살이 되어 '잠시 살게 될'대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0년전에는 없었던 '비교 가능한 도시'의 정보도 내겐 있다. 무슨 말장난 같지만, 이것은 내게 놀라운 관점의 차이였다. 


주로 친구를 만나거나 옷을 사는 등 '필요'에 의해 방문하던 동성로거리와 시장통 대신 뒷골목과 샛길에서 허름한 간판의 50년 전통 맛집 같은 것을 발견하는 걷기여행을 가끔 했다.'대구를 떠나려고 준비하는' 학생들 대신에 '대구에서 살기위해' 떠나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선생님들의 삶이 보였다. 직접 걷거나 운전하며 지도의 조각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일은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짜릿하고 재미있다. 이에 더해 이 곳에서는 어린시절의 기억조각들을 맞추는 재미도 한껏 느낄 수 있다.


20%정도는 원주민, 80%정도는 이방인의 시각으로 대구에서 살기. '대구'라는 지역에 대해 생각하기로는 대구를 떠나기 전 20년 보다 최근 6개월동안 생각한 양이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확실히 나에겐 최근에 본 대구가 더 매력적이다. (아마 그 20년 동안은 사회과탐구시간이 대구에 대해서 생각하는 유일한 시간 아니었을까. 오히려 어린시절엔 내가 사는 지역보다 멀리 있는 연예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겠지. 아이러니컬하지만 자연스럽게도)



작년의 서울과 올해의 서울은 내게 어떻게 다를까


그러고 보면,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서울의 곳곳, 거리의 얼리어답터인양 핫 플레이스들의 골목 골목까지 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서울에서 지내는 내내 이방인의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을 하듯이 우연히 선택하게 된 어떤 지역에 대해서는 동네주민들이 가는 작은 떡볶이 집까지는 섭렵해야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살았던 나였기에 간혹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말고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친구들을 서울 촌놈이라고 놀리기도 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 친구들은 대구에 오면 대구 촌놈이 되는 나와 같았던 셈이다. 


사실 서울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을 했다. 서울 지리에 대해서라면 택시기사나 서울지리를 연구하는 학생을 제외한 일반적인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며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경험하는 서울은 내가 알고 있던 서울과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였다. 솔직히 말해, 도시가 변해봐야 일 년만에 뭐가 그리 변했겠는가. 그런데 내가 너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주민'으로 살 때와 '비지니스'를 목적으로 서울을 방문할 때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이 너무도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일 년 전엔, 남산 중턱의 조용한 동네에 월세일지언정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었다. 폐차 직전의 차이지만 어디든 나의 구형 액센트를 직접 운전하며 서울의 곳곳에서 아직은 트렌드 세터들에게 덜 발견된 조용한 지역과 카페를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방문객의 입장이 되다 보니, 동인천 급행을 탈 때를 제외하면 거의 타지 않는 일호선 지하철을 하루에도 두 번씩 타야하거나 사람이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광화문, 종로, 신촌, 여의도, 강남고속터미널 등에서 미팅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의 서울과 지금 내가 이용하는 서울은 같은 서울이지만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신촌역을 지나는 2호선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이 사람들과 나는 같은 서울하늘 아래 살았을지언정, 굉장히 다른 서울을 경험하며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서울 하늘 아래에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서울 경험방식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현기증이 났다. 이것이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매력이자, 외로움의 원천 같다고 느껴졌달까. 


어찌되었건, 서울이란 도시에서는 십 년 전의 나도, 일 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이방인이다. 이방인이라는 속성은 같지만 성격은 조금씩 다른. 




어찌되었건, 난 기꺼이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하고 있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한 지역에서 꾸준히 기반을 만들고 지역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을 많이 만났다. 뜻이 좋고 지역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함께 성장해 나가는 역량있는 활동가들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그 와중에 대구를 떠올리면 마음 한 켠에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대구에 돌아왔을 때. 내 자신에게 자문해 보았다. 내가 만나왔던 지역 활동가들 처럼 지역에 기반을 두고 일을 해 나갈 자신이 있는가? 내가 하고 싶거나 내가 잘 하는 일인가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를 자문했을 때 결론은 NO!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 열정적으로 일을 진행하다가도 어느 순간 팔짱을 끼고 뒤로 조금은 물러나 사람들을 관찰하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한 곳에서 우직하게 뜻하는 바를 밀고나가는 일을 하는 것엔 자신이 없었다. 집요하게 공을 몰아 나가 골대를 향해 한방을 쏘는 킥커가 보다는, 이런 저런 시각들을 제시하며 킥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윙어가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된 탓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핵심 이해관계자가 아닌 마치 제 3자가 된 것인 양 한발짝 물러서서 내가 속한 집단을 바라보는 일이 잦다. (그래서 가끔 얄미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어디서든 이방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나는, 그냥 그것이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그다지 버리고 싶지도 않은) 나의 성향 혹은 성격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묘하게 외로운 느낌을 팍팍 풍긴다. 실제로 이방인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조금은 안정되지 못하고 종종 외로운 것이다. 그치만 촌스럽게 외로운 이방인으로 사는 신세한탄을 할 수는 없지! ㅋㅋ  오히려 내가 줄곧 생각해오고 있는 것은 이방인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 주는 신선함과 크리에이티브같은 것. 그리고 그것이 삶의 많은 영역에서 긍정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확신같은 것이다.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더 많은 새로운 지역에서 '이방인'이 될 것인가 보다는 정체된 곳에서 어떻게 이방인의 시각을 활용할 수 있는가에 더 가깝다. 내 문제와는 크게 상관없는 것 같은 친구의 말 한마디나, 끼워 맞추기 나름인 점장이의 점궤하나가 내 고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듯이. 


일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게 하는 위치 혹은 그러한 시각을 담는 기획 프로젝트 같은 것을 계속 해보고 싶다.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조직을 컨설팅 한다거나 어떤 사업의 자문회의를 구성하는 등  이방인의 시각의 강점과 원리를 차용하는 형태가 현재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뭐 어찌되었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이방인으로서 원주민 사회의 매력과 긍정적인 면을 발굴해 내고 드러내어 주는 것. 그것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어 원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불어 넣어주는 접근법. 최근에 쓴 연등축제 외국인 방문객 백서에 쓴 표현을 빌자면 원자열 근자래[각주:1] 전략이라고나 할까. 


단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방인으로의 포지셔닝에 스스로 외로워지거나 허무해 지기를 경계할 것. 이방인의 시각을 유지하되, 원주민만큼의 고민과 진정성을 가질 것.    (음 글이 막판이 되니까 교훈적으로 흘러가는군. 역시 난 촌스럽다니까)




  1. 일찌기 공자는 '근자래 원자열'이라 하였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 온다는 뜻으로 정치와 관련한 말인데 최근에 축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끔 회자되는 말이다. 여기에 쓴 '원자열 근자래'라는 말은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인데, 연등축제가 외국인에게는 인지도도 높고 만족도가 높은 반면 내국인들에게는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을 뿐더러 흥미도가 다소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 외부의 평가를 내국인 홍보에 활용하라는 전략에 붙인 이름이다. (관련 내용은 연등회_연등축제 외국인 방문객 백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발행 :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 [본문으로]


비행기 11시간 지연이라는 초유의 사태속에서 쓴글 ^^



서울광장에서 관광객 놀이 하다.

 

프라자호텔에서밖을 살짝 내다 보니, 서울광장 한켠에 작아서예쁜 무대가 하나 서있다. 호텔 안내문에 보니 5월부터 10월까지 서울시에서 매일밤 여는 작은 음악회라고 한다. 아직 공연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몇몇의 연인이, 몇몇의 가족이, 친구와, 혼자들이 광장 곳곳에 자리잡고있다.

 

낯설다.

 

언젠가부터 텅빈 서울광장의 모습은 내게 굉장히 낯선 광경이 되었다.

차로 꽉 막힌 세종로 넓은 거리도,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평안하게 휴일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것도 낯설다. 낯설고,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올해 초여름. 이 공간은 내게 희망의 공간이고, 호기심의 공간이었고, 즐거움의 공간이었다. 수도없이 이어지는 촛불들, 촛불들이 만들어 내는 크리에이티브. 2008년을 3개월 정도 남겨둔 지금, 촛불은 그 무엇보다도 내게 가장 충격과 감동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한없이 여유로운 서울광장을 보고있자니,

위협적이었던 까만색의 전경들도, 후텁찌근한 여름날 이 곳을 가득채우던 땀냄새 조차 그립다.

그리고 정말 낯설다.

 

 

여행의 기술

 

오늘 나는 시청앞 거리를 누비는 커리어 우먼도, 휴일날 아침 쇼핑과 브런치를 즐기러 나온 20대 여성도 아니었다. 슬리퍼를 질질끌며, 가방도 없이 호텔 키 하나만 들고 나온 여행객.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서울광장이 아니라 뉴욕의 센트럴 파크쯤 되는 것처럼 낯설고 새롭다.

 

하긴 이시간의 서울광장을 본적도, 정장을 입고 데이트 하는 20대 회사원 커플놀이를 해본적도 없어서 더 낯선건지도 모르겠다. 내겐 데이트를 하러나온 50대의 커플도, 담요를 한장 깔고 도란 도란 앉아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도, 일인용 깔개를 깔고 앉은, 마치 이공간 활용에는 베테랑이겠다 싶은 할아버지도 모든게 새롭다.

 

저들은 이곳에 얼마나 자주 오는걸까, 데이트를 하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저들도 나처럼 이 공간이 낯설까.

 

새삼 여행이라는 것이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다.

자주가던 공간도, 자주 보는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가고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듯,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내가 자주가는 지역,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속에서 안쿵쿵이 어떤 방향으로 서있냐에 따라, 안쿵쿵이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어쩌면 그속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게 알랭드보통이 여행의기술에서 말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서울에서 관광객 놀이하기.

혜지는 서울사람 맞냐며 핀잔을 줬지만,

서울에서 하는 관광객 놀이, 나쁘지 않다. 자주 하고싶어진다.

(물론, 이렇게 우연한 기회가 생기지 않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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