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감독 정지영 (2011 / 한국)
출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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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아빠가 보러가자고 하셔서 간만에 영화데이트.
서프라이즈나 경찰청 사람들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우리아빠는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는 데서 흥미를 느끼시는 듯 보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건, 그렇지 않았건  
영화 자체의 스토리를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꽤나 몰입도 높은 영화였다.


개봉전부터 트위터에서 꽤나 이슈가 되었던 영화이기에
사실 보고 나서 울화가 치밀면 어떻게 하나 우려가 되기도 했으나
왠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가 처음 했던 생각은 
'뭐야, 어쨌든 김교수가 석궁을 들고 간거니까 잘못을 하긴 한거잖아'였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늘어놓을거라 기대했던 우리아빠의 맨 처음 감상평은
'그래 역시,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너무 자기 고집을 세우면 안돼'라는 말이어서
좀 의외이기도, 사실 좀 웃기기도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진중권 교수의 트위터 폭주가 내내 불편했다.
평범한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하지만 그가 비난해 마지않는 '대중'과는 다른 감상을 가지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라는 반복적인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의 논거로 수백페이지의 공판기록과 익명의 블로그 글들만 참고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영화를 한번이라도 봐야하는 것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 울컥 혹은 흥분하거나, 갸우뚱하며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체감하고나서 그 수도없는 '바른 말'들을 내뱉었다면
나의 이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영화같은 사건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논쟁들을 살펴보면서
'욕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보다 법 집행 절차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더 열심인듯한 김명호교수의 욕망
정지영감독에게 부러진화살이라는 책을 건넨 문성근의 욕망,

사건을 영화화 하기 위하여 사건을 참고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스토리를 구성한 감독의 욕망,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상영관이 너무 적다며 음모론을 제기한 일부 대중들의 욕망과,
같은 콘텐츠를 두고 제각각의 기준과 시각에서 영화와 현실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중들의 욕망들.
그리고 대비하여 영화의 대중 선동의 가능성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경계하는 진중권의 욕망
이 현상에 대해서 나름의 의견들을 개진하는 법조인, 정치가, 지식인, 언론인 등  많은 이들의 욕망, 욕망, 욕망.


그 욕망들은 무엇일까.
하나의 현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개인들의 욕망은 제각기 달라보인다.
개인들의 경험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제각각이므로,
특정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때 떠올리게 되는 욕망과 트라우마도 각기 다르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문제를 진단하거나 방어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렇게 논쟁적이지는 않을 것인데,
유독 이 부러진 화살이, 그것도 이 시점에서 논쟁적이게 된데에는
과연 어떤 욕망들이 부딪히고 얽히어 있기 때문인 것일까.
 



그런데 이밤중에 안자고 이글을 쓰는 나의 욕망은 무엇일까? 


 
 
 욕망 
①무엇을 하거나 가지고자 하는 바람. 누리고자 탐함 ②또는, 그 마음. 부족()을 느끼어 이를 채우려고 바라는 마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1 / 일본)
출연 마에다 코키,마에다 오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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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간만에 남겨보는 영화 리뷰.

무엇보다 해피엔딩을 그려내는 방식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기대하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말도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음을
너무나도 귀엽게, 그렇지만 가볍지도 않게 그려낸다.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열망하고, 그 것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열망의 대상이 바뀌기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지연하기도,
조금 더 크거나 다른 모양의 열망을 만들어내어 원래의 열망을 그 속에 슬쩍 끼워넣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열망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영화는 우리 삶에선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열망을 위해 끝없이 달려가는 그 동안에도 우리는 고민하고 성장하니까.
 

+
영화의 주인공인 두 형제가 실제로도 형제라는 사실은
영화에 숨겨진 또다른 재미.
그래 어쩐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예사롭지 않은 피부를 둘다 가진게 특이하다 싶었어! 


++
방금 알게 된 또다른 충격적 사실.
이 영화가 원래 신칸센 홍보의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고?
맙소사.
그렇다면 기차가 교차하는 순간 기적이 이루어 진다는 발상은
너무 매력적인 아이디어잖아?!
 

외로운 도시 서울로 돌아가 살 생각을 하면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집을 알아보다가는 눈물을 주룩 주룩 흘릴 뻔한 정도.
그럴 때 마다, '
공부보단 시집이 먼저' 라는 아빠 말을 들을껄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말로만이었지만, 내가 올해 '결혼'이란 화두에 유난히 집착했던 이유에대해
롤랑바르트님하께서 약 3-40여년 전에 언급하신 이야기.


...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안착한 사람들을 왜 나는 부러워 하는 걸까?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무엇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은 '꿈'이나 '목가적인 사랑' '결합'은 아닐 것이다. 안착한 사람들은 그들의 시스템에 대해 많은 불평을 하고 있고, 또 결합에의 꿈은 다른 문형을 이루기에, 아니 내가 시스템에서 환각하는 것은 아주 조촐한 것이다. (그것은 화려하지 않아 더욱 역설적이다). 나는 다만 하나의 구조( structure)를 바라고 원할 뿐이다. 물론 구조의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구조는 살만한 것이며, 바로 거기에 구조의 가장 적절한 정의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 것 속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불평할 수도 있고 지속할 수도 있다. 내가 감내하는 구조의 의미를 거부할 수도 있으며, 그 일상적인 몇몇 파편들(습관, 조그만 즐거움, 안정감, 견딜 수 있는 것들, 일시적인 긴장감)을 과히 불쾌하지 않게 통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시스템의 지속에 대해(바로 이 점이 시스템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든다) 어떤 변태적인 취향도 가질 수 있다. 다니엘 르 슬리트는 기둥 꼭대기에서도 잘 살았다. 그는 기둥으로 부터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였지만) ...

...구조들의 힘, 바로 그것이 우리가 구조에서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 롤랑바르트, 사랑의 단상 中 "모든 안착한 사람들"


아마 롤랑바르트님하가 구조주의에 심취하셨을때 쓴 글일텐데,
그렇게 치면 내가 큰 학교에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안착하고싶은 욕구'
혹은 '구조들의 힘'과 별개의 것이라고 말할 순 없는 문제인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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