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ly but Surely
요즘 하루에도 몇번이고 나 스스로에게 하는 충고.

돌이켜 보면, 난 바쁘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꽤 오랫동안 내가 워커홀릭이라거나 회사가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난 고등학교 때에도 친구들에게 굉장히 '바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가끔 그런것들이 짜증이 난다. 모처럼 얻은 휴가에 굉장히 빡빡한 여행일정을 계획하여 다닌다던가, 프로젝트가 끝나서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왠지 불안해서 약속을 막 만들어 낸다던가 하는 나의 오랜 습관들. 얼마전에 의사가 일도 하지말고 운동도 하지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할 때, 그것이 경고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겐 너무 과한 충고라고 느껴졌었다.

그렇게 안달내고 바쁜 것을 자처했던 것은, 언제나 나는 뭔가를 빨리 이루어 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8년동안 계속 된 나의 경험에 의하면, 뭔가를 빨리 이루려고 안달을 내고 과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대체로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높았다. 며칠전에 친구와 함께 나눈 예를 들자면, 한달에 1킬로그램씩이면 다섯달 동안  5킬로그램을 뺄 수 있는데, 항상 우리는 한달에 3킬로 그램을 빼겠다는 과도한 계획을 세워 실패하고, 좌절하며 결국은 다이어트를 포기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몇달이 흘러 위기감이 들었을때, 또 한번 우리는 한달에 3킬로 그램이라는 과도한 감량 목표를 세운다. 이번에는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또,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에 대해서는 금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생각만큼 성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이상으로 좌절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나는 어떤부분에서 굉장히 성숙한 의견을 가지면서도, 가끔 상식이 부족해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리고 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어른 스러웠고, 어떤 면에서는 막둥이 동생보다 더 애 같아서 나 스스로 느끼는 불균형이 생각보다 굉장히 컸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관계에 대한 불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될수도 있을것 같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삶의 방식, 저마다의 관심분야가 있고 그에 따라서 잘 살면 되는 것이라고, 아무도 완벽하게 살수는 없는 것이라고, 세상의 이치를 다 알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은 잘하지만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욕심이 많은 나는 쉽게 질투하고 쉽게 좌절했다. (얼마전에 친구가 나에게 기사 한장을 내밀었다. 그 기사는 명지대 김정운 교수가 쓴 '세상을 바꾼다는 욕심을 버리면 삶은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얼마전에 행복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사람들 중 상당한 비율의 사람들이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친 자기 효능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일을 하거나 시험을 칠때, 자신이 다른사람보다 혹은 준비해왔던 것에 비해 잘할 것이라고 믿는 다는 것. 어쩌면 나는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인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언젠가 친구가 '성실한 것'과 '부지런한 것'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준 이후로 (이 분류법은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나는 '성실한' 사람들을 정말이지 마음속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
내가 굉장히 존경하고 곁에 계속 두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고등학교때에도 대학교에서도 그리고 직장에서도 주어진 환경,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해왔던 친구들이다. 난 그런사람들이 내 곁에 있을때 안정감을 느끼고 나의 배우자 역시 그런사람이어야 한다고 오래전 부터 생각해왔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사람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에게서는 어딘가 모르게 단단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처음부터 주목을 받건 아니건, 결국에는 인정받는 사람은 '성실하게' 어떤 일을 해내는 사람인것 같다. 그 과업이 쉽건 어렵건, 재미있든 그렇지 않든 일관되게 평균적인 성실함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들.

요즘 나는 중고등학교때 배웠지만 나는 잘 이해 못했었던, 대학교때 보긴 봤으나 깊이 읽으려 하지 않았던 책이나 주제들을 다시 책상위로 꺼내놓곤 한다. 며칠전엔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와 시민윤리 교과서도 샀다. (음. 이것은 내가 겪었던 교육과정엔 없었던 과목이긴 하다 ㅋㅋ) 조금은 여유가 있는 요즘, 나머지 공부를 하는 심정으로 (ㅋㅋ) 조금 더 스스로 단단해 지려는 노력의 일환이랄까.  

하루에도 몇번씩 Slowly but surely를 되뇌이지만, 여전히 나는 안달이 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바쁜사람일 확률이 높고 성실하려 노력하겠지만 여전히 '부지런' 할 때 에너지가 넘칠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 조금은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 지금은 이만큼 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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