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주의자, 박애주의자(인척). 나의 지인들은 주로 저런 말들로 나를 맹비난 하지만(ㅋㅋ) 여러 번 고백하건대, 난 요즘 ‘심하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을 편애하고 있다.


어느 날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언제나 일관될 수는 없다. ‘너 답지 않게 왜 그래’랄지, ‘그런 사람인줄 몰랐는데 실망이야’ 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고한 사람을 잡는 일일지도 모른다. 잘못이 있다면 한없이 다채로울 누군가를 단순화 시켜 내 마음대로 기대한 나의 잘못이지 어디 한없이 다채로울 능력과 자격이 되는 그 사람의 잘못인가 뭘.


꿈에서처럼,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생각은 늘 논리적이고, 마음속 깊이 하고 싶은 말은 단어 하나의 실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계산 한 그대로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마음속 깊이 있는 말, 심지어 어떤 순간을 대비해 백번도 연습한 그 말을 반도 못하거나, 이상하게 각색하여 다시 오해를 만들어 버리거나 하는 일을 반복하기 일쑤다.답답하고 힘든 이런 나의 표현능력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나아지는 종류의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에 비해 마음이 조금 나은 이유는, 때때로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내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어떤 선택을 하는 과정과
마음과는 다른 어떤 말을 내뱉은 자신을 괴로워하고 반성할 것이라는 걸 생각할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누군가를 편애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일 순 없고, 어떤 선택과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을 100% 표현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라면. 어눌하거나 앞뒤가 안 맞는 말일지라도 말하는 동안 그 사람의 진심이 느껴졌거나,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냥 그 사람 자체를 편애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은 어릴 때부터 당연히 그래 왔던 것을, 내가 이렇게 긴 글 까지 써가며 구구절절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전의 난 내가 무언가를 편애한다고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개념이건, 음악이건 책이건 그랬다.) 늘 그냥 좋아하지 못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고, (하나도 논리적일 리 없지만 나름 논리적으로) 이유를 찾기 위해 공부를 하다보면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거나 표현할 시간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돌이켜 보면 늘 누군가를 편애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일도 생겼다.


그렇지만 난 요즘 그 어느 때 보다 ‘심하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을 편애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멋진 일을 해냈기 때문에, 나와 같은 정치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혹은 지금 어떤 사안에 대해 나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세계에 대한, 사람에 대한, 나와의 관계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그 진심이 내 마음을 툭 하고 흔들어 놓았다거나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라면 맘 놓고 편애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그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이 무엇이건, 나와의 관계에서 차곡 차곡 쌓아놓은 기억들이 무엇이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과정과 어떤 선택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함께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고 따지고 한 후에 사랑에 빠져들기엔, 이 세상엔 사랑할만한 사람이 너무 많고, 일단 사랑에 빠져야만 보고, 알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팔짱을 끼고 재고 따질 때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려 노력 할 때 볼 수 있는 사람의 면면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늘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멋진 세계와 멋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나.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이런 것도 알게 되었다. 늘 내 곁에, 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내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세계도 다시 보면 볼수록 놀라운 일 투성이라는 것.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사랑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멋진 사람이 되거나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가 멋져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아마도 그건 내가 모르는 멋진 세계와 멋진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 보다는 확실히 더 쉬운, 조금은 더 빠른 일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나 나는 그들을 편애하고 싶다. 어느 날엔가 그 사람이 또 한번 내 진심을 툭하고 건드리는 선택을 했을 때, 이렇게 말해줘야지. ‘이 어매이징한 사람아, 이러니 내가 안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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