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장 중에 아직까지 구렁이와 함께인 약장수가 출근하는 유일한 시장인 모란시장. 오늘은 어떤 새로운 물건이 나왔나. 싶어 구경하러 나왔다가 친구랑 지지미 한 장에 소주한잔 걸치고 돌아가는 황학동 벼룩시장, 어떤 날은 옆 마을로 시집간 순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운 좋은날은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며 재미삼아 친 고스톱에 한 밑천 벌어가는 재미가 있는 벌교와 서천의 장날.

 이제 갓 열 두살이 된 나의 막둥이 동생은 시장이 냄새가 난다고 싫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는 여전히 둘도 없는 놀이터인 시장.

 모란시장에 방문했을 때, 다른 시장과는 달리,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 때문인지 약장수 때문인지 보양식이 많은 시장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을 찾은 아저씨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서 좋았다. 신문에서는 우리나라 40-50대 남성이 갈 곳을 잃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마트에서 카트 끌어주는 남자’가 좋은 남편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요즘 같은 때에 시장 곳곳에서 싱글벙글한 표정의 아저씨들을 마주하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반가운 사람과 마주치고, 술 한잔에 내 이야기 슬쩍 뱉어보는 오감충족의 장.



 만약 당신이 강화 풍물시장에 방문한다면, 꼭 한번 상인들이 앉아있는 ‘의자’들을 관찰해보길 권한다. 원래부터 용도가 의자인 것이 간혹 있기도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얼마나 수많은 물건들이 의자의 용도로 변신할 수 있는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버려진 스티로폼덩어리가 시장에서는 그럴듯한 벤치가 되어있는가 하면, 빨간색 고무 대야가 거꾸로 놓여 의자가 되기도 한다. 짐 보따리를 싣는 캐리어가 의자로 탈바꿈되기도 하는데 그게 참 재미있다. 같은 모양의 캐리어도 취향과 기호에 따라 다양한 창작물로 변하는데, 어떤 캐리어는 그 자체가 누군가의 의자가 되고, 어떤 것은 이불을 싸여 소파가 되고 어떤 것은 두개가 엮어 긴 의자가 되어 있다.
시장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아이디어 열전. '풉'하고 웃음이 튀어나오는 소소하고 유쾌한 상인들의 크리에이티브!

* 여름이면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씨디 혹은 비닐장갑으로 만들어진 모기퇴치도구나, 부산자갈치 시장 상인들이 애용하는 ‘스티로폼 박스 금고’ 또한 나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아이디어들! 



 
강화도 초입에 있는 풍물시장은 상시 장이기도 하면서, 5일마다 커다란 장이 서는 정기 장이기도 하다. 장날이 되면, 어디에서들 그렇게 나오신 것인지 셀 수도 없이 많은 할머니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시장으로 나오신다. 꼬장꼬장한 비닐봉지 안에든 서리태, 얼룩덜룩 보자기 속의 메주 한 덩어리. 솔직히 할머니들이 펼쳐놓은 보따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과연 저것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그 보따리들을 하나 하나 유심히 보다 보니 참 재미있다. ‘말린 호박과 가지를 팔러 온 저 할머니네 집 앞마당에는 각종 채소들이 배를 까고 일광욕을 하고 있겠구나, 메주 두덩어리를 내 놓은 저 할머니는 어젯밤 저 메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잠이 드셨을까....’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이 아마추어 아티스트들과 디자이너가 그동안 공들여서 만든 자신의 작품들을 펼쳐놓는 전시장이라면, 강화5일장은 할머니들의 일상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간 소일거리를 한 결과물들, 당신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전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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