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 밖으로
해질무렵의 자동차 불빛들이 빗물에 흩어지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때마침 스피커에서 노라존스의 뉴욕시티가 흘러나왔다.
이방인이다. 갑자기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의외의 장소들이 너무 그리워 졌다.

이제는 눈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것만 같은 방콕의 쑤완나폼 공항,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새벽 세시, 결코 지워지지 않는 2층 푸드코트의 향신료 냄새,
그리고 공항 문을 열고 나설때 마주하는 후덥찌근한 공기 같은것.

갑자기 추웠던, 서울같았던 토론토 시내 한 복판에서
모든것이 막막하고 뒤죽박죽하고 현기증이나서 금방이라도 쓰러질것만 같던 그때
축처진 어깨를 하고 찾아 들어갔던 토론토 한 구석의 스타벅스가 생각났다.

내 생애 첫 해외여행, 오사카에 묵었던 한 호텔의 공중전화부스도 생각난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다.

그 장소, 그 장면들은
가끔 생각이 나고 이따금 그리워 지는 그런 것이다.
실제 그 순간들은 너무 지루해 견디기가 힘들었거나, 위태로운 기분에 휩싸였거나,
이 세상에 나 혼자인것만 같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을 것만같은 외로움의 순간들이었고.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지지도, 그것을 통해 추억할수도 없는 그런 장면들이지만 ,

어쩌면 그래서,
내 외장하드에 들어있는 그 어떤 사진들 보다
더 많이, 더 애틋하게 그리워 지는 그런 장면들.

그 순간, 그 장면을 다시 여행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이 그리워 지는 것이다.
힘들고 위태로웠던, 견딜수 없을 만큼 외로웠던.

그리워 한다는 건,
그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야 상상할 수 있는 것
되돌아가고싶지않지만 그리운것은
기억의 장난같기도, 감정의 사치같기도 한것.

그렇지만 또 그리워서
나는 또 어딘가로 떠나고, 누군가를 찾겠지



*
스물여덟살의 2월, 봄비가 내린날
공덕동 브라우나비 만큼이나, 동부이촌동의 수많은 카페만큼이나
자녀의 교육을 걱정하는 아주머니가 많던 우리동네 상인동의 한카페에서
어느순간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다가, 뉴욕시티를 외치는 노라존스목소리에
갑자기 떠나고픈 마음이 들어 잠시 정신줄을 놓았더랬습니다.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고,
포근한 봄비 탓인지 많은 것들이 대책없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어쨋든, 또 봄입니다! 그리워 하면, 기다리면 찾아오는 봄.

'고요하게빛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다시 5월.  (0) 2010.05.24
Slowly but Surely  (0) 2010.03.25
괜찮았다가, 괜찮지 않아졌다가.  (0) 2010.02.17
어떤 시절  (0) 2010.01.17
'꽃'을 만나다.  (0) 2009.12.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