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날이 장날 두번째 책인 '시장은 카페다'에 실은 글.
일곱개의 발견을 싣고 싶었는데,
그것을 실으려고 앞에 주저리 주저리 쓴 글만 담겨서 아쉬운 마음에 포스팅!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하 문전성시)이 막 시작되던 무렵, 우연히 일본의 한 엔터테인먼트 파크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꽤 유명한 한 전자게임 회사가 만든 게임 테마파크였는데, 그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이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은 최신식의 전자 기기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있는 내내 영화에서나 봐 왔던 1900년대 초의 일본 시장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꼭 시장을 연상케 하는 공간 디자인이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날 게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몇 개의 놀이기구에는 그것을 안내하고 사람들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몇 명의 스탭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흡사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베테랑 장사꾼같았다. 약장수처럼, 때로는 흥정을 하듯 그곳에 온 방문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침체된 전통시장에 예술을 덧입히거나 문화적인 프로그램을 접목함으로서 시장을 활성화 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동안, 어느 한곳에서는 옛날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사람들을 모으고 현혹하던 기술을 최신식 놀이공간의 운영에 접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시장에 예술을 덧입히지 않아도 시장이 꽤나 문화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버려진 공장, 사람이 다니지 않는 지하보도, 사라질 위기에 놓인 철재상가 등에서 문화를 접목하는 시도가 이루어 졌을 때 ‘신선하다’라고 반응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통시장과 문화가 접목된다는 소식을 접하곤 ‘그럴듯하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시장을 문화적이라 느끼는 것은 아마 아주 오랜 옛날 시장이라는 공간이 놀이꾼들과 예술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가 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 먼저냐 같은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즐거운 일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만한 프로그램들이 따라오거나 생겨나기 마련. 태국 치앙마이의 선데이 마켓은 그 사실을 어느 시장보다도 잘 보여주는 곳이다.

 태국 제 2의 수도라 불리우는 치앙마이에는 매주 일요일 마다 큰 장이 선다. 매 끼니 외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아직 농경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태국은 시장이 여전히 많이 발달한 편인데, 치앙마이의 선데이마켓은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는 이 시장을 둘러보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커다란 축제의 한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추어 밴드, 어린이 공연단, 불상 (태국은 불교국가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불상이 등장한다)등을 시장 곳곳에서 마주친다. 누가 시키지도, 무대 만드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데도, 그들은 사람들이 쉽게 모이고 주목할 만한 공간을 용케 찾아내어 그 곳에 그들만의 무대를 만든다. 두 줄지어 행진하던 한 연주단은 사람이 너무 많은 골목에 들어서자 재빨리 일렬종대로 줄을 바꾸어 서는 유연한 진행 실력도 보여준다. 치앙마이 인근지역은 수공예로 유명하기도 한데, 시장 구석구석에서 귀엽고 재미있는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게 중에는 일류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마추어 디자이너의 판매대도 있다. 중간 중간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푸드코트는 물론이고, 입·출구 근처에는 야외 마사지숍도 등장한다. 이곳의 발마사지는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인데, 긴 시간 쇼핑에 지친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비스 프로그램이라 느껴진다.

 1900년대 이전 아니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시장들도 이렇게 역동적이고 문화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쉬운 마음이 밀려온다. 아마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또한, 이 같은 아쉬움에서 우리의 전통시장이 가졌던 고유의 ‘멋 과 흥’을 살려 보자고 시작되었던 것일테지.
 
 하지만 너무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전통시장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 혹은 현대의 시장의 모습,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속에 이끌어내어 발전시킬 만한 ‘문화적인’ 요소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꽃이 되어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전성시 사업이 기존의 시장(들)에서 어떠한 ‘문화적 요소’와 이야기, 강점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완전히 새롭거나 현대적인 것을 발명해 내거나 덧붙이려 고민하는데 시간을 다 써버리기 전에.

  또한 그것이야 말로 시장의 상인들이 좋아할 만한 것, 그리고 문전성시 사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난 2년간의 문전성시 사업에서 상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았던 프로그램은 상인들이 품고 있고 있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어 준 못골 시장의 못골라디오 스타(책자발간), 다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봐 준 주문진 시장의 달력이나 수유시장의 매거진과 같은 것이었다. 상인들에게 그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을 물을 때면, 그들은 예술가나 문화기획자들이 시장에 와서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시장을 바라봐 주는 것이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어지는 페이지에, 우리 동네에 서는 화요장에서 부터 5시간 넘게 길을 헤매며 찾아간 벌교시장 까지, 그간 시장을 놀러 다니며 얻은 몇 가지 재미있는 발견을 정리해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이라고 부르는 그곳에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간 ‘새로운 트렌드’라고 여기는 것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무엇이 좋아 시장에 머물렀는가? 시장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발견했는가? 앞으로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나 하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얼마나 수많은 발견들이 멋진 문화기획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된다. 내가 가보았던 ‘시장’이라는 곳은 잠깐의 방문만으로는 도저히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곳이고 그래서 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기도 했다. 시장과 문화가 만나는 문전성시 사업이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의 활성화 만큼이나 ‘전통시장을 통한’ 참여 문화 기획자들의 감수성과 창의력 확장을 목표로 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안쿵쿵의 발견!

- 1. 생활창작마켓, 할머니들의 오일장
- 2. 시장에서 발견한 천만상상 오아시스
- 3. 어른들의 놀이터
- 4. 오픈 쿡
- 5. 리듬을 타고, 연극을 보듯 
- 6. 엄마, 체험학습은 시장에 가서해요.
- 7. ‘맞춤형’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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