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야 깨달은 사실 중 하나, 나는 짧은 이야기를 길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막상 요약해보면 굉장히 사소한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 늘 그 사소한 사실에 대한 내 감정과 생각의 역사를 연대기 처럼 읊곤한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는 무한대로 늘어나고 목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떨렸다가 단호했다 하는거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늘 시작은 유치작렬 찌질부끄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짧은 혹은 굉장히 긴 시간동안 그 감정의 실체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나의 감정은 급물살을 타고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까만색과 흰색을 막 오고간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 모든 마음과 머릿속의 과정을 되도록이면 빠짐없이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 중에 하필 그시기에 읽은 책, 그 시기에 하필 내가 봤던 드라마의 대사 등에 대한 언급은 필수다. 그런데 마지막엔 결국 스스로 대책없이 해피엔딩하(ㄹ 것이라 기대하)는 말로 급 마무리가 되는 다소 김빠지고 시시한 이야기도 한것이다.  

나의 완소 대화상대인 안해삼님께서는 내가 길을 걷다가 ‘저기 있잖아, 내가 그것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말이야…’ 라고 말을 꺼낼때면 늘 이렇게 반응하곤 했다. ‘또 간증 시작이군. 어디 한번 간증해봐라. 들어보자!’

그래, 사실 아직 ‘간증’만큼 나의 이야기습관을 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어쨋든 사소한 사실에 관여한 먼지같은 생각까지 빠짐없이 표현하고픈 욕구의 과잉이 나를 간증하게 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

나의 ‘길게 간증하는 재주’를 최근에야 알게된 이유는, 나의 간증을 모든 사람이 재미있어 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최근에서야 받았기 때문이다 ㅋㅋ (다르게말하면, 난 이제까지 나의 간증엔 나름 대중 흥행의 코드가 있다고 믿었다. 이건 진심이다 ㅋㅋ) 

그런생각을 하고 나니, 기꺼이 나의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새삼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내 주변은 따뜻한 눈으로 가만히 내 길고긴 이야기를 들어주는,해결하고 가르치려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맞받아칠 줄 아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사람도 만났지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었다. 그게 성장인지 회피인지 딱 뭐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어쨋든 그게 우리 스타일인거다. 

어떤 이야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하고 평가하는 것만이 상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표현하는 유일한 혹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짐작만 있고 내용은 없어 궁금해 죽을것 같아도 어떤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줄 아는 것. 

그리고 그들이 살짝 꺼내 보여준 각자의 세계는 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이야기를 곰곰히 듣고 있다보면, 우리의 각자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르게 생겨먹었구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세계는 같은 우주에 그것도 꽤나 비슷한 궤도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나는, 때로 서글프고 때로 외로워도 세상은 살만한 정도가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살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는 올곧이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이야기 해놓고 오늘은 인생은 한방이라며 대박인생을 꿈꾸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변했거나 배신자가 된 것이 아님을. 우리가 그것을 아는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너무도 상식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http://vividynamic.tumblr.com/post/3499392857 

'고요하게빛나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절함과 절실함  (0) 2011.09.06
상식적으로 산다는 것  (0) 2011.03.19
어쩌면 내게도 있을지 모르는 재능  (0) 2011.03.19
편애하고 있다.  (0) 2011.01.14
스물아홉, 대책 없이 해피고잉!  (3) 2011.01.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