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내어놓는 집이라 빨리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었는데,
어제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어닥치더니, 30분도 안되어서 전화가 왔다.
다가오는 금요일에 이사오고 싶다고.

남은 시간은 5일.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사실 이사하는 날이 결정이 될때만 해도 속이 다 후련했는데, 
오늘에서야 이사 소식을 친구에게 전하면서, 그리고 갑작스럽고 서운해 해는 반응들에
갑자기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3년씩이나 정이들었던 집도 집이지만,
9년간의 서울생활과도 잠깐 안녕,
그리고 무엇보다도
뭐라 적당한 말로 표현하지 못해 '생활문화공동체'라고 가끔 부르곤 하며 웃던
지난 1년의 나의 생활,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가장 컸다.

우리가 함께 있는동안 마셨던 커피를 원두의 개수로 계산하면 몇알이었을까.
라떼에 들어간 우유로 치면 우린 과연 몇마리의 젖소를 경험한걸까.
제2의 작업공간이었던 동교동,서교동,상수동, 합정동 등지의 카페에서
우리의 노트북이 쓴 전력은 몇 와트쯤 될까.
만신창이가 된 나의 차와 함께 누빈 거리를 다 더하면
서울에서 유럽의 어느나라 정도 거리 아닐까.
우리는 매일매일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고 이야기하고 또 웃었을까.

화가 나는 일도, 성공하지 못한 연애시도도 가장 많았던 지난해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나의 20대 중 외로움과 우울한 감정을 가장 적게 느낀 때도
지난해 여름 이후부터 지금까지였던것 같다.
(얼마전에 누군가에게 이야기 했듯, 스스로 조금씩 사랑받을 줄 알게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옛날이고 지금이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많은 사람들 덕택이다.(역시난 공주병ㅋㅋ))

얼마전에 어진퀸이 그녀의 싸이에
'큐엑스에서의 마지막 두달간이 참 깨알같았다'라고 써놓은걸 보고
왠지 모르게 짠한 기분이었었는데, 그래 그러고 보면 정말 깨알같았다. 지난한해. 

뭘 이렇게 거창하게 글을 써놓고
조금 있다가 정희언니를 만나고, 내일 진영이를 만나면
손발이 오그랄 들정도로 부끄러워 이 글을 숨겨놓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시 안볼것도 아니고,
당장 내일도, 한달뒤에도, 다가올 여름의 어느 밤에도
아이스카페라떼 한잔 시켜놓고 다섯시간씩 수다를 떨어댈게 뻔하지만

지금 내가 슬픈것은,
우리에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상 그때는 당장 해야할일이 너무 버겁고, 우릴 괴롭히는 사람들에 화가 나고
각자의 미래는 막막하고, 지금의 감정은 불안한 상태의 연속이었었지만,
그래도 이럴때 일수록 잘먹어야 한다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카페를 발견하고,
화가나고 짜증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그때는
돌이켜 보면 참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맞아.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테지.


*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못하며 훌쩍 훌쩍하면서 이 글을 쓰고있다.
요즘은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싶은데, 이런 내모습이 싫지 않다.
(심지어 몇주째 무한도전을 보며 울고있다 ㅋㅋ)



'고요하게빛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책없이 그리운  (2) 2010.02.26
괜찮았다가, 괜찮지 않아졌다가.  (0) 2010.02.17
'꽃'을 만나다.  (0) 2009.12.10
기묘했던 날  (0) 2009.11.23
스물일곱의 가을  (0) 2009.11.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