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장 중에 아직까지 구렁이와 함께인 약장수가 출근하는 유일한 시장인 모란시장. 오늘은 어떤 새로운 물건이 나왔나. 싶어 구경하러 나왔다가 친구랑 지지미 한 장에 소주한잔 걸치고 돌아가는 황학동 벼룩시장, 어떤 날은 옆 마을로 시집간 순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운 좋은날은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며 재미삼아 친 고스톱에 한 밑천 벌어가는 재미가 있는 벌교와 서천의 장날.

 이제 갓 열 두살이 된 나의 막둥이 동생은 시장이 냄새가 난다고 싫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는 여전히 둘도 없는 놀이터인 시장.

 모란시장에 방문했을 때, 다른 시장과는 달리,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 때문인지 약장수 때문인지 보양식이 많은 시장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을 찾은 아저씨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서 좋았다. 신문에서는 우리나라 40-50대 남성이 갈 곳을 잃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마트에서 카트 끌어주는 남자’가 좋은 남편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요즘 같은 때에 시장 곳곳에서 싱글벙글한 표정의 아저씨들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반가운 사람과 마주치고, 술 한잔에 내 이야기 슬쩍 뱉어보는 오감충족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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