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짧아 붙잡아 두고싶은 스물일곱의 가을은
겨울로 넘어 갈듯 말듯을 반복하며 길게 이어졌다.
내 마음을 들킨듯

그 어느때의 가을보다 예민하게,
가을비에 젖은 낙엽처럼 나른하게,
황금빛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나무냄새를 품은 바람처럼 가볍지만 엣지있게

긴 가을, 그치만 늘 짧게만 느껴지는 가을

언젠가부터 내게 익숙한 가을의 느낌은
늘 갈색빛에, 정적이거나, 무거움 약간의 느낌이었는데

태어나서 스물일곱번째 가을을 맞고서야
가을이라는 녀석을 찬찬히 들여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거리의 풍경이
그 어떤 계절보다 다이나믹하더라.

그래서 늘 짧게 느껴졌던게 아니었을까.
단풍 시즌도, (내가 단풍 보다 더 좋아하는) 낙엽시즌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니까.

가을처럼 다채로웠던 내 스물일곱의 가을
순식간에, 그렇지만 많은 감정과 사건이 다채롭게 지나간
스물일곱의 가을.

며칠동안 ‘스물일곱의 가을’이라는 제목을 써놓고
일기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스물일곱의 가을은 기록하기 너무 조심스럽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계절

조급하게 결론을 내고 싶어하던 수많은 일과 감정사건 중 무엇하나 명확하게 정리 된 것이 없고, 
조심스럽고, 애매모호하고, 밀고, 땡기고해야하는 것은
갓 만난 사람이나 오래지낸 친구나 가까이지내는 동료나 사업상 클라이언트나 마찬가지이고 
온 얼굴과 몸으로 표현되는 내 감정선은 붕 떴다가, 빵 터지기도 했다가, 울그락 푸르락 하기도 했지.

그치만 스물일곱의 가을의 안쿵쿵은
그 어떤 계절보다 다이나믹했던 스물일곱번째 가을을 즐겼던것 같아.
갈색빛 무거운 가을이 아니라, 총 천연색으로 다이나믹하게.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도, 조급해 하지 않아도
그 일과 감정들은 그 자체로 내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주었고,
그 무엇보다 스물일곱의 가을엔 ‘생각보다 허술한 세상’보다는,
‘생각보다 온전한 우주를 가진 개인’, 개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것 같아.  

그래도, 아니 그래서.
내내 즐거웠어 : )  
비비다이나믹!

음. 일기를 쓰다가 생각이 난건데. 
얼마전에 누가 나한테 ‘안쿵쿵한테 재미 없는게 어디있어!’하고 웃으며 역정을 낸 기억이 떠올라서...  =ㅛ=
그러고 보면 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없어 ㅋㅋㅋ
그리고 딱히 의미 없는 시절이 있을리도 없어. ㅋㅋㅋㅋ
단지, 기억력이 너무 좋지 않으니까, 이렇게 기록하면서 정색하나봐. 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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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
Rainbow by jakerom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토성은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행성이예요. 이 행성은 30년을 주기로 도는데, 당신의 경우 작년이 토성이 1년째 되는 해였어요. 아마 작년 초 부터 올해 초까지 당신은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대체로 이 시기는 정체성의 대 혼란을 느끼는 시절이거든요.심한경우 이 시기에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답니다'


나는 점 보는것을 정말 좋아한다. 뭔가 힘든일이 있거나 답답한 일이 있어서 점장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디 누가 타로를 잘본다더라, 누가 사주를 잘 본다더라 하면 꼭 한번 찾아가본다. 그때 느끼는 맨 처음의 감정은 '호기심'이다.

 딱히 어떤 점장이가 미래 예측을 잘 한다거나 내 과거를 귀신같이 알아맞춘다고 해서 감동하거나 하진 않지만, 점을 볼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나의 행동이나 감정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구조, 새로운 앵글을 발견해 낼 때인것 같다. 같은 글자 여덟개를 앞에 적어두고, 점장이 마다 자신의 사고구조나 경험에 의해 다른 해석을 하는 것도 재미가 있는데, 가끔은 내가 그들의 분석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나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특히 점을 봐주면서 자기이야기를 곁들여 하는 점장이들이랑 이야기 나누는게 재미있다.

 어쩌면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신녀들의 역할은 티비에서 처럼 신과 대화하는 역할이 아니라 왕과 대화하는 역할이 주된 것 아니었을까. 커다란 결정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만 보지 않게 위에서 혹은 아래에서 왼쪽에서 아님 오른쪽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가이드를 주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다른 입장에서 본다는 것, 관점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우리는 작고 사소한일에서부터 큰일에서 까지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앗. 또 서설이 길어졌군.
(항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글을 쓰게 되는데 이런것도 재미가 있다. )

 어찌되었건, 며칠전에 만난 점성술가가 (왠지 그분은 이렇게 불러줘야할것 같다 ㅋㅋ)  '토성의 1주기' 이야기를 꺼낸것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얼마전에 내 나이 스물여섯, 스물일곱살에 찾아온 길고 막막했던 사춘기의 발단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1) 너무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못해서 였을까.
2) 뚜렷한 성취를 가지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내모습을 발견하서였을까.
3) 이별을 인정하지 못해서 혹은 그것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였을까.
4) 아님 정말 우연히도, 모든 불행이 한 시기에 내게 닥쳤던 것일까.
5)
....

그러다가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길지 모르겠지만,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나는 정말 종교가 필요했어요' 라고 말하는 김작가님의 말을 듣고 '아.. 그래! 내가 작년 사월엔가 보게된 광우병관련 이미지 하나를 보고나서 부터 완전 패닉에 빠졌었지.그때 나는 심리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가, 다시 사회학을 공부해야할까 하고 한참을 고민했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노짱서거 직후 월요일 늦은 회의를 끝내고 문광부 옆길을 걸으며 백샘이 '이상하게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엠비가 당선된 직후부터 알수없는 우울증이 생겼어요' 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어쩌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토성의 1주기'라니! 이렇게 신비한 이유가 나의 목록에 추가되다니! 나의 사춘기, 이십대 중반의 나의 우울을 설명하는데,이토록 그럴싸하고 운명적인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없다. 사실 정말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엄청난 위로가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 져서 자꾸만 피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두번째 사춘기나, 스물일곱의 5월을 설명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테다.

'내가 스물여섯살때 두번째 사춘기가 찾아왔었어. 쉿!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그땐 30년 주기로 태양계를 도는 토성이 1주기를 맞이하는 해였거든. 대 혼란이었어. 토성은 정체성을 상징하는 행성이라고 하잖아. 돌이켜 보면 열여섯살때 보다 더 예민하게 세상과 사람들에게 반응하던 시절이었어. 그땐 한없이 작고 무기력한 내가 화가날 정도로 미웠었는데 그렇게 한시기를 보내고 나면  내 자신이 너무 사랑스러워지는 시기가 찾아와. 나의 토성이 드디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는 뜻이지! 내가 쉰여섯살이되면 또한번 사춘기가 찾아올까? 쉰 여섯살의 사춘기라. 아.. 기대되기도 두렵기도 하다. 쨋든 토성! 정상궤도 진입을 축하해!'

 
스물여섯살의 토성이 나에게 알려준 것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인간은 정말 위대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중심은 생각하는 힘이라는 것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이 어느날 갑자기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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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쿵쿵,
잘하고 있어.

이상에 좌절한 다음에 수도없이 합리화를 하면서
나 어릴땐 꿈이 있었다며 씁쓸해 하지 않을거야.

이상을 추구하는 것도
좌절하는 것도
합리화를 하는것도
다시 꿈을 꾸는것도

그것이 다 사람 모습이라며, 그리고 그것이 내 모습이라며

때로는 베테랑 공무원 아저씨처럼 어깨툭치며 웃고 슬쩍 넘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어르신들과 싸워야 하기도 해야된다는 것을 알고

욕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할수록 내 감정을 드러내보일줄 아는
그런 어른이 될래.


최근에 부쩍 '세대'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내 자신을 관찰하다보니까
겉으로는 386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야기 하면서도
한편으로 누구 말 마따나 '세기의 왕따'인 우리세대의 문제가
절대 나를 비켜가지 않을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되어서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자꾸만 불만의 신호를 보내고있다는 것도

어제 자전거를 타는데 문득 억울한거야
스물일곱, 한창의 나이에 고작 하고 있는 생각이
사회구조나 역사에 대한 불만이나 소심한 비판이라니

머릿속에 있던 재미있는 아이디어나
길가다가 본 신기한 것들
사실 그런 소소하고 유쾌한것들을 즐기기에도 바쁜데
그런것들 다 어디 갖다 팔아버리고
왜 자꾸 진지해지냐고.
촌스럽게

평가가 많고 말이 많아 판단 유보가 많은 시절에는 그 어떤일도 잘 안된다는 것을
그 어느때 보다 잘 느낄수 있는 시절에 살고있어서 그런걸까.
지금은 백마디 말, 천가지 생각 보다는
그냥 작고 시시한 것이더라도 해버리고 '내가 깃발 꽂았다.'라고 외치는게 더 중요한 때인것 같아. 

또다시 백마디 말과 천가지 생각이 중요해지는 시절은 돌아올거야.
그치만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
그렇게 할래. 용기를 내어!
그리고 지금도 잘 하고 있어.

화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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