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곳은 간판이 다 꽃집이었다가 장의사로 바뀐거야?'

벌교 읍내를 거닐다가
누군가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것을 듣고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한 거리에 4개 정도의 큰 가게가 있었는데
그 중 세개는 원래 간판은 꽃집, 지금의 간판은 장의사
그 중 하나는 원래 간판은 꽃집, 지금은 건강원

시골에서 꽃이 가장 많이 필요할때가 장례식때 국화여서 그런가부지
라고 은희언니 말대로 생각을 해도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이것이 고령화의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실제로 시골로 갈수록 병원은 없고
개별 장례식장만 덩그러니 덩그러니 있는데
그 느낌과도 비슷했다.

꽃집의 간판을 장의사의 간판으로 바꾸어야 했을때,
꽃집의 간판이 장의사의 간판으로 바뀐것을 보았을때.
주인과 주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날도, 그저 그런 일상적인 어떤 날이었겠지?

흠..



한편으로 이런생각도 들었다.

전라도에서 가장 힘쎈 남자들이 많았다는 벌교
그 힘쎈 남자들이 하나같이 로맨티스트라
이 작은 벌교 읍내에 저렇게 큰 꽃집들이 즐비했던걸까.하고 ㅋㅋ





이것은 선풍기가 아니다 _ 플라잉시티 청계천프로젝트



1970년대 선풍기 품귀현상이 났을 때 황학동으로 사람들이 몰려와서 '

선풍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버려진 모터들을 수리해서 비슷하게라도 만들어 보려했는데,

기술이 없어서 처음에는 모터를 닦거나 기름만 쳐보곤 했다.

어떤 경우에는 기름만 쳐도 고장난 모터가 돌아갔다.

어디에 어느정도 기름을 치면 되나 연구해 보다가 모터를 수리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거기에 프로펠러도 붙이고, 틀과 다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이것 저것 만들어 붙여보니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얼기설기 디자인된 그 기계덕에 여름마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런던 어느 날 경찰서에 붙잡혀 갔다.

심문의 요지는 "왜 허가없이 선풍기를 만들어서 파느냐"는 것이었다.

난, "이건 선풍기가 아니다. 이게 선풍기처럼 보이나? 내가 만든것은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일 뿐이다.

나한테 벌을 줘야 할 게 아니라 선풍기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체상품을 만들어 줬으니

상을 줘야하지 않느냐" 하고서는 풀려났다.


_ 전용석. 도시담론의 변화와 공공미술의 가능성_플라잉시티의 청계천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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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의 역사문화유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경제 개발 이래 청계천지역의 생활사에 주목해 왔다는 플라잉시티.

공감 백배.


최근에 읽은 뜻밖의 한국사와 비슷한 느낌.


한국사와 세계사를 줄줄이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사학자가 아닌 문화기획자의 입장에서 역사교육과정을 만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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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시장, 팔달문시장 일대를 둘러보다보면,
‘폐업직전, 마지막 세일’ 분위기가 나서 조금은 씁쓸 합니다.

한때 수원, 용인, 화성등 각지에서 상인과 소비자들이 몰려들어
수원의 경제를 주름잡았다던 수원 팔달문 일대 시장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그저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저는 궁금해 졌습니다.
그렇게 크던 시장이 어쩌면 이렇게 까지 쇠퇴했을까...
신문기사에서 자주보던 것과 같이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이 쇠퇴한다’라는 논리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가슴에 물음표를 품고 시장 구석 구석을 둘러보던 차에,
팔달문 일대 시장에서만 24년을 장사한 한 상인을 만났습니다.
지동시장에서 부터 못골까지, 옷장사에서 부터 튀김장사까지.
이 일대 시장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하신 입담 좋은 사장님.

슬쩍 가슴에 품은 물음표를 꺼내보았습니다.
“아저씨, 그렇게 잘되던 시장이 이렇게 쇠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물으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20년 전만해도, 천변을 따라 리어카를 몰고 난전을 차린 상인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난전을 펼친 상인들과,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로 길거리가 아주 복작 복작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언젠가 시에서 시장 정비를 한답시고 난전들을 다 쫒아내더랍니다. 그런데 왠걸,
그때부터 슬금슬금 시장이 쇠퇴하는 움직임이 있더라던 것이죠.

아저씨는 그 시절 생각에 푹 빠지셨는지, 눈을 지긋이 감으며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시장은 사람들 살갖이 부대끼는게 맛이여. 그런데 그게 없어져 버렸으니, 뭔 맛이 있것어?
사실 시장 상인들도 속으로는 난전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들 했을꺼야 아마”



불현듯, 드라마 ‘이산’의 한장면이 스쳐갑니다.
금난전권을 폐지하려던 정조 이산의 날카로운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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