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5

 

지난 6일간 전화도 문자도 인터넷도 인스타도 못하는 곳에 있다가 퇴소 후 첫 스케줄은 #hot콘서트 yay! ㅋㅋ 이를 보고 @ricovacilon 은 뭔가 군대 제대후 걸그룹 콘서트에 가는 느낌이라고 촌철살인같기도하고 그렇지않은것 같기도 한 한마디를 날렸지만, 사실 가기전의 나는 내내 별 감흥없음에 가까웠다. 

나는 뭘 하거나 좋아하게 되면 굉장히 유난스럽게 하거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그 유난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간다. 에너지를 분산하기보다 몰아쓰는 나는 새로운 것이 생기면 기존의 것들에 대한 관심이 뚝 하고 떨어지는데, H.O.T.는 나에게 그런 존재 중 하나였다. 한때 유난스럽게 좋아했으며, 언젠가 부터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던. 그렇지만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유난스러웠던지, 우리 가족들의 대화에서 여전히 hot 와 그시절의 나는 연관검색어로 치면 꽤 상위권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덕분에, #콘서트관람이라쓰고친인척모임이라읽는 사건이 성사됐다. 

콘서트 장에서 딱 두번 소름이 돋았다. 콘서트 시작 전에, 갑자기 관객들이 육성으로 에쵸티를 외치기 시작해 20여년전 어느 날의 느낌이 서라운드 파도타기로 재현된 순간이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는 #너와나 라는 노래의 전주가 나오자 조건반사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나에게 놀라서. 입에서 소오름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시절의 나는 정말 감정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했었구나. 20년 후에도 조건반사적으로 추억들이 생생하게 재현될만한 경험들이 36세의 나에겐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까. 부정적인 쪽 말고 긍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는 쪽으로. 계산하고 따지면서 좋은것도 적당히, 재미도 적당히, 다치지 않을 만큼 다가가고 좋아하는, 예측가능한 만큼의 모험과 즐거움을 누리는 지금의 나는 어떤 형태의 기억을 몸에 새기고 있는 걸까. 뭐 그런생각들을 하게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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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오래된 여름 휴가의 기억 중 하나는 외갓집 대가족이 강변에서 야영하던 일이다. 오토캠핑장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지던 강변을 마치 우리가 전세낸듯, 그 시절 운동회에서나 등장할법한 하얀 천막을 두 개씩이나 치고 잔치집에 등장할법한 큰 솥에 국을 끓여가며 이박삼일을 먹고 놀았다. 사실 어릴때라 남아있는 사진에 의존해야 기억이 완성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상하게도 이모부들이 개구리를 잡아 오던 밤의 깜깜함과, 분위기와,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이 기억이 난다. (어린맘에 충격이었던듯 ㅋㅋ) 

올해는 전기장판도 켤수 있는 오토캠핑장에서 추석모임을 하는 중이다. 그 시절 그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인이 된 동생들과, 새롭게 가족이 된 사람과 할매강아지와. 군밤장인 군고구마장인 이모부의 손놀림에 감탄하며, 간만에 식도까지 채우는 먹방을 한 밤. 내년에도 왔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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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4

 

거의 십여년 만에 방문한 광주에서 24시간 머무르는 동안 여러가지가 좋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십년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못했던 삶을 마치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살고있는 우리들의 발견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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