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공지영 (한겨레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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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책말에 가려고 홍대로 달리는 차 안에서 19살 겨울의 기억이 났다.

한 친구가 내 가방속의 책을 보고
"난 한국의 여자작가들이 쓰는 책이 정말 싫어"라고 이야기 했었고,
나는 그 순간 기분이 정말 나빴지만 아무런 대꾸를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흑석동에서 상도동을 넘는 그 언덕을 오르는 내내
분해서 울었다. 갑자기 그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한국 여자 작가들의 글을 읽지 않았다는것도
새삼 생각이 났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었는데..

새해 선물로 친구한테 공지영이 쓴 응원을 받은이후로 계속
공지영이나 김형경 등의 작가가 쓴 글을 찾아서 봤다.
최재봉 기자가 프로그램 앞부분에서 계속 이야기 했듯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어서 였달까. (그것이 그녀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쨋든 몇미터 앞에서 공지영작가와 마주했을때
나는 어쩌면 그녀의 글에 '고마워서' 이곳에 온건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끝나고,
전투적으로 소주에 조개구이를 먹으며 동료들과 오늘을 소회를 나누고서
남산 언덕을 넘어 집에 거의 다 다다랐을때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아.그녀도 나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구나, 그래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는구나'


곧 사위를 보게 될지 모르겠다는 그녀나
곧 결혼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나나

공감이 되는 감성, 비슷한 종류의 감정,
깨졌다가 깨닫다가
그렇게 계속 자라고 있는 거구나.





다음은 특히나 인상깊었던 이야기들

- 솔직함. 가볍게, 지나가는 말처럼
- 상처에 지지 않는 우리 나름의 길이 있다.
- ‘나는 너의 지적을 사양하겠어, 너와 나는 다르니까’
-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매순간 구분하라
- 가족은 유달리 사랑하는 남
- 엄마가 너무 많은 해답을 말해주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지 못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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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서적 보살핌이 결핌된 아이에게 '좋은엄마'의 환상이 생기고, 성장하면서 그 환상은 어딘가에 부자 부모가 있을거라는 식의 현실 부정으로 변형된다고 한다. 사춘기가 되면 좋은 보호자가 나타나줄 거라는 환상을 담은 '키다리 아저씨'같은 하이틴 소설에 매혹된다. 그런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현실의 삶을 수용하지 못한 채 어딘가 다른곳에 다른 삶이 있을거라는 환상을 품게된다. '생은 다른 곳에'를 꿈꾸며 이상주의자나 예술가나 몽상가가 될지도 모른다.

'뻔뻔하게'를 더 깉이 이해하고 난 후 내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생의 서투름의 근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세상인식의 문제였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틀이 잘못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오류가 잦았을 것이다. 세상이 내맘 같지 않다고 서운해 할 때 바로 '내 맘'이 잘못된 환상위에 서 있었던 것임을 알게되었다.

_ 김형경, 사람풍경


   *             *             *              *              *              *              *              *              *              *              *             
공지영의 산문집은 밝고 따뜻한 느낌이라면
김형경의 에세이는 따끔따끔 아프고 훅 하고 뜨겁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살것, 제대로 난 길, 안쿵쿵 리듬타는 아이.
'지금 이자리', '지금 이순간'을 항상 100%로 느끼기를 기대하고 희망하고 이야기 해왔는데
언젠가 부터 그러고 있지 못한 나 자신이 답답했었다.

글을 읽다가,
요즘 내가 느끼는 불만과 좌절이 어쩌면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세상인식 때문인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후련한 맘이었다.

얼마전에 회사 경영진에게 이런말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이회사가 내겐 내 생에 첫 회사라 비교대상이 없는 것이 힘들다고.
결핍된 아이가 어딘가에는 좋은 부모가 있을거라고 환상을 가지는 것처럼
나는 조금만 힘들거나 잘못되어간다 생각하면 어딘가 이상적인 시스템이 존재할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곤 했었다.

'지금 이 곳', '지금 이 시간'
안쿵쿵 답게 무한 적응력을 발휘해야할텐데.. ^^

어쩌면 안쿵쿵의 적응력은
'지금 이곳'의 삶을 적극 수용하는 상태, 현재를 살아가는 상태에서 비롯된것이 아니었을까.
삶의 힘듬이 쌓이고 쌓여서 체한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것은 '적응력'이라는 능력을 기르려 애쓰는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마음부터가 아닐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장앞에 서서 지금 나한테 필요한 책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는 불안(알랭드보통), 바다의기별(김훈), 나는너를응원할것이다(공지영)를 끝까지 다 읽어야 겠다 생각했는데 책장속에 고이 모셔져 있는 김형경 에세이 사람풍경이 자꾸 나좀 봐주세요 하는 거였다.
(어쨋든 대체로 위로나 위안이 필요했던건가부다)  

몇개의 관심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책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분노' 파트의 텍스트를 읽으며 이 책이 왜그리도 애타게 내 눈에 띄려 했는지 알것도 같았다.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이 그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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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또 한가지 속성에는 '자기애적 분노'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태생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고 선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자기이미지가 침해당했을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화가나고, 타인이 자신의 성취에 대해 비판하면 분노하고, 타인의 사소한 지적에 대해서도 저항감을 느끼는 것이 자기애적 분노다.

자기애적 사랑처럼, 자기애적 분노에도 상대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없다. 상대방은 그 사람을 모욕하거나 그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마음이 없었음에도 자기애적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분노밖에 볼줄 모른다. 눈이나쁘거나 잠시 딴생각에 팔려 친구를 못보고 지나치게 되면 그친구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전화메시지에 응답이 없거나 전화가 연결되지 않을때에도 상대방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사업상의 거절에 대해서도 마치 자기 존재 전체를 거절당한듯한 분노를 느낀다. 심지어 상대가 주겠다고 약속한 바 없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근거없이 기대했다가 그것이 오지않는다고 분노하기도 한다.



*
틱낫한 스님의 <화>에는 신경증적 분노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다. 아기때 엄마에게 표출하지 못한 분노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그 감정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속 분노를 내면으로 억눌러 감춘다. 그렇게 억압된 분노는 어떤식으로든 간접적으로 표출되면서 그사람의 삶을 공격한다.

자기일을 미루거나 매사에 소극적으로 행동하기, 사람들을 피해 혼자있기, 타인과 세상을 의심하기,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침묵속에 앉아있기, 높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많이 하기, 습관적으로 불평불만 늘어놓기,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이야기하기, 타인의 말에 말꼬리 달기... 이런것이 분노가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의존성, 자기희생, 속임수, 자기파괴적 행동도 억압된 분노와 관계가 있다. 무엇보다 분노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표출되어 친밀한 관계를 그르치고 생을 퇴행시키는 원인이 된다. 분노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내면화 될 때에는 자살로 나타난다.

심리학자인 게일 로즐리나와 마크 워든이 함께 쓴 <차라리 화를 내십시오>라는 책에는 이런구절이 있다.
"혹시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려깊고, 헌신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감성적인 그런사람이 있는가? 충직하고 성실하며 항상 믿을 수 있는 그런사람말이다. 남을 위할 줄 알고 모든것을 이해하며 이웃과 무엇이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 말이다"
이대목을 읽고 나는 많이 놀랐다. 그 모습은 정신분석을 받기 전까지 내가 그렇게 살고자 꿈꾸면서 실천하던 이상으로서의 인간형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는 그런 순교자와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내면에 분노가 억압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이들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긋한 삶을 산다고 했다.

분노는 사랑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감정이다. 평소에 어떤 부당한일 앞에서도 그다지 화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한다. 사랑이 생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듯 사랑의 뒷면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한사람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 분석치료가 역점을 두는 대목도 바로 분노를 다루는 법이다. 분노가 자신의 감정의 일부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분노의 근원을 직면하고, 분노를 자신의 의식으로 통합시켜 체험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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