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의 말에서,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굳이 적어놓았다. 그런데 웬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으면서 나는 주인공 남자가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내내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완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요즘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할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기대인지 깨닫고 있다. 그치만, 사람이라서 또 이렇게 쉽게 생각해 버리는 나를 또 마주하게된다.) 

그는 정말 내 마음을 알것 같았다. 2008년 봄부터 2009년 5월 까지 이어진 나의 길고긴 사춘기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는 나를 이해할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다른 세대, 분명 다른 시간과 계기였지만 1980년대의 그도, 2008년의 나도 그제껏 믿어왔던 '세계'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챌 그 즈음엔 영문도 모른채 방황을 했다.

그제야 나는 그즈음 내가 공들여 지어온 집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반석이라고 믿었던 모든것들이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자각은 그해 6월, 나를 향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밀려들던 우울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우울이 아니라 한시대 전체가 느끼던 거대한 우울이었던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그 우울은 너무나 컸다)로 부터 나를 구해냈다. 나를 구한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 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 123p

주인공이 공들여 지어온 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부터, 마지막장에 이를때 까지 책속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들과는 상관 없이 주인공의 모습이 꼭 2008년 4월의 어느 새벽에서 부터  2009년의 5월, 햇살이 정말 뜨거웠던 그날의 서울역 앞에 서있던 내모습과 너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간혹 쉽게 이해가 안되거나 공감이 안되는 부분을 읽을때면 너무 안달이 났다.

잘가. 안녕. 나는 막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안녕이라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1991년의 10월 어느날 해질무렵, 나는 한때 내가 살았던 어떤 뜨거운 시절에게 작별인사를 던진것이라고. - 389p


그것은 시대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의 문제였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1980년대의 그의 방황에 공감했고, 그의 이야기에 2008년의 내가 새삼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을테지.  그 시대에도, 2008년에도, 2010년에도 수많은 개인의 삶은 존재하고 그들이 수많은 상실과 좌절속에서 정리해 낸 수백, 수만개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일관성을 가지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실제의 삶이 그러했든, 그러하지 않았든.  (우리의 보통의 삶은 일관성을 가질 확률이 극히 드문데도 말이다) 

사기꾼이자 협잡꾼, 광주의 랭보 이길용이자 안기부의 프락치 강시우였던 그 남자에 대해 이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가 그에대해 알아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죽지않는 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시시각각 열망할테고, 그 열망이 다시 그를 치욕스럽되 패배하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남게 할테니까 말이다. - 375p

나의 길고긴 사춘기가 끝나갈 즈음, 시대나 세대의 문제에서 개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생각을 하기 시작 하고서야 그간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386들에 대한 영문모를 미운감정이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고 느꼈다. 386 혹은 '그 시절', 혹은 그들이 우리세대에 가지는 우려나 반감 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으로 치자면, 김연수의 소설은 그 어떤 세대론 보다 설득력 있고 촌스럽지가 않다. 그의 글은 굳이 따지자면 사회학적이기 보단 심리학적이고, 역사와 같이 큰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역사 속의 개인을, 끝이 어딘지 모를 개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로 그 부분이 무릎을 탁 치며 빵 터질듯한 가슴으로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는 이유. 어쩌면 딱 나의 취향인것인지도. (요즘 나의 대화에서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가 빠지면 도대체 대화가 안되는데, 그제는 심지어 아엘츠 스피킹 스터디 시간에 신나서 김연수라는 사람을 요즘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 그가 결혼을 했고, 딸마저 있다는 소식은 최근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슬픈것이었다 ㅋㅋ)

인간이 환상의 희생자가 된다거나, 과거의 것이 새로운 것 보다 더 강하다면, 혹은 '진실'이 자기편이 아니라 자기와 대립하고 있다면,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식하다고 믿는다면, 그 실망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상황은 이전만큼,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나쁘다. 과거는 꿈을 위해 온갖것을 희생하고 과감하게 전진했던 사람들을 기습하고 복수한다. ... 최선을 다 했기에 허탈감이, 아마도 그들은 너무나 희망했기에 너무 절망하게 된다. 늪에 빠지지 않은 자들은 더 나쁜 구렁으로 빠져든다. 꿈을 위해 뛰어다녔던 사람들이 이제 그 꿈에 맞서서 뛰어다닌다. 좌절당한 개혁자 보다 더 무자비한 반동분자는 없다. 길들여진 코끼리를 제외하자면 누가 야생코끼리에 맞설수 있겠는가. 그러나 실망한 사람들도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할 뿐이다. -373p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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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수만명의 시민들이 밤새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던 세종로 네거리에서 예비군들이 폭우로 생긴 물웅덩이에 뛰어들고 있다.
ⓒ 권우성
한미 쇠고기 협상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세종로네거리에서 경찰과 밤새워 격렬하게 대치했던 시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서울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한미 쇠고기 협상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는 48시간 릴레이 농성이 벌어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과 밤새워 격렬하게 대치했던 시민들이 날이 밝아오자 노래를 부르며 대동놀이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촛불축제는 진화합니다.
어제(6월 22일)는 집회 분위기가 평소보다 격렬하니 재미있었는데
결국 아침 열시까지 시민들이 위 사진처럼 놀았네요.
 
 
어제 국민들이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많았습니다.
 
#.대규모 참여 프로그램
토성 쌓기
인간 모래주머니 컨테이너벨트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국민 줄다리기
(일명 이순신 장군 석방운동입니다)
*
음 아침에는
국민 촛불기차놀이와
물장구놀이를 했네요.
 
#. 공연프로그램
시민녀와 경찰녀의 랩배틀
( 시민참여형 프리스타일 ㅋㅋ)
 
 
#. 전시프로그램
시간이 갈수록 시민참여형 공공미술이 늘어납니다.
온라인 게시판을 아스팔트 도로로 바꾸어 놓으니
사람들의 표현 방식도 다양해 지는군요!
내 비비다이나미끄 붕붕이가 빨간구두를 신었습니다
한밤중 퇴근길에 집으로 가려면 삼각지에서 우회전 하여 이태원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이틀째 붕붕이가 나를 광화문으로 끌고 왔습니다.
아놔 빨간타이어에 구멍을 내야하는지... 안그래도 요즘 피곤한데 ;;;

글세요.
왜인진 모르겠어요.
대학교 1학년때 운동권 학생회가 동영상 보여주면
구린내 난다고 도망가던 나인데 ㅋㅋ

뭐 그닥 제가 정실장님 처럼 정의실현파는 아닌거 같고,
관찰자의 본능 같은거 아닌가 싶습니다.
시위에 참여한다기 보다 모니터링 한다는 표현이 더 맞는거 같습니다.
(오늘 진영이 '쿵도 나가서 축제성 분석해야하는거 아냐?' 라고 말하던게 생각나네요 ㅋㅋ)

오늘은 좀 많이 훈훈한 기분이 들었어요.
'이명박은 물러가라'란 말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들은것 같아요.

새벽 1시, 오늘의 시위를 접어야 할 시간.
할아버지가 청소년에게, 양복입은 아저씨가 대학생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우리 내일 또 만나요' 라고요.

아주 잠깐 시위현장에 머무르면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예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절모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는 올해 72세라고 하시네요.
지난주 토요일 시위에 나왔다가 눈앞에서 우리 자식들이 제압당하는 걸 보고
오늘 또 나오셨답니다.
저~ 앞에서 시위를 하는 청년들을 지켜보며,
아.. 우리 자식들이 저렇게들 하는데 경찰들 정말 너무하네.. 하시며
걱정어린 눈빛을 보이시더군요. 그러더니
나와 함께 서있던 양복맨들을 향해 한마디 하십니다.

"우리 늙은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여기 젊은이들.. 자네들이 수고좀 해줘"
 
양복맨들은 걱정입니다. 날씨가 쌀쌀한데 할아버지가 감기에 걸리시면 어쩌나..
오늘 저녁부터 나오셨다는데 다리아프시면 어쩌나..
돗자리 재질로 된 방석을 급구하여 할아버지께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괜찮으시답니다. 이것쯤이야.. 하시며

할아버지는 거리로 나온 젊은이들이 너무 고맙다 하십니다.
그것을 듣던 양복맨 1은 '처음에 나와준 우리 여중생 들이 고맙지요'
옆에있던 양복맨 2는 '지금 열심히 싸워주는 대학생들이 고맙지요' 하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빨간모자 할아버지의 등장은 그중에서도 하일라이트였습니다.
나에겐 그분도 할아버지인데,  중절모 할아버지께 나이를 여쭙더니
대뜸 "아이고 아버님" 하며 손을 덥썩 잡습니다.
그리고는 몇초 지나지 않아 그 자리는 정치 토론의 장이 되었습니다.
빨간모자 할아버지는 술을 드셨는지, 혀가 꼬부러진 목소리로 이야기 하셨지만
모두들 그 이야기에 대해 때론 공감하고 때론 반박합니다.
60, 70대 할아버지와, 30,40대 양복맨 그리고 옵저버 처럼 서서 경청하는 20대의 내가 함께 있습니다.


촛불시위? 내가 이것에 찬성인지 반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쿵이 항상 그래왔듯이 시위현장에 있어도 회색분자같은 성향은 버릴수 없네요.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 막 공감을 하다가도, 문득 시위를 통해 내가 얻으려는게 뭐지? 하는
기초적인 질문에 부딫히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의 촛불시위는 뚜렷하고도 현실적인 목표가 없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왠지,
나의 비비다이나믹 붕붕이는 정말 빨간구두를 신은것 처럼
자주 나를 이곳에 내려놓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심하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안가지던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문화기획자로서는, 온오프라인의 무차별 참여형 문화기획에 KO당한 기분을 설명하고 싶었고.
조금더 나는 적극적으로 이 축제를 즐기고 공부하고 싶어요.

정말 이렇게 철저한 개인적인 이유때문에라도.
비비다이나믹 붕붕이가 신은 빨간 구두를 억지로 벗기고 싶진 않네요.


* 지금 24시간 탐앤탐스에서 맥북켜놓고 된장녀 놀이 하고있습니다.
이밤중에도 사람이 많네요. 이따 새벽 5시 부터 신호등 시위 할거랍니다.
아놔 전 할일이 많아 참여를 못할듯 ^^
유료주차장 직원 출근하기 전에 붕붕이 빼야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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