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살의 일기를 보고 버럭 화가났다.
왜 몇년이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사는걸까.
왜 한번에 치열하게 고민하여 답을내지 않고
뒤늦게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짜증을 내는걸까
나.. 왜이렇게 게으르고 우유부단한걸까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며칠동안 '질린다' 라는 말을 자꾸만 내뱉으면서
스물다섯의 일기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 아래는 2007년 9월의 일기, 사진은 2007년 8월의 제천







+

 

사회적 동물을 연구하는 인문학자.

인류보편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사회학자.

 

논어가 아닌, 정조 이야기에 나오는

'온고지신'이란 이런것?

 

 

-

 

추상적 언어보다는

해결책 같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요즘

익숙하지 않아 쉽지가 않고

쉽지가 않아 서툴고

서툰 나를 발견할 수록 행복하지 않다.

 

'당연한 것'의 기준은 어디까지 일까

'누구에게나' 말고 '누군가에게' 말고

'나에게 당연한것'의 기준은?

 

그것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내가 가졌던 특별함이고 

그것을 만들지 않겠노라 생각했었는데,

스물다섯은 처음으로 내게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떠나고싶다고 생각했다.

어느날갑자기 나와 연결된 모든사람들이

부담스러워질때가 있다.

그런날이었다.  

 

나에대해 생각했다.

관계가 깊어지는 것에대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일년에 한번씩 선생님과 친구와 짝이 바뀌는

초,중,고등학교 생활이 편했던건지도 모른다.

 

점장이의 말을 떠올렸다.

역마살이 두개나 꼈다며

인생의 무대를 여러번 바꾸고 나닐거라는 말이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었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관찰한 대부분의 이들, 그리고 나의 경우

여행의 의미는 목적지가 아닌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

바로 여기에 더 많다. 

 

여행과 관련된 행동을 조금만 들여다 봐도 알 수 있다.

동기의 발현, 기록과 회상 등

여행 전-중-후의 여러가지 행동들말이다.

알랭드보통이었나.. 언젠가 누군가의 글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고 그럴듯 하다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인류학자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갈 어딘가에 대해 아주 조금의 위안과 부담감을 가지고

관찰자로서 삶을 사는것

이십오년이나 대한민국에 적응하고 살아온 나에게

아무리 적응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안쿵쿵이더라도

쉽게 용기를 낼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

 

 

?

 

매일매일 사춘기같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선택하기를 주저하거나 미루는

내모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

 

스물다섯은 내게 화를 낸다.

선택과 결정을 할때가 되었다고..

 

또 다른 스물다섯은 내게 재촉한다. 

더 꿈을 꾸라고..

 

위로하는 스물다섯도 있다.

지금 서 있는 이 길도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고립지대는

아닐거라고

 

 

!

 

상념의 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념의 쉼터가 없어서 못가는 것이 아니라

저 30M를 걸어들어가기가 두려워

주저하고 있는 스물다섯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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