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차도, 인적도 없는 기묘한 길을 달렸다.

가끔씩 있는 촌스러운 표지판에 이끌려
조용히, 천천히, 묘한 기분으로 달려가다보니
텅빈 집 한채, 결번일 것만 같은 전화번호,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절집같이 생긴 교회,
관리하지 않아 잡초가 나있는 주차장이 나타났다.

숨죽이며 한걸음 한걸음 그곳을 둘러보다,
에이 별거없네, 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혹시나 핸드폰이 안터졌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하다,
걸려온 전화가 잡음하나 없이 빵빵 잘터져서 살짝 김이 샜다.
그리곤 내려오는 길에 피식 피식하고 혼자서 웃었다.

기묘한 날이었다.

어쩌다 들어선 길도,
어쩌다 만난 사람도
모조리 기묘한 날이었다.

배추 싣기가 한창인 밭에서, 고무장갑 낀 아주머니와 인터뷰를 하고,
수천년 역사에도 전쟁이 알아서 피해 갔다는 마을을 방문했고 (그래서 마을 이름이 '도리'다 도리도리 )
그 시골마을에서, 내가 한때 정말 자주 방문하던 노짱 홈페이지를 기획했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분은 귀촌을 하셨다고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연상케 하는 시골 읍내의 라이브카페를 방문했고,
(사실 조금은 무서웠지만) 마음만은 정말 따뜻한, (그리고 매우 촌스럽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랑스럽게 표현하는 밴드를 만났다.
금요일 밤, 시골읍내의 밤은 도시의 밤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고,
나는 어색하게 밝은 롯데리아에 앉아서 그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려고 애를 썼다.

욕망과 욕심,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현실적이고, 거침없고, 솔직한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에 비해
너무도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욕망과 욕심을 가지는 정책들을 생각했다.
어째 크게 어긋나 있는것 같지만, 깊이 파고 들면 비슷한 원리일지도 모른다.

거침없고 촌스러운 표현을 쓰는 사람들 앞에서 내내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이렇게 생생한 언어를 먹물냄새가 나는, 다시말해 '고상한' 언어로 바꾸려는 강박을 가진 학자나 전문가들이 더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생각이 들면서 어색한 기분의 나, 자꾸만 고상한 언어를 쓰려고 하는 내 자신이 촌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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