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열심히 할것

광장사수가 모든것을 해결해 줄것이라는 것에 동감하지 않는다.

'촌스러워서 살수가 없다'라는 한줄선언문을 보고 정말 공감하였는데

그것은 엠비 뿐 아니라 요즘 물만난 민주당 의원들에게 더 하고싶은 말이었다.

그리고 나를 '나름 진보' 혹은 '노란색'으로 규정하고서

조심스럽게 오늘 시청에 가냐고 물어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기도.



그런면에서 블로그 시국선언이나 작가선언은

호들갑 스럽지 않지만, 간만에 촌스럽지 않은 운동이어서 좋았다.


깨어있다면, 당신이 서있는 그곳이 광장이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사람이 이념이다.'

이런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광장이다.

 

 

6·9 작가선언_ 188인의 한 줄 선언 全文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인권이 존중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땅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 강경희

이곳은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니다. 우리는 장님이 아니다. 우리는 보고 느끼고 표현할 것이다. - 강성은

각자 흘린 눈물이 같은 맛을 낼 때, 분노는 만인의 양식! - 강정

살아 있었구나, 너희 6월의 불씨들이여! - 강진

반성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말은 오물이 되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허깨비가 된다. - 고나리

활짝 핀 민주주의 꽃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어라! - 고명철

이제 우리에게 금지된 것을 요구해야 한다. - 고봉준

국민을 잠재적 폭도로 여기는 정권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 고인환

우리에겐 마감의 힘이 잇다. 너희의 마감을 보고야 말겠다. - 고찬규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 - 곽은영

눈먼 망나니 제 칼에 죽는다. - 구효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 기어이 너희들의 최후를 보고야 말리라! - 권온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아서, 숨쉴 수 없게 된 후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앗습니다. - 권혁웅

절명으로 살아나는 연두! 연두! 연두! 함부로 파묻지 마라, 봄눈(目), 따뜻한 심장 - 권현형

모든 버려진 약속과 빛바랜 희망을 위해 병문안 가는 길입니다. 조심하세요, 우리의 병문안은 지금 너무 뜨겁습니다. - 권희철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고, 패배는 당신들의 것입니다. - 김경인

사람이 말하는 자유를 믿지 않기 위해 나는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 김경주

새가 쫓겨난 광장에 피 묻은 돌이 날아듭니다. - 김경후

눈 닫고 귀 막고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로 너희가 내 말의 피와 살을 발린대도, 끝끝내 사람이고자, 펄펄 뛰는 사람의 말이고자, - 김근

이 세상의 어떤 광물로 벽을 쌓더라도 깊이 흐르는 것들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 김나영

우리의 혀를 자르면, 우리는 목을 내밀 것이다. - 김남극

문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경제발전 운운하는 거창한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 아래 억압된 정직한 욕망이다. - 김남혁

아가리를 벌린 악의 상처들을 이 문장으로 기워가리라. - 김대성

불법 폭력이 문제라고? 맞다. 늘 그게 문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렇게 두들겨 맞아 시퍼렇게 멍들고 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 김명기

마감을 늦춰달라고 해야겠다. 거리로 나가느라 글 쓸 시간이 없다. - 김미월

장벽이 높아질수록 모일 것입니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목소리들이 만나는 순간의 파열음입니다. - 김미정(평론가)

나는 정치를 모른다. 다만 치정의 끝을 알 뿐. 그리하여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 되돌려놓자는 얘기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그 처음으로, 아름다움으로, 진실로! - 김민정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백 살까지 살아남겠다. - 김사과

귓구멍 막힌 사오정의 후ㅖ들이여, 작가들의 송곳을 감사히 받으라! - 김산

이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어두운 밤을 쫓는 노래, 무덤 속의 당신들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 김선재

권력의 상상력이 상식을 구금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상상력은 너희를 포위할 것이다. - 김성중

당신이 도대체 사람입니까? 스스로에게 던져오던 이 질문을 비로소 세상에 내놓습니다. - 김소연

봉쇄되어 말과 의미를 속박한 광장은 백지이다. 그 백지 위로 나는 미래를 쓸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으로. - 김안

이날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 김양선

거짓된 빛의 세계, 새는 깃 속 어둠으로 난다. - 김애란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자꾸 하게 해줘서 고맙다. 이 고마움을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인간이라면. - 김언

이제 더는 하소연할 길조차 없는 억울한 사람들을 때리지 마라. - 김연수

나는, 부끄러운 손으로, 내 삶의 길들여진 부위만을 잘라, 쥐불 놓는다 - 김요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김윤환

열사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 우리의 목소리를 퍼뜨리겠다. - 김이강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싸늘하게 스러진 그 대신에 이제 내가 뜨거워질 차례다. - 김이은

텅 빈 백지를 슬픔과 분노로 가득 채운다. - 김이정

누구나 어리석은 당나귀를 원하진 않는다 - 김자흔

자유와 민주만이 너희를 평안케 하리니, 더 이상 폭력의 벽을 쌓지 말라. - 김재영

잘못 뽑아 개고생, 평생 두고 후회한다! 잠깐 실수 후회 말고, 미리 살펴 재난 막자! - 김정남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부끄러운 오늘을. 김정란(소설가)

여기에 멈숴선 절망의 발자국들을 보아라. - 김지녀

침묵이 암묵적 동의가 되지 않는 사회를 위하여, 무거운 입을 연다. - 김지선

오랜 전 노무현이라는 이름 위에 내 꿈을 얹어놓은 적이 있다 - 남상순

나를 잠들 수 없게 하는구나, 위기의 시대여. - 맹문재

무능한 정권, 썩은 검찰, 역겨운 언론-적출대상 3종세트. 아차, 나도 문제야. - 명지현

밥상도, 민주주의의 원탁도, 다 엎은 자여 이제는 당신이 고꾸라질 때 - 문동만

컨테이너 요새의 몰이꾼, 간 데 없는 표적을 향한 저격수의 총구에도, 어쩌면 담자을 넘어 파고드는 6월의 덩굴장미, 그 붉은 덩굴손! - 문혜진

우리야말로 故人이었으되, 당신의 죽음이 우리를 살렸으니 우리의 삶은 당신을 살려내리라. - 박대현

이명박 정권은 문화와 민주를 파괴하는 광기의 야만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물러가라. - 박민규(시인)

정책이 비문(非文)이다. 언론의 맞춤법은 작위적이고, 미친개들은 국민에게 오타를 남발한다. 당신들의 언어는 번역이 안 된다. 암울한 시국의 문장을 견딜 수 없다. 오래된 생각이다. - 박상

나는 분노한다. 국가가 없을 때 당할 고통을 국가 때문에 당한다는 것에. 나는 비참하다. 그 국가를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 박상수

더 이상 갉아먹지 마라. 쥐는 벽을 잊어도 갉아먹힌 벽은 쥐를 잊지 못하는 법이다. - 박성원

"내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당신의 자리가 권력 아닐 때까지, 시인의 노래가 황홀해 질 때까지. - 박수연

미숙하고 서투른 나 차가운 광장에서 서성거린다, 희망을 위해 - 박슬기

당신이 낸 구명들이 모여 깊고 거대한, 결코 감길 수 없는 눈이 될 것입니다. - 박시하

피리 부는 사나이여 이 쥐떼를 다 데려가, 우리에게 노래를 허락하길 - 박연준

너를 인정한다. 거절의 대상으로, 동정의 대상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만나야 한다. - 박정석

부끄러워, 돌멩이와 꽃을 움켜쥡니다. - 박창범

오늘 침묵하는 자는 영원히 침묵할 것이다. - 박형서

우 리는 굴복하지 않는 시와 인내심이 있는 과학을, 투쟁하는 사랑과 사려깊은 정치의 씨앗을 심는다, 시장의 수사와 독재의 법전, 관료의 행정이 땅과 물길을 파헤치기로 손잡은 폐허 아래, 삶을 목숨으로 만들기로 합의한 심연 위에. - 복도훈

너를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여! - 박형숙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벼랑에 머리를 부딪히며 새날의 아침을 시작하는 뜨거운 죽음을 보아라, 상처가 길을 낸다 민주주의여. - 박형준

저기, 지나가는 사람들, 이제 함께 갑시다 - 박혜상

우리가 죽인 민주주의, 우리가 되살린다! - 방현희

어떤 두려움도 없이 뒷걸음질치는 봄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 배영옥

작별을 고함. 그대의 말, 치욕과 모욕의 반복이여! 복수를 고함! 우리의 말, 두 손 가득한 진실과 정의로부터 - 백가흠

자유와 민주, 한때 가졌다고 믿었던 것이 한 번도 없었떤 일이 될 수는 없기에. -백지은

폭풍전야, 이제 항쟁은 시작되었다 - 서성란

눈 감고 귀 막아 과거로 얼굴을 돌린 자여, 들리는가! 어둠을 걷어내는 뜨거운 목소리가! - 서안나

그 귀 진실이 뚫을지니, 잘 가라 비명이여! - 서영식

우리 지금 마감하러 간다. 마침표 찍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걸? - 서영인

겁주고 피한다고 망각될 시간들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외침, 거대한 알람소리가 된다. - 서효인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정부가 아니다. 이제, 신념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로 긴 싸움의 선언을 적는다. - 서희원

들쥐들의 교묘한 협잡 더는 못 참겠어 울화의 향불이 지글지글 타올라 가만 못 있겠어 - 성기완

근조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둔 시인의 슬픈 격문을 이 한 줄에 담는다. 누구도 더는 죽이지 마라. - 손세실리아

우리의 영혼이 고통스러운 건 민주주의가 우리의 본성인 까닭입니다. - 손홍규

이제 죽음이 아닌 삶으로, 촛불이 아닌 횃불로 싸우기를. - 송경아

기록 : 망각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민주의 죽음이 선고된 날(07.12.19) - 송기영

아름다움과 반성, 내 언어의 피스톤을 작동시키는 힘의 원천, 민주주의 - 송승환

광장을 열차로 하자. 열차를 문으로 하자. 문(門)으로 욕망의 입을 열자. - 송종원

술 마시고 깨어보니 역사를 몽땅 훔쳐가버렸네. 일어낮, 친구야. 도둑 잡으러 가야지! - 신용목

공기 속에서 온통 비린내가 납니다. 없는 문이라면 그려서라도 열어젖혀야겠습니다. - 신해욱

그 누가 내 사랑을 파괴하면 그가 신이어도 나는 그를 파괴할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애인이다 - 신형철

괴물들이 주인인 시대여, 얼마나 더 끔찍한 결말을 바라는가. - 신혜진

우리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다. 오늘은 그 중 하나만 보여주마. 그리고 내일 또 하나.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 심보선

이 시대에 다시 찾아온 어둠이여, 골방을 밝히고 글을 쓰던 촛불을 들고 다시 거리로 나서게 한, 기필코 하나둘 지워질 살찐 어둠이여. - 안상학

우리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유롭고, 자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다. - 양윤의

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 양진오

소통을 바라는 것은 헛된 소망이 아니므로. - 여태천

언어의 속삭임이 시작됐다. 민주주의는 침묵을 뒤집고 의연히 흐르리라. - 오창은

사람의 마을에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 곳에도 사람이 지나갑니까? - 우대식

쓰고 말하고 행동하겠다. 우리의 이름이 비루해지지 않도록. - 원종국
문학은 불온한 산소, 기어이. - 원종찬

세상 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말은, - 유용주

민주주의 뇌, 더 이상 손상시킬 수 없다 - 유정이

푸르게 날이 선 6월의 잎사귀로 썩어버린 심장을 찌릅니다. 굿 바리 MB. - 유형진

뱀의 눈으로 읽으라, 나는지금 희극과 비극을 쓴다. - 유홍준

저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후진 이야기. 어던 작가도 생각하지 않는 플롯. -윤성희

한 손엔 곤봉 한 손엔 삽, 머리엔 떡찰 가슴엔 악법, 썩은 입술로 산자를 물어뜯는 괴물, 누가 광장에 MonsterB를 풀어놨는가! - 윤예영

사랑이나 꿈 때문에 절망해볼 권리를 달라. 돈 때문이 아니라. - 윤이형

이 한 줄은 내 눈엣가시가 되어 바로 보게 하고, 내 입엣가시가 되어 침묵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 윤지영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그 꿈까지 허공에 던질 수는 없습니다. - 이경재

보라, 우리에겐 밤을 뚫는 천 개의 눈동자가 있다. - 이기성

이제 내 모든 주어와 동사는 광장에서 씌어질 것이고, 광장에서 교정될 것이다. - 이기호

그의 서재에 떨어져 뒹구는 혁명의 금빛 단추 하나를 나는 몰래 주워 가졌소. - 이덕규

민주주의는 중심의 옹호가 아니라 중심의 괴로움을 사유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 이도연

시민은 폭도가 아니다. 단지(斷指), 민주주의일 뿐이다. - 이동욱

하느님, 우리가 이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하여, 총명하고 선량한 제 딸아이가 감옥 갈 활률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만교

이 미래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속적으로! - 이문재

광장의 벽에 부딪혀 새들은 추락했다. 우리는 검은 합창을 시작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불멸의 전염병이 될 것이다. - 이민하

꽃잎처럼 동동 떠다니는 서러운 얼굴, 아 민주주의여! - 이상섭

이 말이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역사는 이 말에 이르지 못했으나 단 한 번도 우리는 폐기한 적 없으니, 더 이상 짓밟지 마라! 우리 가슴에 새긴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 - 이선우

그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고요한 정권이 무너져내렸다. 입 있는 자여, 이제 말하자. - 이성미

작가의 지성과 상상력으로 우리, 민주주의를 만들어갑시다. 다시, 민주주의여 만세! 사랑이여 만세! - 이성혁

이보다 더 무자비한 정권은 있었지만 이보다 더 비열한 정권은 없었다. 얼만 더 많은 목숨을 벼랑으로 몰아야 당신의 국정이 완수되는가? 이제 그만 물러나길... - 이순원

2009년 6월, 무엇이 그를 우리들의 가슴에 불러모으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모습을 잃지 않은 민주주의다. - 이시영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를 창조한다. - 이신조

내 이웃이 헌법적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모멸을 삼키며 죽어갈 때, 나는 어디에 있었나? - 이안

죽은 것들이, 죽지 않는다. 여전히 농성 중이고 투신 중이고 신음 중이다. 나는 울고 일어나, 귀신들과 더불어. - 이영광

너희가 모든 것을 무너뜨려도 끝까지 남아 있는 하나, 선연한 피의 말-자유! - 이영주

막음이 없고, 막힘이 없는 곳. 그곳이 구름 위가 아니라 이 지상이기를. 저 헐벗은 창문들과 함께 원한다. - 이용임

역사는 뼈보다 희고 무겁다. 나는 이미 가벼워졌다. 너도 필히 가루가 될 것이다. - 이용현

결국, 우리의 모든 말들이 '씨'가 되리라. - 이은림

죽은 이들의 뒷모습으로 우리는 수많은 정면을 이루기로 하자. 무수하고 다양하게, 거대한 하나의 얼굴로. - 이장욱

아직도 자유는, 아름답지만 피흘리는 5월의 신부. 닫힌 광장에서 구출해야겠습니다. - 이진희

몸이 아프다. 저 먼 곳, 부엉이바위로부터 우리들의 명치 끝으로. - 이찬(평론가)

너무 어둡지 않은가? 너무 비좁지 않은가? 너무 희박하지 않은가? - 이현승

너 어쩌자고 그렇게 사는가? - 이현우(로쟈)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권력자들을 잠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피에르 신부. 목소리, 목소리여...... - 이혜경

가도 가도 끝없는 무덤 속이다. 스스로 구원하리라. - 이혜미

말과 글, 표현의 무덤을 지켜볼 수 없다! - 임수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꿀 권리조차 짓밟아버리는 비정한 권력이여, 인간을 저버리고 물신을 숭배한 너의 야만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임영봉

나의 꿈은 분노 없이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러나 오늘은 분노의 촛불을 켜기로 합니다. - 임지연

모퉁이를 도니 꽃은 떨어져서 피어나고, 모두 눈을 뜨고 있습니다. - 장무령

그대들의 야욕과 폭력, 간교에 분노한다. 이 분노는 함성이 되어 자유의 광장에 울려퍼질 것이다. - 전도현

저 우악스런 권력의 발악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무력함의 격렬한 표현일 뿐이다! - 전성욱

시인이 깨어 있으면 독재자는 잠들지 못한다. - 전성태

구멍이다. 그 구멍 뚫고 자유와 인권이 그대의 동공에 선 피로 맺히리라. - 전형철

쎄스코에 전화하기 전에, 냉큼 물러가라! - 정여울

시대적 박약아들에게 우리의 문장이 약이 될 것이다. - 정영효

저 시퍼렇게 일렁이는 슬픔의 연대를 보라, 총칼보다도 강하다. - 정우영

이성은 행동하지 않는다. 너의 울고 있는 말들을 보여줘. - 정은경

청계천을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살아 있는 물이 아니다. 이대로 모두가 유령이 될 수 없다. - 정주아

우리에게 영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이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죽음의 위혐과 싸울 것이다. - 정한아(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정신. 우리의 말은 솟구치고 터져서 광장에 스밀 것이다. - 정혜경

한밤중 정동까지 이어진 말없는 행렬을 지나며 느꼈던 부끄러움, 오래 기억하고 싶다. - 정홍수

꿈이 흐려진 자리에는 언제나 미래의 얼굴이 나타난다. - 조강석

부끄러움을 관통한 아픔이 선연히 떠오르는, 치욕의 날들이다.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순간이다. - 조동범

우리, 끝내 이기리라. - 조성면

꿈마저 빼앗긴 절망만큼 아픈 것은 없습니다. 아픔을 모르는 자들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 조연정

나는 의문이 죄가 되지 않는 고요한 세계를 원한다. - 조연호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이정표를 우리가 다시 일으켜세워야 합니다. - 조용숙

나는 동료들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비천한 권력을 멸시한다"고, 사랑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 조원규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몸도 영혼도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 10:28) - 조윤

시인, 모국어라는 지우개로 독재라는 오자를 지운다 - 조정

우리의 문장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 조해진

악이여, 혁명이 우리와 너희를 자우케 하리라. - 조형래

들을 귀 없는 권력자여, 이 성경 구절을 기억하는가?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민수기 14:1) - 조효원

너희들이 뽑아낸 머리카락들의 무덤을 보아라. 여기 스스르 살아 움직이는 무덤을. - 주영중

우리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진실을 만드세요, 하느님. 그녀와 손잡고 거리로 나가겠습니다. - 진은영

사과는 필요없다. 약속은 이미 깨어졌으니. 이 슬픔을 흐르게 하라, 다른 세상이 그 안에 고여 있으니. - 차미령

사람 사는 세상과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너! 네 무덤까지 쫓아가 침을 뱉으리라. - 채은

뱉지 않고 삼키지요, 뜨거운 이 불덩이. 벌거숭이 이 마음엔 부엉이 붉은 울음소리가 날지요. - 천운영

불미(不尾)스러운 일은 꼬리가 있는 동물에게도 일어난다. 이따금 천둥, 번개가 자네를 불미스럽게 만들 걸세. - 천수호

정치에 소질 없는 CEO가 국가폭력을 남용하니 천년왕국은커녕 곧 망하겠구나. - 최성각

결국 민주주의 이긴다. - 최진영

촛불 밝히는 손은 세상의 풍경입니다. - 최창근

해가 뜨지 않는다면 해를 그리지요. 탈색하는 피가 아닌 잉크의 푸르름으로. - 하성란

산 이름이 죽은 이름이 되고, 죽은 이름이 산 이름이 되는. 여기는 없었던 나라. 나는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 하재연

결핍과 부재의 자리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문장의 순도(純度)를 나는 믿는다 - 한세정

민주여! 사랑과 가난과 죽음의 힘으로 우리는 네게로 간다! - 한용국

권력이 권리인 줄 아는, 자본이 자유인 줄 아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돌려드립니다. 본디 저들의 것이었습니다. - 한지혜

Mad Momb 자폭해라! - 함기석

율법에 갇힌 자들, 얼굴 없는 노래에 둘러싸이게 되리. - 함돈균

인권을 말하면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를 말하면 자유가 실현되는, 지킬 건 지키는 세상을 원합니다. - 해이수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으로부터 온 목소리니, 너희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말들에 답하라. - 허병식

자유와 사랑을 원합니다. - 허윤진

촛불은 더욱 거세게, 다시 타오를 것이다! - 허정

어두운 곳 저 멀리서 소쩍 울음 들여온다. 불은 피 토해내며 제 억울함 알리는 거다. - 홍기돈

폭력과 폭력 사이로 빛나는 촛불을 본다. - 홍준희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가권력이 조폭일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결된 힘만이 이에 맞서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 황광수

우리는 당신이 지금껏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 황규관

법이 문(법)의 목을 죄고, 시민도 시인도 적이 되는 땅. "아, 입 없는 것들", 비명만이 말이 되는 땅 - 황호덕

10대 여학생, 정치에 눈뜨다
노 전대통령 분향소 찾아 자원봉사
정부 정책 토론도 남학생보다 많아
“촛불 경험공유가 정치 성숙도 높여”


한겨레 이완 기자



» '얘들아 슬퍼하지 마라!'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여고생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나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의 초반을 이끌었던 10대 여학생들이,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와 영결식 뒤 집회에도 대거 나타났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분향소를 찾기도 했고, 조문을 마친 뒤 촛불을 들고 가려는 걸 막는 경찰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양초를 나눠주는 등 자원봉사 활동도 했다. 남학생에 견줘 여학생의 모습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박찬욱 영화감독도 “분향소에 갔을 때 새벽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등굣길 여고생들이 밀려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왔다. 우리나라는 여고생들이 짊어지고 갈 나라가 아닌가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청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지난달 29일 밤 서울광장에 있던 송상현(18·고3)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순히 불쌍하다는 얘기보다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얘기를 친구들과 많이 한다”고 했다. 김하나(15·중3)양은 “중3도 사회 시간에 민주주의를 배우는데, 정치가들이 여기에 나와서 민주주의가 뭔지, 여론이 어떤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은 영결식 뒤 떨어진 쓰레기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시간째 줍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단지 슬퍼서가 아니라, 뭔가 구체적인 이유를 지니고 나온 셈이다. 지난해 촛불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을 연구한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들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지난해 촛불 집회 때만 해도 먹거리라는 이슈의 특성 때문에 나오지 않았나 할 수 있었는데, 올해도 나오는 것을 보니 이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해 가는 거 아닌가 생각된다”고 진단했다.

여학생들이 더 많이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한국은 아직도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사회인데, 아들, 특히 장자에게는 ‘좋은 학벌’을 따고 사회에서 ‘성공’하라는 가족의 압력은 훨씬 더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기에 남학생에게는 심적인 여유가 대단히 부족한 데 비해, 여학생들은 ‘학습기계’가 되라는 강요에 반기를 들 만한 여지가 더 크다”고 했다.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윤은진 교사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얘기를 해 보면 성별 차이가 조금 있다”며 “남학생들은 ‘정치는 뻔하다’며 자신을 더 경쟁력있게 만들려는 면이 강한 데 반해, 여학생들은 비판의식을 더 발전시키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결식 뒤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나온 이윤경(18·고3)양은 “남자애들은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 스포츠나 게임 얘기를 더 좋아한다. 여학생들은 점심시간 때 텔레비전을 켜 놓고 영결식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10대 여학생들이 정치적으로 급진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배은경 서울대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10대와 20대 초반 여성들은 ‘미선이 효순이 촛불 집회’ 때부터 집합적 경험을 나눠 가졌다. 또 이미 사무직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여성의 현실을 보고 있기 때문에 정치의식이 더 급진화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청소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역사적 경험’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 집회’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는 “이들이 이번에 ‘평생 투표하겠다’는 실천을 얘기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의식의 급진화보다 몸의 생활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어떻게든 지난 일주일의 생각과 감정을 남겨놓고 싶은데
글을 쓰기가 힘들다.
이름을 부를때, 어떤 감정이든 표현할 때
자꾸만 울컥 울컥

오늘 프레시안에 공감가는 두개의 글로 대신!

* * *

비극의 본질

빨갛게 색칠된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 노랗게 물든 세상에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찬물을 끼얹었다. 노랗게 변해 버린 사람들은 공산혁명을 위해 죽창을 휘두르는 과격세력이 아니라 남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예쁜 마음을 가진 청소년, 아줌마, 직장인, 일반인들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가져온 세상은 빨간 세상이 아니라 노란 세상이었고, 잔인한 무한경쟁의 세상이 아니라 서로에게 너무나 친절한 따뜻한 세상이었다.

발인과 함께 쏟아진 노란색 종이비행기, 시청앞과 광화문을 질서정연하게 메운 시민들, 촛불로 헌정된 추모의 메시지, 가슴 깊은 곳에서 쓰인 헤아릴 수 없는 메모와 광고들,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의 모임,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안타까운 눈물들, 이러한 모든 것은 친북 좌익 반미 과격 혁명세력의 모습이 아니었다.

노무현의 죽음(전달력의 극대화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보다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음을 양해 바랍니다)이 곧 기억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귤을 '슬쩍' 하는 장면. 그가 세운 정치 문화적 기준은 '한국의 표준'이 될 것이다.
그 러나 그의 죽음은 그렇게 일회적인,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무현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확실한 하나의 시각, 관점을 세운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와 지도자에 대한 기준을 세웠고, 그것은 놀랍게도 문화적 현상이 되어 버렸다.

이 점이 사실 이번 비극의 핵심이다. 일상생활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문화는 어제 생겼다 오늘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신화가 되었고, 상징이 되었고, 영웅이 되었고, 그리고 그리운 얼굴이 되었다.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다 노란색과 촛불과 "상록수"와 "사랑으로"와 함께 한 젊은이들, 그리고 예쁜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문화 속에 꽃피고 있다.

보수적인 혹자들은 걱정한다. 이 사람들이 감성에 휩쓸려 무서운 폭도로 변하고 포퓰리즘의 광풍이 불지 모른다고.

그 러나 노무현의 죽음이 만들어 낸 문화는 노란 종이비행기가 날라 다니는 예쁜, 친절한 감동의 문화다. 밤을 새서 길고 긴 조문을 기다릴 수 있는 그들을, 같이 눈물을 흘리고 공권력의 폭력에 망연자실하는 그들을 광분한 폭도로 보는 것이 과연 정확한 시각일까?

국민과 시민사회를 잠재적 폭도, 붉은 사상을 가진 잠재적 체제전복 세력으로만 본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국민은 통제의 대상이 될 뿐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과 발언이 전부 빨갛게만 보일 것이다.

당장 집권세력의 머리속에는 "검거"라는 단어만 생각날 것이다. 집권세력이 그러한 사고를 하고 있다면 이들은 민주주의 시대의 집권세력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 런데 이상한 사실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이면 폭도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기만 하면 폭군으로 변하는 것이다. 촛불은 모여서 호소하고 표현하는 힘밖에 없지만 정치인과 집권세력은 법을 바꾸고, 사람을 잡아넣고, 많은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항상 통제의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국민과 촛불이 된다.

노무현으로 흥한 자 노무현으로 망하리라

이번 집권세력(한나라당, 보수언론, 보수재벌, 권위주의 세력 등)이 가진 예리한 칼은 노무현을 잘게 잘게 베었던 바로 그 칼이었다.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시작해 노무현의 죽음 직전까지 그 칼은 위력을 꽤나 발휘했다.

노 무현이 세상을 빨갛게 만들었고, 엄청난 부패의 세상을 가져왔고,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렸고, 북한은 바로 내일 모레쯤 우리에게 미사일과 핵을 쏠 것으로 이야기 했다. 노무현은 이렇게 세상이 빨갛게 색칠되는 표현의 자유조차 용인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켰지만 결국 그러한 관용으로 인해 정권을 잃고 스스로가 난도질당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그런데 그들은 칼을 써도 너무 잔혹하게 써 버렸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잃어버리게 되는 법이다. 산 권력은 죽은 권력에 대해 계속 칼을 휘두르기만 하고, 산 권력이 그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보여주지를 못 했다. 계속 노무현을 욕보이면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는 전략 이외에는 전략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집권세력은 대한민국에서 주류와 강자에 도전한 자가 어떻게 칼을 맞는지를 보여 주었다. 역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주주의에 충실했던 대통령을 권위주의 독재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이제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돌연 그 칼이 날을 바꾸어 이제 자신을 베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노무현의 죽음이 집권세력 혹은 주류세력의 잔인함, 허구, 공포, 권위주의, 무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이 노란색 자유의 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가 꺼지지 않을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는, 그리고 여론이 살아 움직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깨달음, 즉 관점과 시각의 형성은 천지를 흔드는 지각의 변동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정치표준

집 권세력에게 노무현의 죽음은 엄청난 쓰나미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우선 이제 노무현을 난도질해 지지율을 끌어 올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무현을 한국 정치에서 지워야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노무현보다 훨씬 파괴력 있는 새로운 비전과 장점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가능성은 요원하다.

앞으로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계속 지게 되면(이길 수 있는 이유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선거의 패배는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될 것이고 정부여당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반민주 정권으로 각인될 것이다. 결국 비주류와 약자를 억압하고 죽인 반민주 정권이라는 오명과 책임이 현 정부와 여당에 유령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더 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노무현이 한국 정치에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무현이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문화로 착근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평화와 민주주의의 색깔이 노란색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친근한 사진은 계속 발굴되고 계속 떠다닐 것이다. 미국에 케네디가 있다면 한국에는 케네디와 제임스 딘을 합친 상징력을 가진 노무현이 새로 태어났다. 젊은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앞으로 계속 노무현에 열광할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한국 정치지도자의 표준(Korean Political Standard)을 만들어 냈고, 이제 그러한 표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Korean Consensus)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노무현이라는 상징은 머지않아 아시아 민주주의의 표준이 될 것이며, 그러한 'Korean Consensus'는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정치문화에 새로운 한류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흐름을 집권세력은 읽고 있을까?

민 주주의의 후퇴를 슬퍼하는 사람들은 이제 새롭게 형성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표준과 합의를 한국의 진정한 문화 속에 어떻게 녹여 넣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거기에 맞는 비전과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특권을 포기하고,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과 아픔을 나누는 지도자의 모습에 이제 정책과 비전이라는 콘텐츠를 채워 나가야 한다.

다 음 지도자는 노무현의 이미지만으로 비주류와 약자를 구원해 내질 못한다. 문제는 비전과 정책이며 그러한 비전의 세력을 결집해 내는 데 있다. 그리고 지도자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논쟁과 비판 속에서 함께 해야 한다. 그러한 논쟁과 비판 때문에 노무현이 자신을 부엉이바위에 던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다 안다.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촛불의 모임은 적자생존의 모임이 아니라 "따뜻한 자 생존"의 모임이라는 희망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노무현의 서거 이후에 나를 애타게 찾는 아이가 있었다. 이전에 하자센터에서 인문학을 같이 공부한 아이였는데 노무현이 죽고 나서 계속 눈물 바다란다. 주변 사람들이 딱해서 못 보겠다고 나보고 연락 좀 하라고 성화였다. 아이에게 간단한 문자 하나를 보냈다. '너 지금 만나면, 내가 나를 주체 못할 것 같다. 좀 지나고 보자.' 난 이 아이가 서럽게 우는 그 이유를 듣는 것이 두렵다.

후배 중에 덕수궁에 가서 절대 조문 같은 걸 안할 것 같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조문을 갔다 왔다고 한다.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자기만큼이나 그런 곳을 안 갈 것 같은 '탈정치화'된 자기 친구가 가자고 해서 갔단다. 가서 그 친구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왜 우냐고 물으니 후배 입을 틀어막으면서 '묻지 마. 그냥 슬퍼. 그냥 나 좀 슬퍼하게 해줘. 그냥 울고 싶어'라고 하더란다. 그 친구 우는 걸 보다 자기도 슬퍼져서 울었다고 한다.

친한 교수 중에 한 사람이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 시간이나 넋두리를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이 자기가 그렇게 슬퍼하는 걸 보면서 스스로 놀래서 '어머 나 어떻게 해. 나도 몰랐는데 나 '노사모'였나봐'라고 한 말이다. 물론 이 교수는 노사모가 아니다. 교수는 넋두리 하는 내내 노무현이 자기에게 이렇게 가까이 있고 자기가 그렇게 노무현에 밀착되어 있는지를 몰랐다며 스스로도 헷갈려하였다. 수업 내내 다른 대학원생들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고 한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기자가 문자를 보냈다. '아…. 이 긴 행렬은 무엇일까요. 별로 슬프지 않은 나는 진정 사이코패스인가요?' 슬프면 슬픈 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슬퍼하지 않는 대로 우리 모두가 어떤 것에 감염이라도 된 듯하다.

우린 무엇을 슬퍼하는 걸까.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사회주의자'에서부터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이토록 절절하게 애도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많은 해석들이 나왔다. 공모를 한 것 같은 죄책감부터 정부에 대한 분노까지. 잠시 질문을 바꾸어보자. 우리가 '왜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이 슬픔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로.

▲ "우린 무엇을 슬퍼하는 걸까.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사회주의자'에서부터 '자유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이토록 절절하게 애도하고 있는 것일까?" ⓒ프레시안

그의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 그리고 학생들의 하소연을 듣다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이 사람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들이 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꼬라지'이다. 지금 여기서 사는 모습의 궁상맞음과 망가짐과 팍팍함과 초라함과 강퍅함을 슬퍼하고 있는 게다.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의 비극을 보았다.

권력의 정점까지 올랐던 대통령마저도 알고 보니 '텅 빈 생명', '벌거벗은 삶'이었다. 그의 삶 전체가 조롱당하였지만 그는 무력하였다.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한 외신의 표현대로 하면 들들 볶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유서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남은 여생, 주변사람들에게 짐만 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었다. 그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최진실의 죽음에서 사람들이 본 것도 참 가진 것 많고 남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알고 보니 텅 빈 삶을 살았다는 것에서 오는 동정과 연민이었다.

산 다는 것이 위대하기는커녕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고 보잘 것 없으며 헛헛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우리는 최진실의 죽음에서 보았다. 노무현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최진실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정서와 그리 멀지 않다. 그가 가고 난 다음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점에 올랐던 최진실의 죽음에서 많은 여성들이 그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여성'의 삶의 강퍅함에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말이다. 몰락이, 죽음이, 나락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 저런 사람들마저도 삼키는 그런 나락이 우리 삶에 아가리를 떡 벌리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그 나락을 보며, 우리는 나락에 떨어져 죽은 자를 보며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락 옆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애도하고 있다. 우린 정말이지 산다는 것이 품위 없고 보잘것없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죽음이 아닌 산다는 것에 대한 애도가 있다.

왜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가. 그는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권력의 정점에서도 보여주었다. 분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전교조의 교사가 자기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공교육이 싫어서 대안학교를 보낸 학부모가 방학이면 선행 학습과 과외를 시킨다. 직장을 때려 치고 나와 카페를 차리고 공동체 운동을 하는 후배는 주식투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양심적으로 살아가며 많은 시민단체를 후원하는 친구는 들어가 살 만하면서 투자 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보러 다닌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분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분열의 빈틈에서 적당한 합리화와 죄의식이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채 우리는 살아간다.

노 무현은 권력의 정점에서 이런 분열적인 삶을 보여주었다. 진보신당의 게시판에서 한 당원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날 노무현이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지금 국민들이 저를 보고 계십니까?' 하고 말한 장면을 보고 그의 고독을 느꼈다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노무현의 분열이었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그의 영혼과 그의 통치가 분열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가인권위가 파병을 반대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런 것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을 때,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을 했을 때. 봉하로 내려가서 한 첫 번째 말이었던 '죄송하지만 참 좋다' 등. 그는 집권 내내 항상 자신의 영혼은 자신의 통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있는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비록 지금 당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하지만 나의 영혼은 당신들과 함께 있습니다.' 이것이 집권해 있을 때는 그를 변명으로 일관하는 비겁한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막상 그가 가고 나자 우리들에게 '분열적일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우리 모두의 초라하고 팍팍한 삶을 그를 통해서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통치에서 그가 자신의 영혼과 통치를 분열시키지 않았던 몇 개 안되는 정책 중의 하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는 달리 정말로 한미 FTA를 누구로부터 등 떠밀려서 한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퇴임 이후 봉하로 내려갔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의 성공을 빌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니 참 좋다'고 활짝 웃었던 것처럼 봉하에서 영혼과 삶이 일치하여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시골로 내려가더라도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죽음은 그런 통합적이고 '참 좋은 삶'이라는 것이 이 땅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절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젠장. 조선 천지에, 어디에도, 율도국 따위는 없다.

집권 기간 내내 그가 보여준 분열과 봉하에서의 짧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 그래서 그를 단지 신자유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하다. 적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그는 신자유주의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나 다른 신자유주의자와는 결정적인 점에서 하나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통치자로서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자였지만 그의 인간관은 신자유주의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관점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달랐던 것. 이것이 그의 분열의 근본이며, 죽음 전과 후에 사람들이 그에 대해 느끼는 정서의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가 그냥 신자유주의자였다면 그는 봉하로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의 비애를 그렇게 표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인간관은 참 뜨거웠다.

그래서 그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은 정치를 하는 동안에도 늘 실패하는 정치인으로 비극적이었고, 대통령이 되어 통치를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영혼과 대통령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이 분열되었던 비극적인 사람이었고(으로 이제는 기억되고 있으며), 그 좋다던 봉하로 내려와서도 결국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우린 그의 삶에서 비극을 본다. 그리고 그 비극은 남의 비극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워져 있는 우리들의 삶이다. 우리는 그의 비극에서 우리의 삶과 운명을 보았으며 그 비극에 감응되어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그런데 우리가 애도하는 것이 우리 삶의 비극이라면 나쁘지 않다. 충분히 울고 난 다음, 비로소 우리는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작을 시작해볼 수 있는 용을 써볼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충분히 슬퍼하자. 그의 죽음뿐만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워진 우리들의 운명과 삶을. 충분히 울고 난 후에야 우리는 사람 하나 자르고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끝낼 수 없는 노무현을 넘어 이 삶의 분열과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니.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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